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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인터뷰] '동성애 조장' 논란된 책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출판사, 노란돼지 김성은 편집장을 만났다

어른들이 문제라고 지적한 '책 내용', 아이들은 그게 왜 문제냐고 물었다.

노란돼지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노란돼지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노란돼지 제공

“‘나다움 어린이 책’ 목록은 몇 사람이 논의해서 완성된 게 아니에요. 악의적인 편집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인 거죠.”

출판사 ‘노란돼지’ 김성은 편집장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김성은 편집장은 지난 26일 선정성 논란으로 일선 초등학교로부터 전량 회수된 ‘나다움 어린이 책’ 7종 중 한 종을 만들었다. 일부 학부모의 항의로 결정된 일이었지만, 문제제기가 있다고 너무 쉽게 회수를 결정한 여성가족부를 비판하는 의견도 많았다. 회수된 책은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코로나 19로 조심스러운 상황에서도 김 편집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9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적이 드문 카페에서 ‘동성애 조장’을 지적받은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를 기획한 그를 만났다. 땀에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무더운 날이었고, 대한출판협회(회장 윤철호)가 ‘여가부는 회수 결정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이튿날이었다.  

8월 25일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이 '엄마 인권 선언' 책에서 '동성애 조장'을 문제 삼은 내용 /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왼) 여성으로 보이는 두명이 어깨동무하는 그림(오)
8월 25일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이 '엄마 인권 선언' 책에서 '동성애 조장'을 문제 삼은 내용 /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왼) 여성으로 보이는 두명이 어깨동무하는 그림(오) ⓒ노란돼지
8월 25일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이 '아들 인권 선언' 책에서 '동성애 조장'을 문제 삼은 내용 /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
8월 25일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이 '아들 인권 선언' 책에서 '동성애 조장'을 문제 삼은 내용 /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 ⓒ노란돼지

-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가 배포된 5개의 초등학교에서 회수됐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무엇을 문제 삼았나

= 책 마지막 장에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나온다. 이 부분을 보고 ‘동성애를 조장하고 미화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책 시리즈 전제가 ‘가족’이다. 이성애 형태의 가족을 바탕으로 구성된 건데 마지막 조항만 보고 ‘동성애 조장’을 이야기하는 건 모순이다.

- 책 7종의 회수가 결정되면서 페이스북에 심경을 담은 글을 올렸는데, 지지하는 목소리가 많이 보였다.

= 처음에는 누가 봐도 ‘악마의 편집’처럼 느껴져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이 커지니까 출판사에서 침묵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인권 선언’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고 글을 올렸다. 모르는 분들이 공유도 많이 해주시고 같이 공분해주셨다. “책을 사보겠다”고 하시며 인증샷을 올려주는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책을 읽고 “굉장히 ‘순한 맛’인데... 호들갑을 떨 문제도 아닌데…”라고 했다.

- 이 책이 ‘동성애’가 문제 될 거라고 생각해봤나

= 2018년 한국에 출간된 후 처음 문제 제기를 받았다. 아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보고 ‘난 여자니까 여자를 좋아해 볼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 사람 고유의 권리다, 인정해줘야 한다고 알려주는 거다. 11살 자녀들에게 책 마지막 장을 보여주고 이걸 문제 삼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주니 “왜? 뭐가?”라면서 전혀 이해를 못 했다.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더라.

-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편집한 부분만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 논란이 된 성교육 책을 두고 “이차 성징이 일어난 다음에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 제가 “책은 읽어 보셨나요”라고 댓글을 다니 “책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이라고 하더라. 책을 판단하려면, 책을 읽고 그 한 권이 주는 메시지를 봐야 한다. “자녀에게도 이 책을 보여줄 수 있느냐, 결과를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댓글이 있었는데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된 책이라면 믿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비난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성교육’을 하면 좋을지 대안이 없다. 

- 논란의 화살이 ‘나다움 어린이 책’을 회수한 여성가족부로 향했다. 여성가족부의 결정이 아쉽지는 않았나.

= ‘나다움 어린이 책’ 목록은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 만들었다. 공론의 장 없이 회수가 결정된 건 아쉽다. 책 회수가 결정된 데에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게 아쉬운 거다. 오히려 김병욱 의원이 책 내용을 지적한 게 문제다. 성교육 인식이 앞서 나가긴커녕 현재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결과로 선입견을 품고 어린이 책을 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참고 도서로 쓸 때 조심스럽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다.

담푸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내용 일부
담푸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내용 일부 ⓒ담푸스

 - 담푸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책은 덴마크에서 1971년에 출판됐다. 외국 성교육 그림책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의문이다. 

