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총선거
2020년 03월 19일 13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3월 20일 14시 38분 KST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금의 국민 안전 대책에는 피가 묻어있다"

[2020 총선 인터뷰] 경기 의정부갑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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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후보

한국 사회가 소방관에게 관심을 가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난 2014년 5월, 인터넷에 올라온 한 소방대원의 글이 인식의 전환점이었다. 구조활동에 쓰는 신발이 떨어져서 지급을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평소에도 구조에 쓰는 장갑을 ‘직구’로 구매한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에는 부산경찰청 페이스북이 연산동 화재 현장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소방관의 사진을 공개했다. 시민들은 소방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목소리를 더했다. 그런 힘이 더해져 오는 2020년 4월에는 지방직 소방공무원 약 5만 6,000명이 국가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제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개선됐으니 끝난 문제일까? 2019년 12월까지만 해도 10년 차 소방대원이었고, 지금 2020년 총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후보는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처우개선을 위한 것이란 인식은 오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책으로 소방방재청을 해체해 소방본부로 격하했을 때, 광화문에서 이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의 오영환 소방대원은 “자존심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소방방재청으로 있을 때도 소방 관련 안전 대책은 뒤로 밀렸어요. 그런데 아예 행정조직 밑으로(국가안전처 산하) 넣어버렸던 거죠. 국민 안전을 위한 법과 제도가 더 뒤로 밀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거였어요.”

 

2017년 6월, 당시 문재인 정부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라 소방본부를 ‘소방청’으로 분리했다. 소방조직이 독립된 건, 42년 만이었다. 소방청장은 각 시도지사에게 소방력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전국에서 소방차량과 소방공무원들이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다.

 

오영환 후보는 소방청 독립과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모두 국민 안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노력에는 “끝이 있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안전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가 없어요. 한 곳의 빈틈을 메우면 다른 곳에서 빈틈이 생기죠. 그렇게 사각지대는 계속 나타날 수 밖에 없어요.”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영입제안을 받았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안전 대책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대형사고가 발생해야만 수립되었지만, “이제는 선제적으로 안전 관련 입법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번이 아니면 또다시 소방 분야의 정치 진출 기회가 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에 “소방관의 임무를 수행하듯”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런 오영환 후보에게 우리는 당연히 ‘소방관’에 대해 물었다. 소방관과 구조대원 등을 포함해 소방 공무원이 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는 왜 소방대원이 되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그는 앞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우리의 질문에 그는 10년 전 해운대  바다에서 구조한 어린 아이의 손을 잡았던 기억을 떠올렸고, 지난해 독도 해상에서 유명을 달리한 구조대원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3월 6일 진행됐다.

 

지금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이제 공천 지역이 결정돼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사무실이나 그런 것들을 꾸리느라 시작의 준비 단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정도 되면 후보 등록과 본격적인 선거 운동을 조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전에는 소방관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일입니다. 살짝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후회는 한 적이 없어요. 물론 너무 낯설고 너무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런 날들이 이어졌죠. 하지만 이 길로 나오길 결심한 이유가 결코 가볍지 않았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그립고 사랑하는 소방관의 현장을 두고 나올 수 있었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힘들 때조차도 난 절대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할 수 없다, 후회할 수 없다, 난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항상 새기고 있어요.

영입 제안을 받고 소방관으로서 가졌던 생각을 정치로 펼치겠다고 결심했을 때 소방관 동료분들은 어떤 말을 했나요?

사실 동료들한테도 전혀 말을 못 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사직서를 냈어요. 그래서 많은 걱정을 해주셨어요. 당시에 제가 근무하던 부서에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그만두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셨어요.

그 사고라고 하면?

