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코리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미국 본사의 트윗을 부적절하게 번역해 리트윗했다가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넷플릭스 미국 본사는 5월31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 최근 확산하고 있는 시위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강압 체포 끝에 목졸려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넷플릭스는 2013년 미국에서 해시태그로 처음 등장한 이후 전 세계 흑인 인권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구호가 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를 그대로 인용했다.
″침묵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과 같다.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To be silent is to be complicit. Black lives matter.)” 넷플릭스가 올린 트윗이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이 트윗을 인용해 리트윗하면서 한국어로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중요합니다”라고 적었다.
이 트윗은 곧바로 비판을 받았다. 단지 ‘흑인’이라는 단어를 삭제했기 때문 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모두의 목숨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라는 구호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된 역사가 있다. 이 운동을 비판하는 인사들이 내세우기 시작하면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구호가 인종차별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2016년에 올린 트윗에서 ‘모두의 목숨은 소중하다’ 구호를 비판하며 이렇게 적기도 했다.
#모두의목숨은소중하다는 마치 팔이 부러져서 의사에게 갔는데 의사가 ‘모든 뼈는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지금 당장은 부러진 이 뼈를 치료하자는 거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은 ‘흑인이 아닌 다른 사람(경찰관, 백인 등등)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다는 얘기냐‘는 (일부는 악의적인) 비판에 시달렸다. ‘모두의 목숨은 소중하다‘, ‘경찰관의 목숨은 소중하다(Blue Lives Matter)‘, ‘백인의 목숨은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 같은 즉자적인 반대 구호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을 감안하면 이 구호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로 번역하는 것 역시 정확한 번역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넷플릭스코리아는 부적절한 번역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곧 이 트윗을 삭제한 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부분만 남긴 트윗을 새로 올렸다.
그러나 넷플릭스코리아가 나름대로 의역한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라는 표현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이 문구는 조롱 섞인 ‘밈’으로 전락하게 된 나름의 맥락이 있다.
2017년 한샘 성폭행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포함된 캠페인 영상에 출연한 남성 연예인 및 유명 인사들은 카메라를 향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 참여한 남성들 다수가 2018년 한국 사회를 휩쓴 ‘미투 운동’이나 연예계 성범죄 사건들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 때문에 이 문구는 다시 소환돼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비판의 대상이 됐다.
뿐만 아니라 ”침묵하지 않겠습니다”에는 원문에 담겨있는, 인종차별에 맞서 행동할 것을 독려하는 의미가 제거되어 있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이 두 번째 트윗마저 삭제한 후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본사의 트윗을 원문 그대로 리트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