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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어야 할 때

ⓒhuffpost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하나를 미워했었다. 그도 나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사소한 업무 스타일 차이로 사이가 벌어진 것이었는데, 처음엔 일을 못 한다고 툴툴대던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의 숨소리조차 듣기 싫어지는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다른 동료의 험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언제나 혼자 끙끙 앓아야 했다. 그러다 화로 머리가 터질 정도가 되면 그제야 그를 알지도 못하는 회사 밖 친구들에게 줄줄 하소연이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바쁜 회사였다. 빡빡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매일매일 야근의 행진이 이어졌다. 업무 스트레스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이 많았는데, 거기에 더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답답한 공기에, 앉아만 있어 팅팅 부어 오른 종아리의 감각에 불쑥불쑥 분노가 치밀 때마다 나는 ‘저놈만 없어도 회사 다닐 맛이 났을 텐데.’ 하는 심정으로 그의 뒤통수를 오래 쏘아보곤 했다.

ⓒPeshkova via Getty Images

그러던 어느 날, 밤을 새다시피 하며 완성해 온 프로젝트 기획안을 퇴짜맞았다. 여럿이 배석한 회의실에서 그는 내 서류를 들고 문제점을 따박따박 짚었다. 여러 명이 여러 가지 지적을 했고, 그가 말한 것들은 그중 일부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그가 한 평가 중에는 맞는 말도 있었고 납득하지 못할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회의실을 나오면서 다른 사람은 다 제끼고 그의 얄미운 뒤통수만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제 자리에 돌아가 모니터를 켜는 그의 뒷모습이 그렇게 꼴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몽롱한 머릿속에 애매한 짜증이 뒤섞이면서, 곧 뭉툭하고 울퉁불퉁하지만 단단한 분노가 완성됐다.

아오, 저 뒤통수 그냥 세게 한 대 후려갈겼으면 속이 시원하겠네, 파티션 위로 삐쭉 튀어나온 정수리를 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다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새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분명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런 맹목적인 미움까지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나 역시 천사 같은 사람은 아니었으되 이제껏 누군가를 이렇게 쉽게 증오한 적은 없었다.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을 내 눈을 상상하자 몸에 힘이 빠졌다.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미워하게 된 데 그의 잘못이 얼마나 있고 내 탓은 얼마나 큰지를 따져서 나온 결론이 아니었다. 이 상태가 더 길어지면 정말 내가 악한 사람으로 변해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뭉클 치밀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신기하게도 그 사무실을 벗어나자 폭발할 것 같던 미움은 곧 사그라들었다. 몇 년이 지난 이제는 기억하려 해도 뿌옇게 변한 몇 장면이 드문드문 떠오를 뿐, 그때의 격렬한 감정은 흔적조차 없다.

그럴 때마다 그만두어야 할 때를 잘 찾아냈다고, 내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압박감과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가득한 마음에서는 미움이 무서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아마 그대로 시간을 보냈다면 나는 틀림없이 내가 만들어 낸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혀 몸과 정신을 망가뜨렸거나, 아무에게나 화를 내는 괴물로 변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누군가 미워지려 할 때면 부랴부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가끔은 가벼운 불평도 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 부당하게 커지는 걸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게 되면, 그때는 다시 망설임 없이 모든 걸 그만두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마땅히 미움 받을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굳이 그 감정을 부풀려 내 스스로를 더 갉아먹을 필요는 없으므로.

유정아의 에세이집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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