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오세훈 후보는 8일 오전 2시 기준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율 94.5% 상황에서 265만2137표(57.62%)를 얻어 179만 9648표(39.10%)에 그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8일 자정을 넘긴 시각 오세훈 후보는 아내 송현옥 교수와 함께 당선 축하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오 후보는 ”지금 이 순간 기뻐야 할 순간이지만 스스로 가슴 짓누르는 엄중한 책임감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라며 운을 뗐다.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오 후보는 ”꼭 보듬어야 할 분, 챙겨야 할 분, 절실한 분들을 자주 찾아뵙고 그분들의 현안을 가장 먼저 챙기겠다”라며 ”지난 5년 동안 일 할때는 머리로 일했다. 이제 앞으로 시장으로서 일 할 때는 뜨거운 가슴으로 일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오 후보는 또 ”(박원순 사건) 피해자가 우리 모두의 아들딸일 수 있다. 그분이 이제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업무에 복귀해서 열중할 수 있도록 제가 정말 잘 챙기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오세훈의 성공시대: 변호사 → 국회의원 → 서울시장
1961년생인 오세훈 후보는 한국 나이로 61살이다. 변호사로 쭈욱 일하다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발탁됐고, 지난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남구을 지역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살이었다.
그리고 6년 뒤 오세훈은 서울특별시장으로 뽑혔고, 2010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국회의원에서 서울시장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2011년 이른바 ‘무상급식 투표’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오세훈 시장은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무상 급식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이를 주민투표에 부쳤다. 하지만 주민투표 최종 투표율이 25.7%에 그치면서 투표함은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2016년부터 낙선, 낙선, 또 낙선
이후 그의 인생은 ‘낙선’의 연속이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다가 정세균 후보(현 국무총리)에게 떨어졌고, 지난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해 고민정 후보에게 밀렸다. 중간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도 나갔다가 떨어졌다.
나경원·안철수 꺾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낙선의 연속이었던 오세훈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될 것이라 전망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지난해 7월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갑작스럽게 치러지게 됐다. 박 시장이 여성 비서에게 지속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공분이 들끓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세훈 후보는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서 ‘대세론’ 나경원을 꺾었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를 거쳐 3월23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최종 후보가 됐다.
오세훈의 1순위 공약은 ‘스피드 주택 공급’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스피드 주택 공급‘을 1순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1년 임기 동안 서울의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고, ‘비강남권’의 상업 지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재개발, 재건축 등을 통해 5년 동안 18만호 이상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용산 재개발 계획도 그 중 하나다. 오 후보는 ”서울 대개조, 뉴서울 플랜”을 강조하면서 용산을 서울의 또다른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오 후보는 선거 운동 기간 중 ‘용산참사’ 원인을 당시 철거민들의 폭력 탓으로 돌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누군가는 2009년 용산참사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