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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8일 17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0월 16일 10시 31분 KST

[공덕동 휘발유] 논란의 '뮬란', 기획부터 개봉까지 5년 동안의 불명예스러운 행보

중국 자본과 시장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예술을 망치는지 보여준 사례다.

월트디즈니코리아
영화 '뮬란'

“What a shame for Hong Kong(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 

지난해 배우 유역비가 웨이보에 올린 이 문장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홍콩 정부가 현지 범죄 용의자의 중국 인도를 가능케 하는 이른바 ‘송환법’ 제정을 시도하며 촉발된 반중(反中) 시위 때 올린 글이다. 그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면서 ”나를 비난해도 좋다(원문 : 나를 때려도 좋다)”는 취지의 발언도 덧붙였다.

중국 연예인들이 SNS에 ‘하나의 중국’을 운운하며 공공연히 자치구 탄압을 찬성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유역비의 언급은 파장이 달랐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뮬란’을 두고 전 세계적 불매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디즈니가 2015년 실사화를 선언한 영화 ‘뮬란’은 중국의 목란(木蘭, 뮬란)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설화는 오랑캐의 침입으로 전시 체제에 돌입한 국가가 가구 당 장정 한 명씩을 징집하는 상황에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입영해 전쟁 영웅이 되는 소녀 뮬란을 그린다.

단순한 구국설화인 뮬란 이야기가 극단적 민족주의라는 외피를 덧입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자치구 탄압에 영유권 분쟁 등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는 중국의 행패가 격화하던 상황에 유역비의 발언이 가세한 탓이었다. 특히 중국 출신이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유역비가 홍콩 경찰의 시위대 과잉 진압을 옹호하는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국은 홍콩 ‘송환법’ 및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중국에 실체적 보복 조치를 하며 ‘세계의 자유 수호자’를 자처한 나라가 아니던가.

 

‘유역비 논란’에 코로나19라는 치명적 악재까지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닥쳤다. ‘뮬란‘은 올 3월 북미 시사 후 평단의 호평을 얻었지만 팬데믹 여파로 무기한 개봉 연기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뮬란’에 나온 배우 견자단이 7월 페이스북에 홍콩 반환 23주년 기념 게시물을 올리며 영화 불매 운동 참가자들의 반감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뮬란‘은 4일(이하 현지시각) 디즈니 OTT 서비스인 ‘디즈니+‘에서 처음 공개됐다. 홍콩 민주주의 활동가 조슈아 웡은 이날 트위터에 “디즈니가 베이징에 굽신거리고, 유역비가 자랑스럽게 홍콩 경찰의 만행을 지지했기에 나는 인권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뮬란’의 보이콧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유역비는 지정학적 십자포화에 휘말린 피해자가 아니다. 여성 시위자들의 고통을 무시한다면 그는 페미니즘의 아이콘도 아니다”라며 ”그는 할리우드가 승리자에게 바치는 가치를 의도적으로 배반하는 권위주의의 아이콘이다”라고도 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중국 영토에 속하지만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해온 홍콩과 대만의 민주주의 활동가들은 웡의 발언을 필두로 ‘밀크티 동맹‘(#MilkTeaAlliance)’을 결성했다. ‘뮬란’ 불매에 힘을 싣는 행보였다. 군주제 개혁 시위가 한창인 태국도 이 동맹에 참가했다.

일각에서는 웡과 함께 홍콩 시위를 주도하는 활동가 아그네스 차우가 목란 설화의 가르침인 충성, 용기, 진실을 실천하는 ‘진짜 뮬란’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차이나 머니’에 눈이 멀어 인권 탄압 묵인했다는 비판

 

그렇게 다시 불타오른 ‘뮬란’ 보이콧 운동에 기름을 끼얹은 사건이 발생했다. 영화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촬영됐으며, 엔딩 크레딧에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중국 공산당 기관과 공안국 등에 대한 감사 표시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CNBC 등의 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신장은 중국 중앙 정부가 위구르족 이슬람교도를 대상으로 강제 노동과 산아 제한 등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역이다.

