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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댓글 장사’ 공론장을 비틀다

‘회사는 회원이 게재한 사실의 신뢰도에 관해 책임지지 않는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국가기관이 사회적 공론이 벌어지는 사이버 광장에 직접 개입하여 마치 익명의 국민인 양 사회적 쟁점, 특히 선거 쟁점에 관한 의견 등을 조직적으로 전파함으로써, 그러한 형태의 국가권력 개입을 전혀 상정하지 못한 채 사이버 공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과 감상을 개진하고 다른 관점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논쟁했던 국민은 이제 사이버 공론장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의심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2015년 2월 서울고법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사이버 공론장’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훼손한 점이 판결의 주된 이유가 됐다.

네이버 기사의 댓글 추천수를 조작한 ‘드루킹 사건’ 역시 국정원 댓글사건과 행위 주체·의도 등은 다르지만 ‘사이버 공론장’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뉴스 서비스에 관한 ‘사이버 공론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네이버에 ‘여론 왜곡’을 막을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를 강조한다.

 

■ 상업적 목적의 댓글서비스가 여론 전쟁터로

23일 네이버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일상적인 ‘여론전’의 ‘전쟁터’가 돼버린 네이버 뉴스서비스의 ‘댓글 기능’은 2004년 처음 만들어진 뒤 진화를 거듭해왔다. 현재 여론전의 수단으로 지목받는 댓글 ‘추천’ 기능은 2006년 처음 생겼다. 이듬해엔 댓글에 대한 호불호를 공감·비공감으로 나눠 반응할 수 있게 됐고, 2013년엔 공감·비공감 수치에 따른 댓글 정렬 기능이 처음 생겼다.

네이버는 “카페·지식인 등에 있던 댓글을 뉴스에도 적용해 기사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도입했다”고 취지를 밝힌다. 기사를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댓글 작성·추천을 통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이를 통한 여론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네이버의 설명이다.

네이버는 댓글을 공감순·공감비율순·최신순·과거순 등 다양한 순서로 재배열해서 볼 수 있고, 남성과 여성 혹은 어느 연령대가 댓글을 많이 썼는지를 시각적으로 통계화하는 등 ‘즐길거리’를 늘렸다. 이는 곧 네이버의 수익으로도 이어진다. 일종의 ‘뉴스 소비자 놀이터’를 제공해 이용자들을 붙잡아두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 수익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댓글서비스의 ‘공정성’에는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이어져왔다. 실제로는 판매자가 작성했지만, 고객인 척 작성한 글이 네이버 블로그·카페에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됐던 것처럼, 뉴스 서비스의 댓글도 ‘댓글 알바’가 글을 작성하고, 매크로(자동입력) 프로그램을 통해 추천수를 늘리는 방식 등으로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댓글 추천수 조작을 막기 위해 ‘문자인증 보안기술’(캡차·CAPTCHA)로 본인 인증을 하거나, 같은 사용자 이름으로 댓글을 연속해서 달 때는 10초 간격을 두게 하고, 한 사용자 이름으로 24시간 동안 작성할 수 있는 댓글을 20개로 제한하는 장치 등을 해놨다.

그러나 네이버가 아무리 ‘방패’를 두껍게 한다 하더라도 조작을 노리는 ‘창’이 거듭 날카로워졌다. 인터넷 보안업체 하우리 최상명 실장은 “자동화 프로그램 사용을 걸러내는 기술이 진화해도, 매크로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우회 접속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100% 잡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막고 뚫는 싸움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매크로 등으로 조작된 ‘뉴스 댓글’은 소비자인 누리꾼 처지에서는 네이버에게 ‘불량 서비스’를 받은 셈이 된다. 네이버가 수집한 공론이 ‘참’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이버는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네이버 이용약관을 보면 ‘책임 제한’(21조) 항목에서 ‘회사는 회원이 서비스와 관련하여 게재한 정보, 자료, 사실의 신뢰도, 정확성 등의 내용에 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회사는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관련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돼 있다.

 

■ ‘제2 드루킹’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이 때문에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집중된 ‘공론의 장’을 분산시키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포털사이트가 각 언론사의 기사를 직접 전재하고, 포털사이트에 댓글을 다는 방식(인링크)이 아니라, 포털은 각 언론사의 기사 링크만 제공하고 댓글은 해당 언론사 누리집에서 달도록 하자는 것이다. 구글이 채택하고 있는 이 방식을 ‘아웃링크’라고 한다.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장은 “언론사 사이트에 댓글을 달고, ‘소셜 로그인’(에스엔에스 계정 인증을 하는 것)을 통해 댓글을 달도록 하면 악성 댓글이나 공론장 왜곡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의 ‘무책임한 댓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댓글이 사회적 공론장이 된 건 독점적 포털로 뉴스 소비가 집중되기 때문에 야기된 한국의 특수한 현상”이라며 “예컨대 뉴스와의 구체적인 연관성, 다양성, 질의 기준 등을 강화한 댓글 운영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드루킹 사건’을 막자는 취지의 다양한 입법안이 나오고 있다.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작업을 막기 위한 이른바 ‘매크로 방지법’(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대여·도용한 타인의 개인정보로 여론조작 등 부정한 목적으로 게시판에 댓글을 쓰는 행위를 금지하는 ‘드루킹 방지법’(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 누리꾼이 실명을 밝히고 댓글을 달게 하는 ‘댓글 실명제’(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 등이다. 그러나 이런 ‘법적 규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유경한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 교수(언론학)는 “(공론장 왜곡 범죄는) 지금 있는 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가령 매크로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규제를 해도 할 사람들”이라며 “‘자율 규제’ 원칙에서 ‘댓글 실명제’는 특히 거리가 먼 얘기다. 법적 규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사회적 이익의 총합이, 도입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사회적 공익보다 더 큰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도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데다 국가가 개입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자율 규제와 함께 사회적 감시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네이버 뉴스에 달린 댓글과 공감의 숫자, 또 이에 많이 참여한 이용자의 기록을 적어둔 ‘워드미터’라는 분석 누리집이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유경한 교수는 “(누리꾼들이 봤을 때) 이건 매크로고 음해성 악성 댓글이며 여론이 아니라는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는 교육을 통해 수용자들이 세워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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