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늙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른시선④]

  • 최지연
  • 입력 2018.05.02 17:48
  • 수정 2018.05.02 17:51
ⓒhuffpost

<두 늙은 여자> &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아직 나이 듦을 논할만큼의 나이가 된 건 아니지만, 어느새 돌아보니 늙어 있는 부모님과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늙어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몇 번을 설명해야 겨우 이해하시거나, 아주 간단한(물론 내 기준에서) 기기조작 조차 자식들에게 기대는 부모님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모든 걸 알고 있고, 어떤 일이든 해결해주던 나의 수퍼맨이 사라진 것 같아 서글퍼진다. ‘곧 나도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의 부모가 되겠지’ 나이듦은 먼 곳에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늘 누군가를 보살피며 살아오다 이제는 보살핌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마도 그건 맞닥뜨리는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일 거다. 머리와 가슴은 경험과 연륜으로 가득찼는데 단지 육체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살아야 한다니. 그래서인지 알래스카 내륙에 자리잡은 포트 유콘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두 늙은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있는 곳, 알래스카. 이 극지방에는 추위와 싸우며 살아가는 유목민이 있었다. 이들은 극한 추위를 피해 눈 위를 떠돌아다니며 생명을 이어온 강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그것은 곧 사냥감이 없는 상태, 굶어 죽을 위기가 닥쳤음을 의미했다. 부족은 고심 끝에 작은 희생을 감내하기로 한다. 부족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두 늙은 여자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부족의 가장 늙은 여인 ‘칙디야크’와 ‘사’는 맹추위 속 알래스카에 버려진다.

“그래, 사람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선고했어! 그들은 우리가 너무 늙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지. 우리 역시 지난날 열심히 일했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버렸어!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말이야” (29쪽)

두 여자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족같이 여겼던 부족들에게 버림받는다. 처음에는 괘씸했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다 곧 서글퍼졌고, 좌절감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 얼어 죽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두 여자는 옛 기억과 숱한 경험을 떠올리며 사냥을 하기 시작한다. 토끼를 잡기 위해 덫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으로 허기를 채우고 담요를 만들어 추위를 견뎠다. 그렇게 사냥을 시작하자 두 여인은 오래 살아온 덕택에 자신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를 잡았고, 사향쥐나 비버도 잡았다. 먹이가 쌓여 저장고도 마련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충분한 먹거리 쌓여 있었다.

그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부족이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와 두 여자와 재회한다. 그들은 굶어죽기 직전이었고 두 늙은 여자는 그들을 품기로한다. 단, 그들에게 저장고의 위치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먹거리를 내어줄 뿐이었다.

<두 늙은 여자>는 실제 알레스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작가 벨마 윌리스가 어머니로부터 들은 자신의 부족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그녀의 부족에는 전설로 내려오는 버려진 두 늙은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작가에게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 (나이의 한계는 물론이고)’을 가르쳐주었고, 아름다운 두 늙은 여자의 성장소설로 탄생시켰다.

이 소설에서 젊은 부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나약했다. 그리고 무리 가운데 가장 대책 없고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두 늙은 여인은 실제로는 강한 존재들이었다. 나이듦이, 늙음이 꼭 나약하거나 쓸모없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카모메 식당>의 저자 무레 요코의 할머니 모모요는 아흔 살에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겠다며 시골에서 올라와 하라주쿠에서 쇼핑을 하고 디즈니랜드에 갔고(<모모요는 아직 아흔살>), 여성학자 박혜란도 ‘나답게 늙겠다’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즐겁게 늙어가는 주도적인 노년의 삶에 관해 썼다(<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그렇다. 나이가 든다고 꼭 무언가를 포기해야하거나, 슬퍼해야하는 건 아닌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면,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 들어감을 슬퍼하지는 말자. 오히려 더 많은 경험과 연륜으로 몰랐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