'거위 털'이면 무조건 따뜻할까? : 올겨울에는 '윤리적 제품 인증' 패딩과 '비건' 패딩을 입어보자

보온성을 좌우하는 것은 솜털이다. 깃털이 아니다!
대체 다운 소재로 각광받는 ‘신슐레이트’를 사용한 패딩.
대체 다운 소재로 각광받는 ‘신슐레이트’를 사용한 패딩.

친한 선배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애들만 배우는 거라는 생각은 애들만 한다.” 필자는 소싯적엔 <성문영어>와 <수학의 정석>이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고 믿었다. 어른도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이가 한참 차고 알게 됐다. 그래서 말인데 최근에 배운 것 중엔 이런 게 있다.

‘개천절: 히트넥 꺼내는 날/ 식목일: 히트텍 넣는 날/ 한가위: 선풍기 넣는 날/ 어린이날: 선풍기 꺼내는 날/ 수능일: 전기장판 켜는 날/ 핫초코 미떼 광고 시작하는 날: 롱 패딩 꺼내는 날.’

이 글을 구구단처럼 외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네티즌은 천재다.’ ’집에 티브이(TV)가 없는데, 롱 패딩을 언제 꺼내지? 이 룰과 관계없이 추우면 우리는 패딩을 꺼내 입는다.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외투가 패딩인 셈이다. 그렇다면 패딩은 왜 따뜻한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패딩 안에는 충전재를 두툼하게 채우는데, 이 물질들은 기본적으로 공기를 머금는 성질이 있다.

방수가 되는 고어텍스 겉감을 사용해 만든 패딩.
방수가 되는 고어텍스 겉감을 사용해 만든 패딩.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공기는 자연계에서 열전도율이 가장 떨어지는 ‘열 절연체’ 중 하나다. 옷 사이의 공기층이 엄동설한의 찬 공기로부터 체온을 지켜주는 것이다. 패딩 브랜드들이 거위 털과 오리털을 충전재로 사용한다고 광고하는 걸 여러 번 봤을 텐데, 이런 물새의 솜털이 패딩의 충전재로 가장 각광받는 소재다. 패딩 안을 채우는 물새의 솜털을 ‘다운’(Down)이라고도 하며,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다운 파카’, ‘다운재킷’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솜을 충전재로 사용한 옷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참고로 패딩(Padding)은 ‘충전재’라는 뜻으로 콩글리시가 아닐까 싶은데, 그걸 굳이 교정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단어가 짧아서 경제적이고, 소통도 잘 되는 데다(‘패딩’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옷을 떠올린다), 발음이 동글동글해서 사물과 단어 사이에 연관성이 있어 보인 달까?

패딩 광고를 보면 오리털을 사용했다고 광고하는 경우보다 거위 털을 사용했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보온성을 좌우하는 것은 솜털이다. 깃털이 아니다!

물새의 솜털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수많은 가지들로 이루어진 공의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 공이 클수록 공기를 많이 가둘 수 있어 보온성이 높은데, 거위의 솜털이 오리의 그것보다 크기가 크다.

일반적으로 솜이 공기를 머금는 양은 물새의 솜털에 훨씬 못 미친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와 같다. 솜 < 오리털 < 거위 털. 그런데 거위 털이 더 따뜻하다면서 왜 오리털을 사용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물새의 사육 목적에 대해 알아야 한다. 먼저 오로지 털을 얻기 위해 오리와 거위를 키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육 목적 대부분은 고기와 푸아그라(식용으로 키운 오리나 거위의 간)를 얻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오리를 거위보다 즐겨 먹으니 거위보다 오리의 개체 수가 훨씬 많고, 그런 이유로 오리털의 공급량이 많다. 당연히 거위 털보다 저렴하다.

그럼 거위 털이면 무조건 따뜻할까? 그 전에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솜털과 깃털의 혼용률이다. 만약 지금 패딩을 가지고 있다면 세탁 라벨을 확인해볼 것을 권한다. 거기에 보면 ‘다운(솜털) 90%, 깃털 10%’처럼 혼용률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랜드 대부분은 안쪽에 솜털과 깃털의 비율을 적어 놓는다.
브랜드 대부분은 안쪽에 솜털과 깃털의 비율을 적어 놓는다.

