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20년 08월 28일 17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8월 28일 17시 49분 KST

웹툰 '정년이' 서이레·나몬 작가 인터뷰 : "욕망을 선명히 드러내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

‘여캐(여성캐릭터) 맛집’ 웹툰을 그린 작가는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네이버 웹툰

″여성이 나와서 다 해 먹는 웹툰 없나요?” 

포털사이트 다음 커뮤니티에 올라온 질문이다. 검색창에 ‘여성 서사 웹툰’이라 쳐도 느낌은 비슷하다. 상위에 뜨는 링크는 “OOOO 웹툰 추천한다”는 포스팅들인데, 하나 같이 여성 ’서사’를 강조한다.

최근 몇 해 동안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대중문화 작품이 크게 늘었다. 웹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갈증은 여전하다. 왜일까? 독자들은 단지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원하는 게 아니다. 여성 캐릭터가 욕망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이길 바란다. 반대로 여성 캐릭터를 편협하게 소모하면 반발을 일으킨다. 최근 기안84 웹툰 ‘복학왕’ 논란이 단적인 예다.

‘여성 서사’라는 니즈에 잘 들어맞는 웹툰 중 ‘정년이’가 있다. 1020 웹툰 독자 사이에선 ‘여캐(여성 캐릭터) 맛집’이라 불린다.

웹툰 ‘정년이’는 1950년대 주연부터 단역까지 여성 국악인들로 꾸려졌던 ‘여성 국극단’이 소재다. 당시 ’민족 오페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리다 1960년대에 사라졌다. 한국전쟁 뒤 침체된 대중문화계를 이끌었던 여성 예술가 집단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정년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을까? 지난 24일, 서이레(스토리), 나몬(작화) 작가를 서면 인터뷰했다.

서이레·나몬 작가 제공
나몬 작가가 '정년이'를 작업하고 있다.

- 여성 국극이란 소재가 색달라요. 국극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요?

= 이레 : 국극은 소리,춤,연기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인데, ‘여성 국극’은 여성이 모든 배역을 연기해요. 그 연기자들의 ‘젠더 무법자’다운 면모가 좋았어요. 남성을 연기하는 여성 배우들은 남성의 몸놀림과 눈빛, 말투 등을 연구하고 훈련해요. 남역 배우의 인기가 높았다는 점도 재밌었어요. 숙소에서 단체 생활을 하기도 하니까 캐릭터 간에 충돌하는 욕망을 보여주기에도 적절한 소재죠.

이 장르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해요. 채 100년도 되기 전에 잊혔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 나몬 : 각 캐릭터가 갈등과 화합을 반복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극단 안에 연구생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많이 나올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여성들끼리 모여있으니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아주 많이 그릴 수 있는 점이 제일 좋았어요. 

배급사 ‘영희야 놀자’ / 네이버 웹툰
(좌) 1958년 작 배우 김경수(왼쪽)씨와 김진진씨가 출연 '별 하나' (우) 웹툰 '정년이' 국극 장면 중

 - 간혹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거나 성별 고정관념을 보이는 웹툰이 있어요. ‘정년이’는 ‘숏컷’ 같은 외형으로 성 고정관념을 지우려고 시도하는데, 여성 캐릭터를 표현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 나몬 : 외모에서부터 각 캐릭터의 개성에 맞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머리 스타일도 다양하게 해보려 했고요.

 = 이레 : 사건이나 인물이 고정관념에 갇힐까 고민해요. 6.25 전쟁 참전용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보통 군인은 남성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6.25 전쟁에 참전한 여군 정보를 수집하며 이런 부분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어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제 고정관념으로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들이요. 

네이버 웹툰 '정년이' / 서이레(스토리), 나몬(작화)
남역 스타 배우 '문옥경'
네이버 웹툰 '정년이' / 서이레(스토리), 나몬(작화)
주인공 윤정년의 짝 선배로 등장하는 '백도앵'
서이레·나몬 작가 제공
웹툰 '정년이' 작업실 벽면 사진

- 여성 서사 웹툰을 작업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나몬 : 사명감을 갖고 작업하는 건 아니에요. 전부터 여성 캐릭터에 매료된 기억이 작업을 하는 근간이에요. 좋아서 하는 거죠. 여성 캐릭터들이 겪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이 있고, 이걸 잘 담아낸 작품을 만나는 건 즐거운 경험이에요.

- ‘건강한 욕망을 볼 수 있어 좋다’는 반응도 많아요. 여성 창작자로서 보고 싶은 여성 캐릭터가 있나요? 

= 이레 : 전 오히려 ‘안 건강한 욕망’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보고 싶어요. 통상적으로 ‘여자가 품으면 (사회가) 싫어하는 욕망’을 가진 캐릭터 말이죠. 여성 서사 웹툰은 그런 상식을 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죠. 

서이레·나몬 작가 제공
나몬 작가가 '정년이'를 작업하고 있다.
서이레·나몬 작가 제공
서이레 작가가 쓴 웹툰 '정년이' 시나리오
네이버 웹툰 '정년이' / 서이레(스토리), 나몬(작화)
'정년이' 중 한 장면

 - ‘정년이’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이레 : 엄마가 웹툰 대본 쓰는 걸 많이 반대하셨어요. 웹툰으로 돈 번다면서 아르바이트도 계속하니 안정성과 금전적인 문제로 걱정하셨죠. 지지와 응원을 바랐는데 속상했죠. ‘정년이’ 연재하고 얼마 안 돼서 엄마가 사과하셨어요. 이렇게 잘하는데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작품을 통해 엄마와 내가 서로 더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 뿌듯해요.

 = 나몬 : ‘정년이’처럼 막무가내이고 ‘영서’처럼 최고를 꿈꾸며 ‘부용이’처럼 속을 알 수 없고 ‘주란이’처럼 강단 있고 ‘도앵이’처럼 모순적이지만 끝내 마주하고 극복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면들을 지닌 캐릭터들을 그리고 싶어요.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 

이성적이고, 용감하고, 근육질인 남자와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가녀린 여자.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를 연기하며 살지. 국극 배우처럼.

 하지만 평범한 삶 어느날, 어떤 사람들은 느끼고 말아.
‘피곤하다’ ‘답답해’ ‘이건 내가 아냐’
‘이 지긋지긋한 연극 때려 치우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되는걸까?’

 돼. 내가 증거야.

- ‘정년이’ 대사 中

이소윤 에디터 soyoon.lee@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