제가 영입 제안을 받기 전 10월 말에 독도 앞바다에 추락한 소방헬기에 저희 동료들이 타고 있었어요. 저는 수도권 특수구조대 항공 대원이었고, 동료들은 같은 소속의 영남 특수구조대 항공대원들이었어요. 같은 기종의 헬기였고 또 같은 임무를 하던 동료들이었어요. 사고가 나고 그 날밤 저도 비상소집되서 다음 날부터 독도 인근 수색을 2주 이상 나갔어요. 그 후에 영입 제안을 받은 거고요. 3박 4일씩 그렇게 독도에 있다가, 울릉도에서 수색을 나가다가 왔는데 그런 제안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동료들한테 말하지 못한 채 사직서를 내기까지, 제가 자원해서라도 더 많이 수색을 나가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동료들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혹시나 제가 그런 마음에 상처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걱정을 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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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후보

# 소방관은 ‘불만 끄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 일반인들은 소방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는 잘 모릅니다. 주로 화재를 진화하는 역할만 알고 있죠. 오영환 후보는 구조대원으로서 일한 거잖아요. 구조대원은 진화 작업을 하는 분들과 항상 같이 움직이는 역할이라 보면 되나요?

화재 진압 대원이 가장 많아요. 구조 대원은 소방서마다 1개 대대씩 설치돼 있어요. 특수구조대도 따로 있고, 또 119 구급대, 우리가 흔히 보는 구급차들, 그렇게 현장 활동은 나뉘어요. 더 있지만 크게 나누자면 그렇습니다. 저는 화재 진압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구조대원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화재 현장이나 교통사고, 추락 사고에 출동하는 소방서 구조대 소속으로 2년 넘게 있었고요. 그 이후로는 산악 구조대에 가서 도봉산, 북한산 인수봉까지, 수락산 등 서울 북부 쪽에 있는 산들을 담당했어요. 산에서는 응급환자들이 많이 생기는데, 그때 응급 처치 능력이 중요하구나 싶어서 구급 쪽에 대해 공부했고, 소방서에 자원해서 구급대로 갔어요.

구급대라면 119 출동하는 구급대인 거죠?

네, 구급차를 한 1년 정도 타고. 오토바이 구급대라고 또 이제 응급, 정말 심정지나 이런 중증 외상일 때 구급차가 밀릴 수 있으니까. 그런 환자들만 전담하는 임무를 1년 반쯤 했어요. 그리고 제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어했던 항공 구조대에 근무를 하러 갔죠.

그렇다면 처음 소방관이 되고자 했을 때는 화재 진압을 하고 싶었던 건가요?

고등학교 때 처음 마주한 소방관은  불을 끄는 화재 진압 대원들의 모습이었어요. 그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방관의 대표적인 모습이잖아요. 그 꿈을 꾸고, 대학교도 그만두고, 의무 소방으로 군인 생활을 했는 데, 그때 첫 근무지가 해운대 해수욕장 수상 구조대였어요.

여름 해변에서 지키고 계시는 분들이요?

네, 그때 2008년 여름이었는데, 처음 긴급한 상황을 맞닥뜨렸어요. 파도가 너무 심하게 쳐서 수십 미터를 떠내려간 여자아이를 구한 적이 있었어요. 직접 손을 잡아서 아이를 구했을 때 사람을 구했다는 마음이 정말 강렬했어요. 그런 경험 때문에 구조대에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소방관은 ‘대단하다‘거나, ‘멋있다’는 말을 듣지만,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어린 시절에 소방관을 선망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사실 멋있어서 선망한 것도 맞아요.(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랐어요. 단칸방에서도 살고, 봉지쌀의 추억도 있고요. 어머니, 아버지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애를 많이 쓰셨어요. 집에선 엄청 화목하게 웃으면서 지냈어요. 하루는 뉴스에서 한 상가가 화재에 휩싸인 모습이 나왔어요. 막 울부짖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 상가의 주민들이겠죠. 자기 삶의 배경이 희망의 발판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좌절이 보일 때. 그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 같이 겹쳐보이더라고요. 정말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하루하루 노력하던 분들이요. 그런데 그때 그 앞에서 소방관들의 뒷모습이 나오는 거죠. 울고 무너지는 사람들 앞장서서 정말 위험한 곳을 진입하는 사람들, 그분들의 삶의 희망을 지켜주기 위한 뒷모습이지 않았나. 그게 완전 멋있었어요.

영웅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네요.