= 수십 년 동안 읽어와도 문제가 된 적 없다. 만약 이 책이 문제가 됐다면 이미 그 전에 절판이 요구됐을 거다. 어린이 책 출판 자체가 신중한 부분이 있다. 어른이 읽는 책처럼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조심스러운 환경에서 ‘성교육 그림책’이 나온거면 충분히 공개된 자리에서 교육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일부 장면을 가지고 아이들의 ‘조기 성애화’ 문제를 지적했다.

= ‘조기 성애화’라는 말도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문제가 된 그림만 보고 “이거 애들한테 보여주면 안 되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많았다. ‘보여주는 시기가 더 늦어야 한다’, ‘성관계 과정을 빼고 임신부터 가르쳐야 한다’라는 고민까지도 미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반응이다. 아이와 공개적으로 성관계는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거다라고 얘기해야 아이는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 ‘동성애 축제가면 동성애자 되고, 성교육하면 미성년자가 성관계를 하고, 산천어 축제가면 산천어가 되고, 새우젓 축제가면 새우젓이 되는 나라’ 라고 이번 논란을 비꼬는 댓글도 있더라. 우리나라도 더 솔직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2018년 유네스코에서 포괄적 성교육 기준안을 발행했다.‘성’을 생물학적 특징으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인간 생애 ‘성’과 관련한 모든 경험을 다뤘다. 우리 출판사도 생리부터 임신, 데이트 성폭력 등을 다룬 ‘성교육’ 책을 준비 중이다. 성을 문란하게 만들자는게 아니라 음지에서 얘기하는 ‘성’을 꺼내놓고 건강한 시각으로 바라보자는거다. 이런 책들을 읽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 여전히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하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성교육책이 많이 없다.

= 부모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성’을 설명해주기 힘들다. 그렇다고 ‘유튜브’나 ‘드라마’로 가르칠 수도 없다. 우리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난감하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같이 잘 만들어진 성교육 책이 있으면 부모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성교육 책을 볼 때 아이가 부끄러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다. 교사든 부모든 그 과정을 ‘내용 문제’로 바라볼 게 아니다. “성은 자연스러운 거다”라고 얘기하면서 부끄러운 감정도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노란돼지 김성은 편집장이 '나다움 어린이책' 토론회에 양육자로 참여한 모습
노란돼지 김성은 편집장이 '나다움 어린이책' 토론회에 양육자로 참여한 모습 ⓒ김성은 편집장
노란돼지 '엄마 인권 선언' 내용 중 6조  '모든 힘든 일을 버텨 내지 않아도 될 권리'
노란돼지 '엄마 인권 선언' 내용 중 6조  '모든 힘든 일을 버텨 내지 않아도 될 권리' ⓒ노란돼지

- 이번 일로 ‘나다움 어린이 책’ 활동을 알게 된 분들도 많다.

= 그런 면에서는 ‘나다움’ 활동을 수면 위로 올려준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기회를 통해서 지적받은 책 내용을 제대로 알리고, 좋은 성교육을 할 수 있는 책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나다움 어린이 책’ 주관은 여성가족부지만 기획·진행은 비영리 민간단체 ‘씽 투 창작소’에서 한다.

- ‘나다움 어린이 책’은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나?

= 2019년 나다움 사업 초창기에 그림책 작가, 평론가, 동화 작가, 교사 등 각계 전문가가 모여 ‘나다움 어린이 책 선정 위원회‘를 만들었다. 10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국내외 아동 도서 1,200여 종을 심사했다. 도서위원회는 ‘다양성’, ‘자기 존중’, ‘공존’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책 목록이 완성되면서 최종 발표하는 토론회 자리에 갔는데 우리 출판사 책 6권이 선정됐다. 영광스러웠고 감사했다.

-  책 목록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비난으로 ‘나다움’ 사업이 축소될까 걱정하기도 했다.

= ‘나다움’은 고마운 활동이다. 어린이 책을 만들 때 어른 입장에서 보는 게 아니라 이 표현은 비하인지, 성 역할을 고착화하는 거 아닌지 더 고민하게 됐다. 비상식적인 일로 활동이 위축되지 않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수면 위로 올라온 책 10권뿐만 아니라 ‘나다움 철학’을 담은 책이 더 알려져서, ‘깊은 고민을 한 어린이 책이 많다’는 얘기가 함께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나다움 어린이 책 ‘공존’ 목록에 선정된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책 소개를 부탁드린다.

= 2016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우리 가족 인권 선언(엄마·아빠·아들·딸) 책은 2018년 한국에 출간되면서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추천도 받았다. 아이들이 ‘나답게’ 행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기획했다. 한 부분만 편집해서 문제가 있는 책 처럼 보이지만 “엄마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아들도 발레를 배울 수 있다” 처럼 가족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권리를 담은 책이다. 언젠가 “아이에게 밥해주지 못하고 시켜먹어서 괜히 미안하다”는 댓글이 보였다. 이 책은 “엄마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지”하면서 엄마들을 위로해준다.

 

이소윤 에디터 : soyoon.lee@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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