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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속 '뒤통수 때리기' 장면에 평론가들이 밝힌 생각

이 장면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 김태우
  • 입력 2018.04.21 14:23
  • 수정 2018.04.21 14:42
ⓒtvN

이지안(아이유 분) “내 뒤통수 한 대만 때려줄래요? 보고 싶고 애타고 그런 거, 뒤통수 한 대 맞으면 끝날 감정이라면서요. 끝내고 싶은데 한 대만 때려주죠. 거지 같아. 왜 내가 선물한 슬리퍼 안 신나 신경 쓰이는 것도 거지 같고, 이렇게 밤늦게 배회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다 거지 같아.”

박동훈(이선균 분) “집에 가. 왜 돌아다녀, 어?”

이지안 “그러니까 한 대만 때려달라고. 끝내게. 왜, 내가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좋아하나?”

박동훈 “너...넌...!”

이지안 “나 뭐?”

박동훈 “너 미친 년이야.”

이지안 “어, 맞어. 미친 거야. 그러니까 한 대만 갈겨달라고. 내 뒤통수. 정신 번쩍 나게. 어떻게 이딴 인간을 좋아했나 머리 박고 죽고 싶게! 때려, 끝내게. 안 때리면 나 좋아하는 거로 알 거야. 동네방네 소문낼 거야. 박동훈이 이지안 좋아한다고!!”

뒤통수를 내미는 이지안, 그 뒤통수를 때리는 박동훈. 이지안은 도로 위에 쓰러진다.

ⓒtvN

지난 19일 방송된 10화에서 이지안은 박동훈(이선균 분)에게 “뒤통수를 때려달라”고 요구한다. 박동훈은 그런 이지안을 바라보다 실제로 뒤통수를 때리고, 이지안은 도로 위에 쓰러진다.

이 장면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장면의 폭력성을 비판했다. “여자애가 울면서 때리란다고 진짜 바닥을 구를 정도로 패냐”, “때리지 않으면 의사 표현이 안 되는 거냐”, “가족 드라마, 치유 드라마라더니 왜 이렇게 폭력이 나오냐”는 지적이다.

반론도 있다. 극의 전개를 위해 불필요한 장치였다는 설명이다. 박동훈에게 미행하는 사람이 붙은 것을 보고, 더 곤란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지안이 일부러 상황을 유도했다는 것. “드라마 전체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극의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나의 아저씨‘는 앞서 1화에서도 사채업자인 이광일(장기용 분)이 이지안을 2분여 동안 사정없이 폭행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영돼 논란이 인 바 있다. 시청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논란이 번지자 제작진은 “긴 호흡으로 봐달라”며 “시청자 분들이 불편하게 느끼셨을 부분에 대해서 제작진이 귀담아 듣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나의 아저씨’, 기득권 아재들의 피해자 코스프레)

평론가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김선영 티브이(TV)평론가는 “1화의 폭력과는 다른 맥락이라고 해도 또 다시 약자에게 폭력을 행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 평론가는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도청이나 스토킹 등의 범죄 행위가 (이지안에게) 생존을 위한 선택인 것처럼, 이지안이 처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그려놓는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절박한 상황’이란 이유만으로 비윤리적인 장치가 사용되고,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반복되서 드러난다. 아무리 잘 만든 드라마라고 해도 윤리적인 가치와 교환할 순 없다”며 “제작진이 안이하다. 작가 역시 폭력에 둔감하고 무딘 거라고밖엔 생각이 안 든다”고 지적했다.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는 전작 ‘또! 오해영‘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맨손으로 차창에 주먹을 내리꽂는 장면, 여자 주인공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트리는 장면, 주인공의 격렬한 몸싸움과 ‘벽키스’를 하는 장면 등을 내보내 데이트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김 평론가는 이러한 비판이 표현의 자유를 축소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불편해하는 시청자들이 있는데 창작자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사용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시청자들의 지적을 바탕으로) 오히려 다른 긍정적인 방향으로 창작해 나갈 수도 있다”며 “티브이엔(tvN)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콘텐츠 화제성도 크고, 인지도와 파급력이 높은 채널인데 (다른 채널보다) 더욱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진미 문화평론가 역시 “(드라마가) 맞는 걸 너무 예사로 여긴다. 피해자가 입는 신체적·정신적 내상은 아무렇지 않게 소거되고, 여자 주인공이 스스로 ‘나는 씩씩하고 영악한 여성’이라고 정의하는 자의식만 남도록 묘사한다”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폭력이 (드라마에) 절대로 나와서 안 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폭력이 나온다면 여러 가지 치밀한 장치가 필요하다. 또 폭력을 직접 그대로 보여주느냐 또는 간접적으로 전달하느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런 고민이 사라져있다. 그저 여자 주인공이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연출 가능한 상황인 것처럼 다루는 건 문제”라며 “폭력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한지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론도 제기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불편하다는 반응이 왜 나오는지도 이해가 되지만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평론가는 “드라마가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 현실 문제를 그대로 드러낼 때가 있는데 폭력적인 부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실제로 현실은 더 더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을 드러내면서 향후에 (드라마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메시지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함께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tvN

논란이 계속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나의 아저씨‘를 실제로 규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방심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재 ‘나의 아저씨’는 사무처에서 확인을 하고 있는 단계”라며 “심의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하면 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한 뒤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방심위에선 보통 드라마 전체 내용을 보고 한 장면만 가지고는 판단하지 않는다”며 “(심의를 하면서) 시대적 감수성에 맞게 (기준을) 최근에 많이 강화하고 있지만, 심의는 최소한의 장치다. 단순히 (윤리적으로) ‘나쁜’ 방송을 잡아내는 게 아니라 법을 위반한 방송을 잡아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사실 지금 ‘나의 아저씨’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드라마 추세가 폭력적이다. 시청률 때문에 특히 극이 전개되는 초반부 1화부터 10화 사이에 폭력적인 장면이 몰려있다”며 “제작진이 폭력성이나 선정성을 극 전개를 위한 장치로 이용하면서 심의규정을 영리하게 피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결국 제작진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부분인데 영리함을 넘어 교활해지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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