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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끌어올린 '진짜' 불륜의 세계를 구경했다

'부부의 세계'에 대한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 김현유
  • 입력 2020.04.10 15:44
  • 수정 2020.04.10 17:08
'부부의 세계' 스틸컷.
'부부의 세계' 스틸컷. ⓒJTBC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는 걸 잘 못하는 터라 영화도 드라마도 집에서는 끝까지 잘 못 보고 채널을 수십차례 돌리는 나인데, 요 근래 푹 빠진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JTBC ‘부부의 세계’.

얼마 전, 휴가를 내고 집에서 빈둥빈둥 채널을 돌리다가 1화를 잠깐 보게 됐는데 순식간에 1, 2화를 다 보고 3화를 앞두고서는 열불 터지는 속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냉장고에 장전해 놓고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짜릿해... 이건 맛으로 치자면 산초와 고수를 잔뜩 넣은 마라탕 같은 드라마...
짜릿해... 이건 맛으로 치자면 산초와 고수를 잔뜩 넣은 마라탕 같은 드라마... ⓒJTBC

신랑은 단기 집중력은 무척 쎄지만, 장기 집중력은 나보다도 더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의 세계‘에 빠져버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스토리만 대충 들어봐도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 고작 ‘막장 불륜 드라마’에 지나지 않는데 그걸 그렇게 집중해서 열심히 본다고?

사실 신랑은 봐도 별로 안 좋아할 것이다. 이런 밥 없이 먹는 마라샹궈 같이 자극적인 드라마는 그의 취향이 못된다. 그래서 채널을 돌려버리진 못하지만, 자기가 재미 없으니까 나도 못 보게 계속 방해를 했다. 이렇게.

”저 남자랑 저 여자랑 부부야?”

″ㅇㅇ”

”그럼 저기 둘은 무슨 사이야?”

″저기, 저 뭐냐, 남편 친구.”

”그럼 저 아줌마는 누구야? 김희애랑 사이 나빠?”

″그, 동료. 의사 동료. 나도 몰라. 봐봐.”

”헐! 저 남자가 여자 때렸네!! 뭐야?? 데이트 폭력??”

쫌!!! 그냥 쫌 보자!!!! 쫌!!!!!
쫌!!! 그냥 쫌 보자!!!! 쫌!!!!! ⓒCN/PowerPuffGirls

물음표 살인마 같으니...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오늘은 혼자 ‘부부의 세계’를 볼 예정이다.

지난 주 ‘부부의 세계’ 명장면은 지선우(김희애 분)가 자신의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와 불륜 관계인 여다경(한소희 분)을 앞에 앉혀 놓고 ”불륜은 단순 배설”이라며 그야말로 ‘빙썅‘의 면모를 보여준 씬이었다고 본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불륜하는 것들 참교육’이라고, 사이다라고 극찬했던 그 씬.

드라마 최대 의문: 이렇게 예쁘고 돈도 많고 사랑받고 자란 애가 왜 나이 많은 유부남 만나지?
드라마 최대 의문: 이렇게 예쁘고 돈도 많고 사랑받고 자란 애가 왜 나이 많은 유부남 만나지? ⓒJTBC

재밌는 건 그 이후 실제 불륜 커플들이 익명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고민을 나누는 온라인 카페의 게시물들이 ‘박제’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게 됐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불륜 상대를 찾는 사이트라면 모를까, 생면부지의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해주고 조언을 해 주는 카페라는 게 있는 줄은 상상조차 못 했던 바다. 그 불륜자 모임 카페의 글을 누군가 엄선(?)해 다른 사이트들에 퍼트린 만큼, 이는 드라마만큼이나 자극적이었다. ‘부부의 세계’ 때문에 화제가 된 만큼 대부분이 그 명장면, ”단순 배설”이라는 단어에 스위치가 눌려버린 듯했다.

″배설이라니, 저는 애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그런 표현은 정말 기분이 불쾌하더군요.”

″애인한테 물어봤는데, 배설이라니 말도 안 된대요. 절 정말 사랑한대요.”

미란언니 표정=내표정
미란언니 표정=내표정 ⓒtvN

문득 궁금해졌다. 드라마 속의 불륜이야 뭐 드라마틱한 사건 사고들이 벌어져 이뤄지는 가짜 이야기이지만, 실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불륜에 발을 들이게 되는 걸까? 나와 인생을 함께하기로 한 반려자와의 신뢰를 배신해 가며 이 세상에 드러낼 수도 없고 그 누구한테도 당당할 수 없는 관계를 왜 맺는 걸까?

사실, 웬만하면 ”귀찮아서” 못할 것 같다. 내 경우, 우리 신랑 한 사람의 저 수많은 물음표 살인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 여보 세제 어딨어? 여보 우리 물 시켰어? 여보 저녁 뭐 먹어? 여보 저거 새로 산 거 써 봤어? 여보? 여보!!! -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신랑의 그 수많은 물음표를 다 받아줄 만큼 그를 사랑하는데, 그게 내가 끌어낼 수 있는 사랑의 전부다. 기존의 사랑 그 이상의 사랑을 방출하는 게 불륜 아닌가? 그렇게 많은 사랑이라면 상상만 해도 벌써 피곤하다.

그렇게 신의를 어기고 비밀을 지키며 에너지 넘치게 사랑을 한 바가지 가득 끌어내 불륜을 한다고 생각해 보면, 불륜인들은 정말 힘쎄고 오래가는 건전지가 따로 없다. 그렇게 에너자이저라면 그 에너지로 위자료 왕창 물고 양육권을 통째로 빼앗기는 이혼을 당하신 뒤 막상 이혼하고 나니 돈도 불륜의 재미도 모두 사라져 망하시면 좋겠다????는 게 진심이랄까. 

뭐, 드라마의 화제성 덕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불륜의 저변이 생각보다 드넓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됐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큰 역할한 것 같다는 입장이다. 그나저나 5회 예고편에서 이태오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떠들어 대며 내 안의 폭력성을 건드리던데, 오늘은 10시 50분까지 어떻게 버티나... 두근두근...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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