또 ‘뮬란’ 제작진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위원회 홍보부에도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유와 희망이란 가치를 팔아 온 디즈니가 ‘차이나 머니’에 눈이 멀어 인권 침해를 묵인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어 중국 당국이 신장 지역 논란을 의식해 주요 언론사에 ‘뮬란’ 개봉 관련 보도 금지를 지시했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나왔다. 북미에서는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중국에서는 영화를 홍보하지 못하게 되며 ‘뮬란’은 처량한 신세가 됐다.

다만 논란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 리지안은 ”영화 제작에 도움을 준 지방 정부 기관을 신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에 불과하다”면서 이를 ‘반중 세력의 악의적 움직임’으로 치부하고 유역비를 ‘진짜 뮬란’이라 칭송했다.

12일 미국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는 밥 샤펙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에게 ”‘뮬란’이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 의혹을 정당화했다는 논란을 해명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뮬란’ 제작과정에 신장 지역의 안보 및 선전 당국이 개입했는지를 설명하라며 ”잔학행위를 저지르거나 그 범죄를 은폐한 책임이 있는 중국인민공화국(PRC) 관리들과 디즈니가 명백한 협력관계가 있다는 점은 매우 충격적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을 위한 이야기’, 중국에서 비판받다

 

재밌는 것은 중국인들의 보편적 지지를 받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데다 현대에 와서 ‘하나의 중국‘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돼 버린 ‘뮬란’이 중국 내부에서도 비판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는 ‘뮬란’이 중국에서 개봉하고도 흥행이 저조한 이유를 ”중국 이야기를 정확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뮬란‘을 비판하는 현지 여론은 역사왜곡과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한다. 중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동양적 요소와 상징을 혼합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뮬란’의 배경은 북위 시대(386~534)인데, 이보다 약 500년 후의 송나라 건물이 등장하고 1200년대 원 왕조에서 만들어진 태극권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 네티즌들도 영화 속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고, 애국적 주제가 담긴 중국 전통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왕을 지키는 군인 이야기로 바꿨다”고 선을 그으며 ”‘뮬란’의 흥행 저조는 중국 문화에 대한 오해와 조악한 예술 수준 때문”이라고 했다.

ASSOCIATED PRESS
한국의 홍콩 시위 지지자들이 영화 '뮬란' 보이콧 운동을 하고 있다.

(이어지는 내용에는 17일 개봉한 ‘뮬란’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견된 ‘뮬란’의 월드 와이드 흥행 실패에는 과연 작품 외부의 논란만이 영향을 미칠까?

‘뮬란’의 영화적 완성도는 3월 북미 시사 당시 나온 ”디즈니의 실사 리부트 작품 중 최고”라는 평가의 저의를 의심케 만든 수준이었다. 리 샹과 무슈를 비롯한 원작 애니메이션의 핵심 캐릭터들을 전부 없앤 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캐릭터를 지우고 새로 그린 캐릭터들에서 드러나는 디즈니의 주제 의식과 그 얕음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작진이 직접 밝힌 리 샹 캐릭터 삭제 이유다. 리 샹은 원작에서 뮬란의 상관으로 등장하며, 당시 디즈니는 두 사람이 연애 감정을 나눈다는 뉘앙스로 애니메이션을 끝맺었다. 그러나 현재의 디즈니는 ”미투 운동의 시기에 (뮬란의) 직속 상관이 성적인 연인 관계로 그려지는 것이 매우 불편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며 리 샹을 ‘뮬란‘에서 지워버렸다. 이를 ‘역펜스룰’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부르겠는가.

