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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포기 비용, 한국에 엄청난 타격' - 기사가 아닌 작문이다

  • 이준구
  • 입력 2018.05.16 11:01
  • 수정 2018.05.16 11:03
ⓒhuffpost

美포춘지 “북핵 포기 비용 2100조원…한국에 엄청난 타격” 이것은 한 일간지의 인터넷판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입니다. 미국 경제매체 포춘지에 올라온 기사를 인용한 것인데,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아 원 기사를 확인해 봤더니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말하자면 포춘지를 인용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으면서도 실제로는 정확한 인용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작문을 했다는 뜻입니다. 

우선 지적해야 할 점은 포춘지에서 소개된 분석 결과, 즉 비핵화의 비용이 2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은 남북한이 통일된다는 대전제하에서 산출된 수치라는 사실입니다. 독일의 통일 후 지출된 비용에 근거해서 그와 같은 예측치를 구한 것이기 때문에 남북한도 통일된다는 전제하에서만 그 예측치가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KCNA KCNA / Reuters

그러나 우리 신문의 그 기사에는 그 예측치가 조건부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 독자들은 그 기사를 읽고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만들려면 무조건 그 정도의 천문학적 비용이 당장 지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지금으로서는 통일이 될 전망이 거의 없고, 그렇다면 그 예측치는 아무 의미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 예측치가 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누락시킨 것이 기사 쓴 사람의 고의인지 실수인지 잘 모릅니다. 실수라면 엄청나게 중대한 실책이며, 고의라면 매우 악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 비핵화 시도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로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춘지의 원문에는 북핵 포기비용이 한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타격이 아니라 부담이라는 표현조차 없습니다. 그 기사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미국경제에 올 영향뿐입니다. 즉 미국의 인플레이션률이 올라갈 것이며, 이자율이 상승하고, 달러 가치에 영향이 올 것이라는 등의 언급만 있을 뿐, 한국경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신문의 기사에는 한국에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포춘지의 기사를 인용한 것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면 원문에 충실하게 인용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요? 한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이라는 전망은 분명한 작문인데, 인용 기사에 이런 작문을 삽입하는 것은 정직한 일이 아니지요.

엄밀하게 말해 포춘지가 인용한 연구결과에서 나온 2조 달러라는 금액은 통일에 소요되는 비용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독일 통일과 관련되어 지출된 비용에 기초해 산출된 수치니까요. 그리고 통일비용과 북핵 포기비용은 판이하게 다른 개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신문의 그 기사는 북핵을 초기하게 만들려면 당장 그만큼의 비용이 지불되어야 하는 것처런 논의를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정보는 북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것과 관련한 논의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점에서 볼 때 매우 무책임한 보도라고 말할 수 있지요.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비용의 일부분을 감당해야 하고, 그것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그러나 우리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올 정도로 큰 비용이 당장 소요될 것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습니다.

*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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