저희 부모님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지키는 일, 이런 인식이 딱 들어왔어요. 그때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남들은 입시 고민을 많이 하지만 저는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고1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패스트푸드점, 카페, PC방, 고기 뷔페, 이런 데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저는 미래가 막연했어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대학도 어디가 어딘지 몰랐어요. 그런데 소방관의 모습을 보고 저렇게 우리 부모님 같은 사람을 지키는 일을 하면 나도 조금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죠.

대학에 입학한 후에 소방관이 된 거죠?

그래도 대학은 가야 될 거 같아서 남들만큼 공부했어요. 성적에 맞춰서 입학을 했는데, 그때서야 소방관은 공무원이라 4년제 대학을 안나와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소방 공무원 시험만 치면 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자퇴를 했어요. 1학년 1학기 때요. 또 의무 소방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준비했어요. 군대 복무는 자랑스러운 임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조차 제 꿈을 실현하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입대 전에는 소방 시설 관련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여기 건물에도 있는 것처럼, 화재 감지기를 점검하고, 경보 울리는지 확인하고, 보수하고, 비상등 불이 잘 들어오는지, 스프링쿨러는 작동되는지, 그런 걸 확인하는 일이었죠. 그러면서 예방 시설, 소방 시설, 예방 분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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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후보

# 안전 대책의 발전에는 누군가의 피가 묻어있다

 

소방관이 된 후 처음으로 출동했던 날은 어땠나요?

화재 출동이 있었어요. 저는 구조 대원으로 갔죠. 화재 진압 대원들은 들어가서 불을 찾아 불을 끄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물론 인명을 발견하면, 당연히 인명을 먼저 구하지요. 구조대원들은 호스를 들고 가는 게 아니고, 도끼나 이런 걸 들고 들어가서 사람을 찾아내는 게 첫 번째 임무예요. 그때 출동한 곳은 오래된 상가 건물이었어요. 분식집이었는데, 영화를 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뭔가 희미하게 보이잖아요? 그런데 전혀 앞이 보이지를 않았어요. 계단을 몇 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연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도 소방관들은 어떻게 길을 찾는 건가요?

그때도 선배들은 앞으로 계속 가더라고요. 저도 그 뒤만 쫓아갔어요. 그날 현장은 정말 상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구조대원들이 화재 현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유리창을 깨는 거예요. 연기를 빼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거든요. 들어가서 물부터 쏴버리면 안 돼요. 그 안에서 연기가 빠져나갈 공간도 없는데 수증기까지 차버리면 더 위험해지거든요. 무조건 창문부터 깨서 연기를 빼고 불이 어디서 번지고 있는지, 화점을 찾아서 그 화점에 집중 방수를 해야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찾을 수 있는 사람도 못 찾을 수 있어요.

소방관의 임무는 불을 끄는 것보다 사람을 찾는 게 먼저인 거네요?

그렇죠. 소방의 최우선은 인명 구조가 최우선이죠.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소방관의 현실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건가요? 

세월호 참사 당시 소방방재청이 해체됐어요. 저는 그게 아니라 소방청은 더 독립되어야 사람을 구하는 소방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런데 당시 정부에서 추진한 건, 오히려 역행한 거죠. 그때 후진적인 대책이라고 목소리를 냈던 이유는 소방관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어요. 국민 안전을 위한 대책 수립 과정에서 현장성이 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죠. 소방방재청으로 있을 때도 소방 정책은 뒤로 밀렸어요. 그런데 아예 행정조직 밑으로 넣어버린 거죠. 소방관들의 고민과 노력, 안전을 위한 법과 제도가 더 뒷전으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낸 거예요. 그런데 그런 목소리가 커지면서 오해를 받는 것도 있어요.

어떤 오해인가요?

언론에서 소방관의 처우에 대해 조명하다 보니, 시민들은 소방관이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소방관이 힘들게 일하는 건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소방관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도 지금 소방관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에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전 국민이 평등하게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예요.

서울에서는 소방차에 5, 6명씩 타고 출동을 합니다. 그런데 지방 같은 경우는 소방차도 엄청 멀리서 오고 2명씩 타고 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격차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어요.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역에 계신 국민들도 똑같은 국민이고 똑같이 소중한 생명인데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저로서는 제 주장이 오로지 국민 안전만 본 것이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어요.

