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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정말 핵을 포기할까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 모두에게 정상회담의 성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huffpost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너무 빨라 어지러울 정도다. 불확실한 요소가 아직 많지만 일단 방향은 고무적이다. 예정대로 다음달 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린다면 한반도 정세는 더욱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을 수도 있다.  

평창올림픽의 모멘텀을 살려 한반도에 새 국면을 연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은 A학점을 받을 만하다.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이고, 진짜 외교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 주고 있다. 평화외교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데 이어 중재외교로 북·미 대화까지 이끌어 냈다.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서도 운전대를 잡고, 침착하면서도 끈기있게 밀고 나간 문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 

ⓒKCNA KCNA / Reuters

국내 보수세력의 욕을 먹으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에 온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극진히 대접하며 대화의 기회로 활용했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관철시켰다.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남도 논란을 무릅쓰고 수용했다. 그에 화답해 김정은도 평양에 간 우리 특사단을 각별히 예우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잘하는 일이다. 칭찬하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모처럼 스마트한 외교를 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외교안보 분야 인재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다.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같은 관록 있는 인물들을 발탁해 믿고 힘을 실어 줬다. 그들은 동분서주하며 지혜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정의용·서훈 콤비는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해 북·미 정상회담 수용이라는 파격적 결과를 도출했다. 평양-서울-워싱턴에 이어 베이징-도쿄-모스크바를 돌며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주도면밀함도 보이고 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와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오늘의 상황은 올 수 없었다.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던 김정은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가 밀어붙인 ‘최대 압박 정책’의 효과라고 봐야 한다. 한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덥석 문 트럼프의 ‘무모한’ 결단도 국면 전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과 능력 못지않게 운도 따랐다고 봐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다. 김정은이 정말로 핵을 포기하는 대결단을 했는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그토록 힘겹게 개발한 핵을 김정은이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판단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의 비극적 최후를 보면서 핵무기야말로 자신과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검(寶劍)이라고 김정은은 확신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올 들어 김정은이 보여 주고 있는 뜻밖의 행보 앞에서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핵을 포기하기로 하고, 적극적인 대화 공세에 나선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겁도 없이 트럼프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김정은은 세계 최강대국 정상과 나란히 서는 장면만으로 국내적으로 엄청난 선전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비핵화다. 핵 문제에서 정상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면 김정은은 대외적으로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가 밝힌 비핵화 의지가 거짓이거나 속임수인 걸로 판명되는 순간, 김정은은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를 피할 수 없다. 제2의 카다피와 후세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김정은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에게 담판을 제안한 것은 정상국가로 가기 위해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정상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이 불가피하다. 그에 따른 정치적 위험 부담까지도 이미 다 계산하고 내린 결단일 수 있다. 

정상회담이 부담스럽기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북한과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하던 트럼프는 아무런 준비와 내부 협의도 없이 덜컥 정상회담 카드를 받았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며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다. 실패할 경우 트럼프도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정상회담의 성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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