대개의 다운 외투는 ‘70 : 30, 80 : 20, 90 : 10’처럼 솜털과 깃털을 섞는데, 솜털의 비율이 높을수록 보온성이 뛰어난 제품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보온성을 좌우하는 것은 솜털이지 깃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솜털 납품업체 직원에게 왜 시중에 100% 솜털(다운) 제품은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의류 브랜드 ‘몽클레르’나 ‘로로 피아나’에서 만든 수백만원짜리 다운재킷조차 ‘100% 다운’ 문구를 본 적이 없어서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물새에서 얻은 털을 솜털과 깃털로 구분할 때 선풍기 같은 기계를 써요. 털을 날리면 깃털은 무거우니 앞에 떨어지고 솜털은 가벼우니 멀리 날아가죠. 그렇다고 솜털과 깃털이 무 자르듯 정확히 나뉘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기계를 쓰니 100% 완벽하기는 어렵죠. 솜털과 깃털의 비율이 ‘90 : 10’만 돼도 정말 좋은 거거든요. 깃털은 육안으로 골라내기 어려운 정도죠. 마음만 먹으면 솜털 99%까지 만들 수 있겠지만 굳이 그걸 만들겠다고 일일이 손으로 다시 작업할 이유가 없어요. 대량생산에 맞지 않는 방식이죠.”

패딩 안에 들어있는 오리털
패딩 안에 들어있는 오리털

그러니 누군가 ‘오리털 100%’라는 문구를 사용해 광고한다면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여기까지만 알아도 실속 있고 따뜻한 패딩을 장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솜털 비율이 70% 이상이라면 보온성이 뛰어난 제품이다.(오리털 제품이 따뜻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리털도 충분히 따뜻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거위 털이 조금 더 보온성이 좋다는 의미다.)

필 파워 600 이상이면 좋은 솜털로 봐도 무방

하지만 귀한 돈을 투자해 사는 거니 조금이라도 더 까다롭게 살펴보자면 ‘필 파워’(Fill Power) 수치를 체크하면 된다. 패딩 손목에 새겨진 ‘700’, ‘800’이라는 수치를 본 적이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필 파워다. 우리말로 풀어 설명하면 ‘솜털의 복원력’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옷을 입다 보면 특정 부분이 접히고 눌릴 수밖에 없는데, 이때 다시 빠르게 부풀어 올라 공기를 머금어야 보온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필 파워가 낮은 옷은 시간이 지날수록 옷의 볼륨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볼품이 없어진다.

어림잡아 550인 필 파워 솜털로 800 필 파워 솜털의 볼륨을 내려면 40~50%의 솜털을 더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볼륨은 비슷할지언정 무게가 늘어난다. 대체로 필 파워 수치가 600 이상이면 좋은 솜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출근길 자료사진
출근길 자료사진

잊고 있던 겉감의 존재감. 겉감이 좋아야 보온성도 좋아요

충전재가 패딩 보온성의 핵심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파카 브랜드 캐나다구스의 시이오(CEO)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가 한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다운 파카에서 충전재만큼 중요한 것이 겉감입니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효과가 있어야 하고, 눈에도 젖지 않도록 방수와 발수가 되어야 하죠. 겉감이 견고해야 보온성이 좋습니다.”

패딩은 겨울철에 입는 옷이고, 그 때문에 눈보라에 금세 외피가 젖거나 바람이 숭숭 들어와서는 안 된다.

‘윤리적 다운 제품’ 인증받았다는 패딩.
‘윤리적 다운 제품’ 인증받았다는 패딩.

RDS를 확인할 것

지금까지는 따뜻한 패딩을 판별하는 법을 설명했다. 다만 따뜻한 옷이 좋은 옷인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동물 윤리다. 옷에 사용하는 다운은 털갈이 중 자연 탈락한 솜털이나 이미 도축한 물새의 털만 모아 써야 한다.

하지만 성질 급한 인간들이 살아 있는 조류에게서 억지로 털을 뽑는 경우가 있다. 제품에 사용한 솜털이 ‘윤리적 다운 제품 인증’(RDS)을 받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르디에스’(RDS)란 오리와 거위의 사육, 도축, 가공 등 다운(솜털) 제품을 생산하는 전 과정에 동물 복지를 준수했음을 인증하는 제도다. 파타고니아, 노스페이스 같은 대표 패딩 브랜드들이 동물 윤리를 지켜 생산한 제품을 내놓고 있으니 사서 입는 일이 어렵지도 않다.

만약 완전한 ‘비건 패딩’을 원한다면 솜털의 대체 신소재인 웰론, 신슐레이트, 프리마로프트 등을 충전재로 사용한 제품을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