워낙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에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저는 소방관들의 월급을 특별히 더 올려준다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제복을 입는 공무원들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데, 소방관만 특별대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 소방관이 안전해야 국민도 안전하다는 건 맞는 말이에요. 현재 소방관의 처우에서 가장 열악한 건 월급이 아니에요. 유독 물질이 나오는 화재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암과 같은 특이 질환에 걸렸을 때 공상 처리나 순직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억울하게 마지막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입증할 책임이 소방관에게 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러한 입증 책임을 국가가 맡는 법안이 표창원 의원을 비롯해서 발의됐는데, 아직 통과되지 않았어요.

소방과 관련된 정책 개선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던 건, 이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기 때문인가요?

시, 도지사 입장에서는 먼저 예산을 쓰고 싶은 곳이 많겠죠. 관심도에 따라서 또 밀릴 수밖에 없었을 테고요. 소방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티가 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거든요. 그나마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세월호 참사 이후 이번 정부가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에요. 이번 정부 이전에 소방이 그나마 발전을 해온 순간은 대형 인명 피해가 있었던 대구 지하철 사고라던지, 소방관들의 순직 사고가 이슈가 되었던 때였어요. 소방 발전에는 항상 피가 묻어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우리는 누군가가 흘린 피를 밟고 걸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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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후보

 

# 소방관처럼 필요할 때 달려가는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영입 제안을 받고서도 같은 생각을 했겠네요.

처음에는 현장을 떠날 수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만약 제가 이걸 거부한다면, 앞으로 또다시 소방 분야 발전에 기회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대형 사고 후에 변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안전 관련 입법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꼭 저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제가 그렇게 현장을 사랑하는 만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그걸 외면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임무를 등한시하는 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도 아내분 께서는 난감하게 받아들였을 거 같은데요? (그의 아내는 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인 선수다.)

독도 헬기 추락 현장에 나갈 때부터 걱정을 했었죠. 제가 동료 때문에 울다가 수색을 나갔어요. 한 번 나가면 2박 3일이나 3박 4일을 나가요. 그래도 아내는  다른 말을 안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안하네?’라고 물어보니까,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동료들 찾으러 가는 건데, 어떻게 말리냐”고 그랬어요. 나중에 더불어민주당 제안을 받았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니까, 그때도 ”당신은 무엇이든 책임감 있게 하니까 잘할 거야...” 그 정도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도 했죠.(웃음) 제 고집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고 사명감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존중해주었어요.

처음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나요?

부모님도 ”너가 한다면 말릴 수 없겠지”라고 하셨죠. 제가 그렇게 고집이 셌나 싶네요.(웃음)

아내분이 김자인 클라이밍 선수인데, 어떻게 처음 만났나요?

제가 산악구조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취미삼아 배웠어요. 그때 저를 가르쳐주시던 코치님이 아내를 알고 있었죠. 선수 출신끼리 언니동생하는 사이였어요. 그 분이 저희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만나보니 정말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게 되더라고요.

김자인 선수와 함께 클라이밍도 하나요?

함께 한다고 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죠. 아내는 이미 저 앞에 올라가 있어요.(웃음) 저는 2시간 정도 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지는데, 아내는 그 이후에도 2시간은 더 해요. 함께 등반을 하면 제가 줄을 잡아주기는 해요. 같이 운동을 하면 재밌어요.

서울 의정부갑에 전략공천 되었습니다. 공천 전에 걱정하진 않았나요?

사실 오래 기다렸으니, 그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죠. 저보다 더 많이 걱정한 분들도 있고요. 다들 그러더라고요. 너는 왜 이렇게 편하게 기다리냐고.(웃음) 당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역대 어느 정당보다도 더불어민주당은 소방 안전에 있어서 큰 노력을 해주었으니까요. 또 국민 안전에 대한 시대 정신이 있어서 저 같은 소방관이 영입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신뢰를 갖고 기다렸어요.

