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오카시오 코르테스, 류호정, 장혜영 의원의 공통점 : 용인하지 않는 자들의 정치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지 않으며, 남성 중심 의회 문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 허완
  • 입력 2020.08.10 20:04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AP&뉴스1 / 편집 허프포스트

“기자들 앞에서 저더러 ‘A fucking bitch’라고 한다는 건 당신의 아내와 딸, 지역구 여성들한테까지 그 말을 해도 괜찮다고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는 그걸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공화당 하원의원 테드 요호로부터 “A fucking bitch”라는 여성비하적 욕설을 들은 후 의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코르테스는 그 말 자체가 그리 상처가 되진 않았다고 했다. 이미 식당과 지하철, 길거리에서 숱하게 들어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체 넘어가거나 애매모호한 사과를 받아들여 일을 더 키우지 않는 편이 코르테스 본인에게는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코르테스 의원이 ‘굳이’ 10분 간 연설기회를 얻어 정면으로 부딪힌 이유는 뭘까? 그건 그 사건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명백히 여성을 향한 구조적·문화적 폭력이었다. 코르테스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선택이 비슷한 폭력을 겪은 다른 여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침묵하는 대신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지 밝히고, “나도 아내와 딸이 있다”는 중년 남성들의 흔한 변명이 왜 적절한 사과가 될 수 없는지 보여주었다.

코르테스 의원의 연설을 보며 한국의 국회의원 두 명이 떠올랐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이다. 우선 그들은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거부했다. 류호정 의원은 박원순 전 시장을 둘러싸고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됐을 때 피해자에게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가장 먼저 말한 사람이다. 장혜영 의원 역시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애도할 수 없다”고 했다. 피해자 신상털기와 2차 가해가 버젓이 이뤄지는 동안, 두 의원은 ‘조문 거부’로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며 피해자와 연대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이 밀레니얼 여성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위’는 지금의 정치판에 중요하고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건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과 성차별-성폭력 피해자의 편에 기꺼이 서겠다는 다짐이다. 공개적으로 발화된 이 목소리들은 어디선가 같은 욕설을 들었을, 직장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을 겪었을 수많은 여성들을 지지한다. 그걸 지켜보는 여성 시민들 역시 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음에 안도했다.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로이터&뉴스1/편집 허프포스트

오카시오 코르테스, 류호정, 장혜영 의원의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직업 정치인’으로서 커리어를 밟지 않아 정치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바텐더 출신으로 미국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은 인스타그램에서 의회 도서관을 소개하고, 인스타 라이브로 맥앤치즈(마카로니에 녹인 치즈를 섞은 음식)를 만들면서 시청자들과 편하게 정치 이야기를 나눈다. 프로게이머 출신 류호정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 붉은색 원피스 차림으로 참석해 무채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를 뒤흔들었다. 그의 원피스는 20대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옷이었음에도 논란이 이어지자 류 의원은 ”국회의 권위는 양복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라며 낡은 관행과 권위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영화감독이자 유튜버인 장혜영 의원은 매주 의원실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최근에는 ‘틱톡’에 본인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모두 이들이 국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었던 생경한 풍경들이다.

새로운 ‘밀레니얼 여성 정치인’의 등장으로 중년 남성들의 몫으로 제한되던 정치인의 모습은 다양해졌고, 삶에 기반한 정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국회에서만 이루어지던 정치의 공간을 확장시킨다.이 낯선 존재들이 낡은 정치를 걷어내고 기존 권력과 치열하게 부딪혀 만들어 낼 균열이 기대된다.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자들의 정치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들을 격려하고 지지할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도 비로소 그 세계와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정의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류호정 #장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