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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능한 존재로 느껴져" 세상 떠난 네이버 직원이 시달린 '직장 갑질' 정황이 공개됐다

“팀원 ㄹ씨가 이직하면 ㄱ님(고인)은 나한테 죽어요”

  • 이인혜
  • 입력 2021.06.07 17:39
  • 수정 2021.06.07 17:41
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사옥 앞에서 네이버 노동조합인 ‘공동성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사옥 앞에서 네이버 노동조합인 ‘공동성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임원과 미팅할 때마다 내가 무능한 존재로 느껴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 같아.” 지난달 25일 업무압박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네이버 직원 ㄱ씨는 두 달 전 동료에게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ㄱ씨가 생전 임원 등 상사들로부터 무리한 업무 지시와 폭언 등을 겪고 압박감을 호소해온 정황이 네이버 노동조합인 ‘공동성명’의 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공동성명은 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ㄱ씨 사망 경위 등과 관련한 진상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네이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공동성명은 ㄱ씨가 숨진 뒤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을 대상으로 제보를 받고, 고인과의 메신저 대화기록 등을 확인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ㄱ씨가 야간·휴일·휴가기간 중에도 업무를 지속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 정황이 드러난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던 고인은 퇴근 이후에도 밤 10시께 업무에 복귀하거나 자정이 가깝도록 컴퓨터 앞에 있는 등 야근이 일상이었다. 지난해 6월 밤 9시40분께 동료에게 보낸 메신저에서 ㄱ씨는 “오전에 (시스템)장애나서 처리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려 공원에 나갔는데, 또 장애가 나 심신이 망가졌다”고 호소했다.

 

업무 채근, 폭언 정황 

특히 지난달 신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업무 강도가 올라갔다. 올 초부터 ㄱ씨의 메신저 대화 내역에는 “두 달 동안 해야 할 업무가 매일 떨어져 매니징(처리)하기가 어렵다”, “장애가 터져 3일 동안 죽을 뻔했다”는 등의 내용이 반복됐다. 고인은 휴가였던 지난달 21일에조차 사내 메신저를 통해 일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고인에게 돌아온 것은 더욱 심한 업무 채근과 폭언이었다. 서비스 배포가 임박하면서 개발부서 책임리더(임원) ㄴ씨 뿐만 아니라, 기획부서 책임리더인 ㄷ씨까지 업무 지시를 내렸다. 자신의 지시가 관철되지 않으면 ㄴ씨는 부서원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ㄱ씨에 면박을 줬다고 한다. 한미나 공동성명 사무장은 “임원 ㄴ씨와 ㄷ씨의 엇갈린 지시 사이에서 ㄱ씨는 ‘일을 계속하라는 것인지, 나가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동료에게 토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팀원 이직하면 나한테 죽어요” 고인 압박

부서원들이 “ㄴ 책임리더와 함께 일하기 힘들다”며 잇달아 사직서를 내자, ㄴ씨는 오히려 ㄱ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지난해 10월 ㄴ씨는 회의 중 “팀원 ㄹ씨가 이직하면 ㄱ님은 나한테 죽어요”라고 고인을 압박했다. ㄹ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ㄱ씨에게 퇴사 뜻을 밝혔고, 그날 오후 ㄱ씨는 세상을 떠났다.

ㄱ씨를 비롯한 동료들이 임원들의 부당한 지시 등을 지속적으로 신고해왔지만 회사가 이를 묵인한 정황도 드러났다. ㄴ씨는 지난 2016년에도 업무 중 폭언 등이 문제가 돼 회사를 떠났다가 지난 2019년 1월 재입사했다. ㄴ씨의 복귀 후 ㄱ씨 부서원들은 최아무개 부사장이 참여한 회의에서 우려를 표했으나, 최 부사장은 “문제가 있으면 ㄴ씨에게 말을 하고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 내가 책임지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ㄱ씨 등 팀장 14명은 최 부사장과의 회의를 통해 ㄴ씨의 폭언 사실 등을 알렸으나, 문제를 제기한 일부 리더들만 직위 해제됐다.

 

″고인 사망, 업무상 재해” 

이에 공동성명은 “고인의 사망은 회사가 지시하고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다. 공동성명은 진상 규명을 위해 △고인의 사내 업무 기록 일체에 대한 보존 △2019년 1월 이후 고인 부서에서 퇴사한 직원들의 면담 내용 공개 △ㄴ씨, ㄷ씨의 임원 선임 당시 검증 절차 공개 등을 요구했다. 공동성명은 그동안의 자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오세윤 공동성명 지회장은 “직원들이 제기한 문제를 사쪽이 제대로 살펴보기만 했다면 우리가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직접적인 가해를 한 임원 ㄴ씨와, ㄱ씨의 문제를 알고도 묵살했던 경영진은 이 일에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에 기여한 바가 커서’ 정상 참작을 하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꼬리 자르기’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책임이 드러난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경영진은 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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