정치에 뛰어들면서 가진 의지와 목표가 있어도, 정치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잖아요. 게다가 지금은 지역구 선거에 나가는 상황입니다. 지역주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지역 주민들이 해결을 원하는 첨예한 문제들이 많을 거예요. 전략공천으로 출마하는 입장에서 당장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공약이라는 건, 국회의원의 추진 태도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고자 하는 자리에 정말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정치 혐오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해당 지역을 잘 안다는 걸 내세우면서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많았죠. 저는 새로운 정치인으로서 지역구 주민들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선거 때만 보이는 정치인이 아니라, 소방관처럼 필요할 때 달려가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경기도 의정부에는 원래 연고가 있었나요?

제가 마지막에 근무했던 곳이 수도권 특수구조대였어요. 수도권은 어딜 가도 제가 지켜냈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죠. 어렸을 때 의정부에서 살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우리 집이 있었는데, 몇 달 살지 못하고 전세를 내주었죠. 그때 의정부에서 반지하 집에 살았는데, 저한테는 행복한 추억이 많아요. 제가 연고를 말씀드릴 때는 ”저의 추억과 제가 이곳을 지켰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있으니 그게 가장 큰 연고라고 생각한다”고 말씀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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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후보

 

# “안전에는 절대로 완벽함이 있을 수가 없어요”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요?

소방법이 있고, 소방관계법령들이 많이 있지만 소방법만으로 안전이 담보되는 게 아니에요. 건축법, 산업 안전법, 전기 안전법, 가스 관련 법 등에도 안전 관련 조항이 들어있어요. 의료법에도 병원에서 화재 피난 등에 안전 관리 조항이 있고요. 77개 법령에 소방 안전 관련 내용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많은 법도 커버하지 못하는 곳이 있어요. 홀몸 노인분들, 쪽방촌에 사시는 분들, 장애인 분들 같은 취약계층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죠. 불이 나도 대피할 수 없고. 소화기나 감지기가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기가 불을 끌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분들 많이 있잖아요. 현장에서 보면 그런 분들이 화재에 희생당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요. 하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그렇게 높지 않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요. 법과 제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걸 현장에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반드시 그분들을 위한 별도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저의 1호 법안으로 가장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시 만약 선거에서 떨어진다면? 이란 가정도 하고 있나요?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것 자체가 사명감을 가지고 나온 것이고요. 소방 현장에서도 내가 넘어지면 어떡하지? 헬기를 타고 가서 산에 사람 구하러 갈 때 내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결코 할 수 없거든요. 물론 떨어질 가능성이 있겠죠. 하지만 고민보다는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 지역 시민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어떻게 하면 진심을 움직일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4년 후에는 또 선거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또 도전할 생각인가요?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계속하려면 반드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겠죠. 제가 정치를 하고 싶은 이유도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환경은 수시로 변하고, 안전에는 절대로 완벽함이 있을 수가 없어요. 한곳을 메우면 다른 곳에서 빈틈이 생기고, 그만큼 사각지대가 계속 나타나죠.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한 명쯤은 유지가 되어야 그런 빈틈을 계속 따라다니며 메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국민에게 안전한 세상을 선물하기 위해 그런 노력을 계속하려고 해요.

 

P.S

오영환 후보와 인터뷰를 가진 후, 경기 의정부갑에 문석균 무소속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려던 문석균 후보는 아버지 문희상 국회의장과 관련해 ‘세습’ 논란이 벌어지자,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문석균 후보의 출마 소식이 들린 후 다시 오영환 후보에게 입장을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노력하신 부분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출마에 반발하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더 이상 민주당과 함께하지 않는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큽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선택에 대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해온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민만 보고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어 지역구 주민들에게 부탁의 말을 한 가지 전했다.

″지역위원장으로서 지역 당원 명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다른 의정부 갑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기는 너무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직 없이 선거를 준비하는 상황이고, 정치 신인이라 지역 인지도도 낮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문자와 전화로 인사를 드리고 있지만,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는 분도 매우 적은 상황입니다. 의정부갑 주민분들께 여러분의 전화번호를 부탁드립니다. 010-3264-1191(문자전용)로 보내주시면, 저희가 직접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