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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13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4일 13시 37분 KST

대북 제재와 인도주의

제재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Reuters
huffpost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대북 인도지원 검토’ 발언은 긍정적이다. 미국이 신뢰조치를 고려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과연 인도지원이 교착에 빠진 ‘비핵화’ 협상을 살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제재와 인도지원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인도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제재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묻는다. 제재를 유지하면서 인도주의가 가능할까?

일부에서는 대북 인도지원이 여전히 필요한지를 질문한다. 2017년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 영유아의 영양상태는 최근 몇년 동안 확실히 개선되었다. 식량 사정이 나아지고 경제도 좋아졌다. 제재가 북한 주민의 생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통계 안으로 들어가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북한의 시장화로 민생의 양극화와 지역별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다. 제재가 길어지면 취약 지역과 취약 계층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제재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제재의 윤리학’을 생각해야 한다. 제재는 정권과 주민을 분리할 수 없고, 사회적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한다. 다시 말해 제재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인도적 위기다. 제재는 또한 인권을 악화시킨다. 제재는 주민의 생명권·건강권·발전권을 침해한다. 제재는 상대 국가의 정권을 강화하고, 그 결과는 주민의 자유권 악화로 이어진다. 인권을 명분으로 취해지는 제재가 결과적으로 인권을 악화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재와 인도주의를 분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도적 면제는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항상 ‘인도지원’을 허용한다. 미국의 강화된 제재 관련 법률에도 ‘인도적 유보’ 규정이 있다. 인도지원과 관련된 금융거래와 물품과 서비스의 제공을 법적으로 허용한다.

그동안 제재를 강화하면서 인도주의를 경시했다. 미국이 북한을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자, 이산가족인 미국 시민권자들의 고향방문길이 막혔다. 미국의 인도지원 단체도 더 이상 북한을 방문할 수 없어, 사실상 인도지원이 어려워졌다. 유엔 산하기구나 다른 국가의 인도지원도 제재의 영향을 받았다. 제재 때문에 식품회사나 제약회사가 물품을 판매하지 않고, 선박회사는 운송을 꺼리고, 은행들은 송금을 거부했다. 법적 허용과 별개로 현실에서 제재는 인도주의와 충돌했다.

제안한다. 최소한 인도주의를 제재와 분리해서, 비정상을 정상화하자. 인도적 면제를 받은 사업이나 물품에 관해서는 제재의 걸림돌을 해소해주자. 인도적 면제의 법 취지를 명심하고, ‘제재의 윤리학’을 잊지 말자. 분단체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반도에서 인도주의는 생각보다 넓다. 제재 완화 이전에도 할 수 있는 교류와 협력이 많다는 뜻이다.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인도지원은 훨씬 어렵다. 민간이 유엔 제재위원회의 승인을 얻기가 쉽지 않고, 승인을 얻은 뒤에도 수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법으로 허용한 민간의 인도지원이라면, 실행이 이루어지도록 절차를 개선하고 행정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처럼 승인 과정을 예측 가능하게 운영하고, 승인을 받으면 일정 기간은 포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허가 과정에서 인도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물론 제재와 인도주의의 분리는 한계가 있다. 제재를 유지하면, 인도적 상황은 악화된다. 제한적인 인도지원으로 제재의 결과인 인도적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나아가 인도지원을 신뢰구축 조치로 볼 수 있을까? 언제나 제재와 신뢰는 충돌한다.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결정적 약점은 ‘시간의 오판’이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 30년의 북핵 역사에서 언제나 틀렸다.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고, ‘전략 없는 인내’ 또한 성공하기 어렵다.

제재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비핵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재라는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얼마든지 제재를 강화할 수도 완화할 수도 혹은 중단하거나 보류할 수 있어야 한다. 인도지원은 인도주의에 따라 하고, 지금은 제재를 검토할 때다. 그동안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해 너무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안타깝게도 ‘북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압축적 비핵화를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협상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재를 유지하면, 신뢰를 쌓기 어렵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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