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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아나운서는 중계 캐스터로 여성 아나운서는 리포터로" 올림픽 중계방송에 여성 ‘스포츠 캐스터’ 없는 이유

도쿄올림픽 중계에 투입된 지상파 3사 여성 캐스터 수는 단 2명.

  • 이소윤
  • 입력 2021.08.04 11:29
  • 수정 2021.08.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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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Masashi Hara via Getty Images

2명.

도쿄올림픽 중계에 투입된 지상파 3사 여성 캐스터 수다. <한국방송>(KBS)은 15명 가운데 1명(박지원 아나운서), <문화방송>(MBC)는 10명 가운데 1명(김초롱 아나운서)만이 여성이다. <에스비에스>(SBS)는 8명 모두 남성이다.

여성 캐스터 ‘실종’은 이번 올림픽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서울YWCA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 중계방송 325건을 분석했더니 여성 캐스터가 중계한 경기는 전체의 7%에 불과했다. 해설자를 포함한 전체 중계진 성비도 여성 124명(24.8%), 남성 375명(75.2%)으로 남성이 3배 많았다.

스포츠 캐스터는 해설자와 함께 경기의 주요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고, 선수나 상대팀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전달하며, 카메라에 미처 잡히지 않은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아나운서가 맡는데, 이들은 다년간 수차례 중계 경험을 쌓으며 스포츠 분야 전문성을 키운다.

KBS 도쿄올림픽 방송단/ 박지원 아나운서(맨 왼쪽)
KBS 도쿄올림픽 방송단/ 박지원 아나운서(맨 왼쪽) ⓒKBS 제공

 

여성 스포츠 캐스터 지원이 적은 이유

국내 스포츠 캐스터 중 절대 다수는 남성이다. 여성 캐스터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종목은 피겨스케이팅, 리듬체조 등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여성 아나운서 중 처음으로 피겨와 컬링 종목 캐스터로 나섰던 SBS 유영미 아나운서(정년퇴직),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리듬체조 중계를 맡았던 KBS 오정연 아나운서(현재 프리랜서)가 대표적이다.

여성 캐스터가 월드컵,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에서 축구나 야구 같은 종목을 맡은 경우는 드물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사 아나운서는 “여성 아나운서도 캐스터를 원하면 말해달라는 분위기는 사내에 조성돼 있다. 다만 종목에 대한 구분은 있다. 예를 들면 축구·야구는 남성이, 리듬체조는 여성이 맡는 식이다. 전통적으로 나눠진 이런 종목 구분을 깨보려 하는 여성 아나운서가 많지는 않다”고 했다. 이 아나운서는 △남성 위주 스포츠 커뮤니티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부담 △롤모델 부재를 여성 스포츠 캐스터 지원이 적은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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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via Getty Images

 

여성 아나운서는 주로 인터뷰나 하이라이트 전해

캐스터가 없을 뿐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 방송인이 활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상파 3사와 스포츠채널에는 여성 아나운서가 여럿 포진해 있다. 그러나 중계를 맡기보다는 스튜디오에서 그날의 하이라이트를 전하거나, 경기장에서 선수 인터뷰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 방송 영역에서도 일종의 성별 업무 분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송정화 전 스포츠 아나운서(건국대 체육학과 박사)는 2013년 전·현직 스포츠 아나운서 4명이 왜 스포츠 아나운서에 입문했고, 어떤 차별을 경험했는지 등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논문으로 썼다.

송 전 아나운와 논문에 등장하는 여성 아나운서들은 스포츠 중계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 기회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했다.

“남성 아나운서는 야구 중계 캐스터로 투입되지만 여성 아나운서는 야구장에 리포터로만 투입된다. 하지만 야구장 리포터로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여성 아나운서가 야구 중계 캐스터로 투입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남성 스포츠 캐스터는 입사 1∼2년차에 메인종목 캐스터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여성 캐스터는 6∼7년차쯤 돼야 메인종목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놓치면 영영 메인종목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남성은 1∼2시즌을 보고 지속가능성을 판단하지만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여성 스포츠 캐스터는 기회 면에서 차별이 분명히 있다.”

 

단기 계약직 많은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교육·경험 기회 적어

 

고용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을 키울만한 충분한 교육도, 기회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기 계약직이 대부분인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전문적인 스포츠 지식을 공부할 시간도 없고, 그 부분에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스포츠 캐스터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 아예 없는 여성 아나운서들도 많은 것 같다.”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계약직으로 뽑는 방송가의 성차별적 채용 관행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인권위가 지난해 MBC 전체 지역 계열사 16곳을 직권조사했는데, 남성 아나운서는 전체의 82.9%가 정규직이었고, 여성 아나운서의 정규직 비율은 25%에 그쳤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여성학 협동과정)은 “영국 오프콤(방송통신규제기관)은 매년 지상파 방송의 다양성 보고서를 낼 정도로 방송 다양성 확보를 중시한다. 이것이 우리 방송에서도 전제가 되어야 한다. 방송사의 기존 캐스터 교육은 암묵적 지식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남성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방송 모니터링을 담당했던 김예리 서울 YWCA 여성운동국 부장은 “화자가 특병 성별에 집중되면, 그 성별이 지닌 가치 편견이 발화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면에서 중계진의 성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더디지만 외국은 변화하는 추세다. 지난달 20일 미국 메이저리그는 볼티모어 오리올스-탬파베이 레이스 경기 중계진(캐스터, 해설, 리포터 등) 5명 전원을 여성으로 꾸려 스포츠계 유리천장을 또 한번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겨레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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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성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