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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의사] 멀티 커리어리즘 대신 '겸업 현상'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8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겠다’라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생 글 쓰면서 사는 게 소원‘인 한글 의사는 얼마 전 타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100세 시대, 인생 2막이란 말을 하지 않더라도 30대를 훌쩍 넘긴 시점부터는 대화의 소재가 ‘앞으로의 먹고 살 일‘이 되고 말았다. 그 외에 ‘결혼‘, ‘아이’라는 소재도 끼어들었지만,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일‘과 ‘돈’이 가장 컸다. 다만 한글 의사는 이 모든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Business people having meeting in office
Business people having meeting in office ⓒRUNSTUDIO via Getty Images

고마운 제비들 같으니라고, 다행히도 친구들은 어디서 그렇게 박씨를 물어오는지 꼭 읽어봐야 할 책과 강연, 클래스들을 알려주면서 우리 세대는 이제 하나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직업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날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추천하는 팀장의 조언을 듣고 친구에게 물으니, 진지하게 ‘그거참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격증이라곤 오래전 유효 기간이 만료된 일본어 능력 시험 자격증 2장뿐이고, 그 흔한 운전면허증도 없다고 하면 ’면허증이 없어요?”라고 놀라 되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세상엔 손만 흔들면서는 자가용이 서울에만 수만 대 있으니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공인중개사 자격증 검색해봐도 십 수개의 학원 홈페이지가 뜬다. 최근에는 시험이 어려워져서 한 번에 따기가 어렵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검색해봐도 십 수개의 학원 홈페이지가 뜬다. 최근에는 시험이 어려워져서 한 번에 따기가 어렵다. ⓒ에듀윌(위), ebs(아래) 홈페이지 캡처

그나마 잘하고 좋아하는 게 글 쓰는 일이라 지금까지는 여차저차 살아왔지만, 남을 가르치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으니 기술을 응용해 논술 선생님이 된다든가 하는 엄청난 일은 할 수가 없다. 글만 쓰면서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큰 충격도 아니다.

글 쓰는 일이 좋다고 하니,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산뜻한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글 쓰는 일이 좋다고 하니,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산뜻한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RUNSTUDIO via Getty Images
언제나 이 모양.
언제나 이 모양. ⓒRichVintage via Getty Images

게다가 나이 50세가 넘어 글로 먹고사는 여성은 정말 드물다. 불혹에 작가의 길에 들어선 박완서 선생님 이후로는 쉰이 넘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작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물론,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더욱 부단히 쓰고, 또 많이 읽고, 공부하는 일이 취미이자 책무였다.

하나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자아실현을 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있어 이 일을 그만둔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고, 직업에 얽매인 적도 없다. 아니 오히려 얽매인 자신을 좋아했다. 이런 생각을 업계 종사자에게 말했더니 그는 ‘원하면 무엇이든 어디서든 쓸 수 있는 세상’이라며 ‘그래서 넌 뭘 쓰는데?’하고 덧붙였다.

사실 돈 안 줄 때 자발적으로 쓰는 건 일기밖에 없다.
사실 돈 안 줄 때 자발적으로 쓰는 건 일기밖에 없다. ⓒRUNSTUDIO via Getty Images

″‘아!’, 이 소리는 직구를 세게 맞은 소리입니다.” 사실 돈을 받지 않는 글이라곤 일기밖에 없었다. 최근 다양한 직업을 추구하는 것을 멀티 커리어리즘(multi-careerism)이라 부른다고 한다. 쉬운 우리말로 ‘겸업 현상’이다.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자아를 실현하면서 여러 개의 직업을 갖게 되는 사회상을 뜻하는 말이다. 앞으로 세상은 겸업이 가능해지면서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개의 직업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작가, 방송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상담가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저 직업적으로 글을 많이 쓸 뿐이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글을 쓴 적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달리 보면 다르게 보인다고, ‘부동산‘은 참으로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특히나 이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자산임에도 그 어떤 곳보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니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중개업‘을 잘할 수 있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저 ‘부동산’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고 찾다가 보니, ‘오늘의 운세 마니아’는 타로를 발견하게 됐다. 아까운 돈, 남한테 쓰느니 자급자족하자는 마음으로다가.

Tarot cards, fortune cookies, palmistry, and crystal ball
Tarot cards, fortune cookies, palmistry, and crystal ball ⓒLast Resort via Getty Images

그렇게 해서 타로를 배우기 시작한 지 4개월째다. 그리고 확실히, 2020년 ‘겸업 현상’의 특징을 알게 됐다. 부동산이 제2의 직업을 설계하는 거라면, 타로를 배우는 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면서 직업을 탐구해가는 과정과 같다. 마치 100문 100답 취미란에 ‘독서‘와 ‘영화감상’ 그리고, ‘타로‘를 쓰는 기분이랄까. 최근의 ‘겸업 현상’이 말하는 것은 직업이 꼭 하나일 필요도 거창할 것도 없이 그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수식어 중 하나로 기능한다는 점이었다.

타로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직업적으로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해나갈지는 앞으로 차차 생각해볼 문제로 두고 취미로 가볍게 생각하니 배우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 혹시, 뭐 해 먹고 살지 고민하는 20·30세대라면 미래의 전망만 생각지 말고 마음을 따르는 무언가를 하나 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우리를 충만하게 만들어줄 또 다른 명함이 될지, 그토록 원하던 재운을 가져다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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