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게 고향을 묻는다면, ‘저를 낳아 주신 땅은 에티오피아지만, 키워 주신 땅은 이탈리아예요’라고 답할지 모른다. 커피콩 한 알 나지 않건만, 현대 커피의 창시자로 불리며 커피를 예술의 경지로 이끈 이탈리아. 카페라는 말부터 라떼, 카푸치노 등의 커피 명이 이탈리아라는 점은 차치하고, 커피 로스팅의 명칭까지 ‘이탈리안’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 연유를 찾기 위해선 수많은 무역선들이 몰려들었던 400년 전 베네치아로 거슬러 가야 한다.
이탈리아인은 커피도 ‘예술’로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르네상스까지 유럽 최고의 무역 도시였다. 터키 등지로부터 온 무역선이 먼바다까지 점점이 떠 있었고, 유럽의 거상들은 동방에서 온 비단과 향료들을 찾아다녔다. 그 틈을 타 ‘커피’도 소량 전달됐다. 그때까지 커피는 약으로 사용되며 비싼 가격 때문에 몇몇 고위층만이 누리던 이국의 호사품이었다. 그러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베네치아에 첫 카페가 문을 열면서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된다.
물의 거리, 산 살바토레 골목과 가까운 곳에 있는 집 세놓습니다. 월세는 200두카티와 커피 10파운드입니다. _1789년 신문광고 中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말까지 베네치아에 운영되던 카페만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인은 단순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커피 소비가 늘면서 제조 시간을 줄일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더 맛있는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장인 정신이 커피를 예술의 경지로 진화시키고 있었다. 1901년, 밀라노 출신의 ‘루이지 베제라’에 의해 세상을 바꾼 기계, ‘에스프레소 머신’이 세계 최초로 발명된 것이다.
’생두’ 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원두’를 수출한다
에스프레소 머신 외에도 이탈리아를 커피 종주국으로 이끈 숨은 주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로스팅’ 기술이다. 이탈리아는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3대’ 원두 수출국이다. 수입한 생두를 로스팅 해 원두 형태로 재판매한다는 얘기다. 로스팅 전문 회사만 해도 2천 7백 개가 있을 정도. 사실 생두 상태의 열매는 우려봐야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생두의 수확시기, 수분 함량, 조밀도, 종자 등 특성에 따라 불의 세기와 시간을 조절해 조화롭게 표현하는 로스팅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커피 맛이 난다.
이탈리아인은 연하고 부드러운 커피부터 진하고 쓴 커피까지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로스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다는 장인들의 열망이 다양한 로스팅 법 개발에 불을 붙인 것. 머신 개발국의 이점으로 같은 기계라도 로스팅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았다. 그 덕분에 장화처럼 긴 나라의 생김새에 따라 북부와 중부, 남부 등 지역마다 다른 개성의 커피가 생겨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8단계 분류법’이란 로스팅법이 대중화되어 있다. 볶은 정도에 따라 숫자 1에서 8까지 표기하는 방식으로 8단계가 가장 강하게 원두를 볶았다는 의미다. 한데, 이 8단계의 다른 이름이 ‘이탈리안(Italian)’이다. 오래전 로스팅 법을 정리할 때 국가마다 선호하는 로스팅 정도에 따라 이름을 붙였고, 이탈리아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커피 ‘로스팅’의 역사성과 전문성의 증거가 된다.
30년 전, 이탈리아 커피 여정이 만든 기업
오랜 역사와 로스팅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커피 한 잔은 30년 전 이들의 마음도 흔들었다. 바로 ‘네스프레소’다. ‘이렇게 맛있는 이탈리아 바의 정통 커피를 세계 누구나 직접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구현한 것이 네스프레소 설립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