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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와 탈북 종업원

ⓒhuffpost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한국 현대소설의 고전이 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인간에게는 공적 영역인 광장이 필요하고, 사적 영역인 밀실도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행복도 추구하는 게 인간이다. 광장과 밀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 출신으로 북한군 장교가 돼 6·25 전쟁에 참가한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거제도 수용소를 나오면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행을 택한다. 인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명준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광장과 밀실의 균형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남중국해에 몸을 던진다.

이데올로기에 억눌린 분단 체제에 사는 지식인의 고뇌를 이처럼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도 드물다. 일제 치하에서 북쪽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미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해 남한에 정착한 작가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불과 스물다섯 나이에 이런 소설을 써냈다는 게 지금도 놀랍다.

ⓒ뉴스1

소설 『광장』에 생각이 미친 것은 남북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와 12명의 탈북 여종업원 때문이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순풍에 돛을 단 듯했던 남북관계가 급랭하고 있는 데에는 태 전 공사와 탈북 여종업원 문제가 한몫하고 있다. 국회 강연과 저서 출간을 통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태 전 공사를 방치하고, ‘강제 납치’된 북한 여종업원 송환 요구를 외면하는 등 남측 정부가 ‘판문점 선언’을 위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대화를 이어 가기 어렵다고 북측은 주장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원한다면 태 전 공사의 입은 틀어막고, 탈북 여종업원들은 북송시키란 얘기다.

소련의 유대계 반체제 지식인인 나탄 샤란스키는 2004년 출간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어떤 사회가 자유사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광장 테스트(town square test)’를 제시했다. 누구든지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체포, 구금, 물리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사회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리 못 하는 사회라면 공포사회란 것이다.

연유와 동기가 어떻든 태 전 공사는 자유의지로 한국이란 자유사회에 왔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그의 말이나 글이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된다 하더라도 그의 입을 막고, 펜을 꺾을 순 없다. 그렇게 하는 순간 한국 사회는 자유사회가 아니라는 걸 자인하는 셈이다. 태 전 공사 문제엔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태 전 공사도 자기 말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그가 한 말의 옳고 그름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이명준이 했던 광장과 밀실의 고민은 대한민국에 사는 고위급 탈북자 태영호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JTBC

 

2016년 4월 탈북한 여종업원 문제는 다르다. 당시 정부는 총선을 닷새 앞두고 이들의 입국 사실을 사진과 함께 언론에 공개했다. 정부가 늘 강조해 온 것처럼 당사자와 북한 내 가족의 안전과 인권을 먼저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공개하지 말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으로 북한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는 여론을 조성해 총선에 유리하게 이용할 목적 아니었느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JTBC 탐사보도로 이들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불거졌다. 인터뷰에 응한 지배인과 일부 여종업원의 증언대로라면 100% 자의에 의한 탈북이라고 보기 힘들다.

딜레마에 빠진 문재인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한다. 정확한 진상조사가 우선이다. 이는 여야,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기본가치인 인권과 정의의 문제다. 검찰은 민변이 제기한 고발 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지난 정부의 잘못으로 드러날 경우 정부는 인도주의 원칙을 저버린 국가범죄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동시에 유엔 인권기관을 통해 탈북 여종업원 12명의 자유의사를 확인해 원하는 사람은 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탈북 여종업원들은 자유사회에 왔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에게 광장은 없고, 밀실만 있다. 광장과 밀실의 균형이 깨진 그들의 불행한 삶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할 일이 아니다. 신속한 진상 조사를 통해 그들에게 광장과 밀실의 조화로운 삶을 찾아줘야 한다. 이명준의 극단적 선택은 소설 속 이야기로 그쳐야 한다. 탈북 여종업원들은 우리 사회의 양심과 양식(良識)을 묻고 있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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