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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예능화 ‘쓴맛’ : 나경원 예능프로그램 출연의 두 가지 문제

세수 오프닝으로 '1억 피부과' 논란을 잠재우고, 딸의 특혜 시비는 소박한 성취로 프레임이 바뀐다.

TV조선 '아내의 맛'
TV조선 '아내의 맛' ⓒTV조선

TV조선 ‘아내의 맛’이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5일 방송한 나경원의 출연 회차는 시청률이 11%를 기록했다. 12일에는 박영선이 출연했으나 기대만큼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아내의 맛’의 정치적 파급력은 상당하다. 오죽하면 11일에 우상호 서울시장 후보가 “특정 후보를 조명해준 것은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며 화들짝 불만을 표했을까.

나경원 편은 모든 논란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하나하나 격파하도록 정교하게 구성된 극영화적 텍스트로 보인다. 시작부터 나경원이 세수를 한다. 아이돌 스타들의 팬서비스 동영상에서 ‘쌩얼’ 미모와 친근감을 과시하기 위한 오프닝 아닌가.

스튜디오 안 호들갑스러운 추임새가 더해지면서, ‘1억원 피부과’ 논란이 악의적인 음해였다는 해명이 단박에 설득력을 얻는다. 여기에 단출한 화장품과 “다 쓴 화장품 용기를 잘라가며 쓴다”는 언급은 그가 서민의 생활 방식을 공유한다고 믿게 한다.

남편이 발바닥 사이에 커피분쇄기를 끼고 돌린다. 소탈하고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김재호 판사가 나경원을 비방한 누리꾼을 기소하도록 청탁했었다는 의혹도 자연스레 녹아내린다.

TV조선 '아내의 맛'
TV조선 '아내의 맛' ⓒTV조선

신스틸러는 단연 딸이다. 유나씨가 드럼을 치자 나경원이 탬버린 장단을 맞춘다. 딸이 성신여대 실용음악과 드럼 전공으로 입학하고 학점을 따는 데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은 발달장애인의 소박한 성취와 가족의 화목으로 프레임이 바뀐다. 딸이 취업을 위해 딴 자격증과 자립 의지를 다지는 말들은 그동안 나경원이 장애인 딸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준다.

아들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입대 사실이 계속 강조된다. 이는 병역 회피를 위해 원정 출산을 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는 장치다. 심지어 입대 날 나경원이 직접 가볼 수 없는 이유가 재판 출석 때문임이 강조된다. ‘빠루를 든 나경원’으로 깊이 각인된 국회선진화법 위반 사건이 마치 부당한 정치 탄압이거나 매정한 공권력 남용처럼 느껴진다. 딸이 “재판 때문에 못 가?” “재판부에 미뤄달라고 해봤어?”라고 재차 묻고 확인하는 장면까지, 완벽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경원 아버지도 등장한다. 사학 이사장으로 배임 의혹이 있는 나채성은 젊은 시절 공군 조종사였던 멋진 사나이이자 장애인 손녀를 무척 사랑하는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하필이면 세 사람이 한강에서 흑석동을 바라보며 앉아, 나경원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말한다. 자막으로 강조되는 ‘흑석동’은 나경원의 외가가 있었다는 곳으로, 나경원의 동작구 출마의 명분이 되었다.

모든 논란은 헛소문이었던 걸까. 이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복선을 깔아둔다. 나경원은 서두에 “초선 시절 편하게 남편 욕을 하다가 불화설에 휩싸였다”고 말한다. ‘부부 불화설’ 루머가 부풀려지는 과정을 예로 들어, 다른 논란들도 이처럼 와전되었으리라 암시를 던지는 것이다.

지난 연말 검찰은 나경원의 아들과 딸의 입시 비리와 성적 비리 의혹, 스페셜 올림픽과 관련된 고발 사건 등 13건과 아버지의 배임 혐의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과 언론에 의해 나경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씻고, 두 자녀를 잘 키운 ‘엄마’이자 남편에게 “누군 판사 안 해봤어?”라고 받아칠 수 있는 ‘잘나고 멋진 언니’로 탈바꿈한다.

TV조선 '아내의 맛'
TV조선 '아내의 맛' ⓒTV조선

뭐가 문제인가. 보궐선거 60일 이전이니 선거법 위반도 아니고, 박영선의 출연으로 진영 간 균형추도 얼추 맞추었고, 정치인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처음도 아니니, 아무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치의 예능화’가 가속된다는 점이다. ‘나는 꼼수다’ 이후 ‘정치의 예능화’는 대세가 되었다. 종편의 시사토크쇼는 물론이고,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 이재명, 고 박원순이 출연해 친근감을 높였다. 리얼리티 관찰 예능은 시사토크쇼보다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하나는 의제나 정책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오직 정치인 개인의 매력에 치중하게 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영상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편집된 화면을 ‘있는 그대로’인 양 믿어버리기 쉽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치 본래의 의미는 상실되고 이미지 조작에 훨씬 취약해진다. 즉, 정책과 가치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에 대한 호불호만 남아 팬클럽 정치가 되어버린다.

이미지 정치와 팬덤 정치의 폐해는 지금도 충분히 겪고 있지만 앞으로 더 심해질 우려가 크다. 예능프로그램 영역이 리얼리티 관찰 예능 위주로 바뀌면서, 정치인의 출연은 방송사 쪽에서 보면 특별한 노력 없이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시에 올릴 수 있으니 선호된다. 정치인 쪽에서도 이미지 쇄신을 꾀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니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확실한 제재가 없다면 이런 프로그램이 양산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둘째, 유나씨의 조명은 양가적이다. 발달장애 3급인 그가 가족의 사랑 속에서 뛰어난 언어구사력과 자립의 열망을 지닌 성인으로 자란 것은 놀라운 성취다. 그러나 유나씨에게 관심을 기울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이용하려는 나경원의 목적이 관철되는 셈이다.

또한 유나씨의 대학 교육은 예외와 특혜와 배려로 점철된 것이었다. 이는 장애인들도 차별받지 않고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라고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낸 ‘장애인 특별전형’ 제도의 의미를 훼손하고, 장애운동의 역사를 20년이나 후퇴시킨 것이다. 그에게 일어난 성취가 일반적인 장애인에게도 일어나길 바란다. 그러나 특별한 배려가 아닌 차별의 철폐를 통해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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