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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하늘나라 천사가 된 간호사

간호인력의 담당 환자수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

ⓒhuffpost

온 나라가 평창겨울올림픽과 설 명절을 맞아 잔치 분위기로 가득 차 있던 설연휴 첫날, 서울 한 대형병원에 취업한 지 6개월 된 간호사가 고층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과 친구 등의 말을 모아 보면 간호사 사회의 이른바 ‘태움’이 자살의 한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태움’이란 글자 그대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가르치는 혹독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태움’이 단순한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과 다른 점은 학업을 마치고 의료 현장에 처음 투입된 간호사가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수련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선배 간호사의 인품이나 교양이 변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수련 과정 양상은 간호사들을 둘러싸고 있는 노동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sudok1 via Getty Images

담당 환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든가 하는 이유로 업무가 과중해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그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련 과정 역시 그에 비례해 혹독해질 수밖에 없다. 초인적 능력을 발휘해 업무 수행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수련받는 사람을 닦달하게 되는 것이다. 밝고 활발한 성격이나 남달리 당당한 개성 등은 모두 “어디서 그렇게 배웠어?” 따위의 질책을 받는 이유가 돼버리고 만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대학병원에서 간단한 수술을 받게 돼 며칠 동안 병실을 지키며 보호자 노릇을 해본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간호인력 부족 현상이 한눈에 보였다.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동안 잠시라도 멈춰 있는 시간이 없다. 어떻게 인간이 열 시간 정도를 단 몇 초도 쉬지 않은 채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것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인간의 신체 구조가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에게 환자나 보호자들이 뭘 부탁하면 “네,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지만, 병실을 나가는 순간 더 급한 다른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거의 매번 그랬다. 혈압을 측정하던 간호사가 “혈압 다시 한 번 더 재야 하니까 당분간 이 자세로 움직이지 말고 계세요”라고 말하고 나갔는데, 몇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병실을 나가 보니 역시 그 간호사는 잽싼 몸놀림으로 뭔가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혈압 다시 한 번 더 잰다고 하지 않았나요?”라고 묻기조차 미안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실수 없이 완벽하게 일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해 보였다.

매우 시급한 부탁이 아니면 조금씩 늦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환자나 보호자는 자신이 무시당했다 생각하고 고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간호사에 대한 호칭은 거의 대부분 ‘아가씨’다. “아가씨가 아까 분명히 해준다고 그랬잖아요!”라고 항의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벌어진다. 내가 몇 번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불러 봤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호칭이다.

아는 사람의 딸이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취업했는데 업무에 적응이 안 돼 “한 달 동안 밥을 못 먹었다”고 했다. 그 말을 병원 노조 간부에게 전하니 “저 올해로 간호사 7년차인데요, 저도 아직 그런 날이 많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병원이 적정 인력을 확보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수익 때문일 것이다. 간호인력의 담당 환자 수를 지금보다 3분의 1로 줄여도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많은 수라고 한다. “외국 병원들과 달리 한국 병원에는 할머니 간호사가 없다. 노인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30대에 이미 할머니가 된 간호사는 많다. 한국 간호사들은 30대에 오십견을 앓는다”고 말하던 병원 노조 활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병원 노동자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은 곧바로 의료의 질과 연결된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가 1명 늘어날 때마다 사망률이 8% 증가한다는 미국·캐나다의 연구 결과도 있고, 간호인력이 담당하는 환자 수에 따른 최고 등급 병원과 최저 등급 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38%까지 차이가 난다는 통계도 있다.

간호사들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격무에 시달리며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지친 몸으로 일해야 하는 간호사가 당신의 담당 간호사이기를 바라는가?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법으로 제한하는 입법청원을 했던 이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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