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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펀홈'] 게이 아버지와 레즈비언 딸의 '가족 희비극'

뮤지컬 '펀홈'ㅣ애증관계인 가족은 서로 다른 삶을 선택했다.

  • 박수진
  • 입력 2020.08.12 19:04
  • 수정 2020.08.13 15:28

“아빠는 동성애자였고, 나도 동성애자였다. 아빠는 자살했다. 나는 레즈비언 만화가가 되었다.”

ⓒ페이스북/dalcompany2013

죽음만큼 그 자체로 비극이면서 남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처음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예고하고 시작하는 뮤지컬 ‘펀홈(Fun Home)’은 ‘오픈리 레즈비언’인 딸이 ‘클로짓 게이’였던 아빠와 과거의 자신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오픈리’는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굳이 성적 지향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성소수자, ‘클로짓’은 벽장 안에 숨듯 성적 지향을 감춘 채 살아가는 성소수자에게 붙는 설명이다.

‘렌트’, ‘킹키 부츠’, ‘제이미’ 등 성소수자나 그 정체성이 주제나 소재로 등장하는 뮤지컬 작품은 여러 편 있다. 이번이 한국 초연인 ‘펀홈’은 한 가족 안의 두 성소수자가 주인공이다. 각각 다른 시대에 태어나 다른 삶을 선택한 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갈등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도 갈등한다.

ⓒ페이스북/dalcompany2013

아버지는 독선적인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의 몸에 상처 하나 보이지 않게 염을 하듯, 완벽한 인테리어와 교양 있는 모습에 집착했다. 남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강박적으로 다듬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에는 멍청한 사람들이 많으니 신경쓰지 말고 네 자신이 돼라’고 격려를 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몇 번의 좋은 기억은 자식에게 강렬하게 남았고, 그것 때문에 자식은 훗날 자신의 고백에 마뜩잖은 반응을 보이는 아버지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죽음을 빼고도 극적인 줄거리에 복잡한 감정이 끼어들어오는 이유는 이것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이기 때문이다. 종이 위 사각 프레임에 직접 펜으로 아버지를 회고하는 40대 만화가 딸은 실존 인물인 앨리슨 벡델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쓴 ‘펀홈’ 외에도 벡델은 영화계 성 차별 문화를 지적하는 ‘벡델 테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 미국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그의 성장담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가는 레즈비언 아닌 사람들의 마음도 건드릴 만하다. 중요한 날이면 여자아이들이 모두 핑크색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마을에서 자란 ‘부치’ 레즈비언이,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옷차림을 한, 새로운 세상에서 온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의 희열이 그렇다. 온 세상이 내가 원하는 것을 부정하고 의심하는데,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 같은 것 말이다.

책 '펀 홈'
책 '펀 홈' ⓒ출판사 움직씨

원작은 ‘나쁜 사람’이었던 아버지와의 기억과 주인공의 노력이 더 자세하게 담긴 그래픽 노블이다. 부제는 ‘가족희비극’이다. 주인공 앨리슨 역을 맡은 배우 방진의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의미가 있는 작품”, ”우리 뮤지컬계 다양성에도 보탬이 되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서두르시길. ‘펀홈’은 8월 30일까지만 공연한다. 장소는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이다. 티켓 가격은 3만원~7만5천원이며, 인터파크예스24에서 예매할 수 있다. 

 *벡델 테스트: 벡델과 그의 친구 월리스는 영화 속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보조적인 역할로만 등장하는 풍토를 비판하기 위해 영화의 성 평등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고안했다. ‘여자가 두 명 이상 등장하는가?’,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가?’ ‘남자가 아닌 다른 주제에 관해 서로 대화하는가?’다.

박수진 에디터: sujean.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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