월트디즈니코리아
애니메이션 '뮬란'의 리 샹

리 샹이 없다고 뮬란의 연애 상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디즈니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에서 리 샹의 역할이 뮬란의 대리부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텅 장군(견자단)과 동료 부대원 홍휘(요손 안)로 나뉘었는데, 극 중에는 뮬란이 밑도끝도 없이 홍휘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묘사가 나온다. 결국 이는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속 리 샹과 뮬란의 관계에서 위력에 의한 성추행 가능성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는 방증이며, 곧 죽어도 뮬란에게 ‘연애는 시켜야겠다’는 낡은 고집을 전시한 것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의 연대’라는 원작 가치를 훼손한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뮬란의 가장 큰 조력자이던 무슈와 크리켓을 없애고 불사조와 마녀(공리)를 욱여 넣은 것도 문제다. 원작의 무슈는 뮬란 가문의 십이지 수호신이었지만 실수로 자손 중 한 명을 참수당하게 만들며 종지기로 전락한 작은 용이다. 크리켓은 뮬란 할머니가 ‘행운의 상징‘이라며 애지중지하는 사실은 그저 평범한 귀뚜라미다. 무성(無性)의 존재인 이들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뮬란과 힘을 합쳐 중국을 구했다.

목란 설화가 여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다룬 동화들과 달리 다분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보편적 가치를 획득한 건 이 세 캐릭터의 연대에 있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약자인 이들의 승리는 의미 있는 성취다. 특히 뮬란이 성별을 들키고 군대에서 쫓겨났을 때 무슈는 자신이 수호신이 아님을, 크리켓은 보통 귀뚜라미임을 고백한다. 약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낸 순간 연대는 더 단단해졌고, 이는 공고했던 편견을 깨고 기성사회를 능가하는 힘을 발휘한다.

제작진은 실사판 ‘뮬란‘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무슈와 크리켓을 없앴다고 해명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영화 ‘뮬란’에 등장하는 불사조와 마녀가 애니메이션의 용과 귀뚜라미보다 덜 환상적인가?

심지어 마녀는 특별한 기(氣)로부터 오는 마법을 쓰며 실사판 악당인 보리 칸을 돕는다. 여기서 원작의 ‘기’ 설정이 심각하게 오용된다. 중국 문화에서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을 의미했던 ‘기’가 영화에서는 마녀와 뮬란의 전유물로 바뀌며, 군대에서 보여준 뮬란의 급성장이 타고난 ‘기’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애니메이션의 뮬란은 남자 부대원들이 아무도 하지 못한 과제를 밤을 새워가며 달성해 모두의 인정을 받는데, 영화의 뮬란은 신묘한 ‘기’를 쓰는 신적 존재로 맘만 먹으면 세계도 제패할 수준이다. 목란 설화의 주제의식과 영화는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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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뮬란'의 뮬란, 무슈, 크리켓

영화의 주인공 뮬란과 악당 마녀는 적이었지만, ‘기가 강한’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끝내 연대한다. 이 대목에서 중국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국의 숱한 무협 영화에 등장한 ‘기 센 여자’는 마녀였는가, 소드 마스터였는가?

 

뮬란이 최종적으로 얻은 게 ‘효(孝)’라고?

 

PC(정치적 올바름)함은 강박적이어야 하지만, 기계적이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는 최근 많은 문화콘텐츠들이 놓치는 점이기도 하다. 영화 ‘뮬란‘은 ‘기’ 설정의 서툰 조작과 여성 캐릭터의 기계적 투입을 통해 주인공의 성취를 여성의 것이 아닌 초월적 힘이 작용한 결과로 둔갑시켰다. 게다가 국가에 충성한 뮬란은 최고의 영예를 얻고, 그렇지 않은 마녀는 죽여버리며 여성의 잠재력을 통제한 정권에 복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2020년에 흘려보낸다.

‘뮬란‘에서 새롭게 등장한 불사조는 뮬란 가문의 수호신으로, 뜬금없이 ‘효(孝)‘를 등에 업고 뮬란을 따라다니며 그를 돕는다. 여성을 부정한 가족을 떠나 끝내 여성으로서 완성된 뮬란이 획득한 가치는 이 ‘효’였다. 심지어 영화는 ‘효’를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풀이했다. 굳이 서양에 없는 개념을 가져다가 엉망진창 해석을 하면서까지 뮬란에게 입혀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뮬란’이 제작 단계부터 개봉까지 외부적 논란으로 얼룩졌다 해서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영화가 갖는 가치는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중국의 풍경과 무협 액션 정도다. 2억 달러 짜리 ‘아이 캔디(시각적 이미지에 천착해 주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함)‘에 그친 ‘뮬란‘은 중국의 막대한 자본과 거대한 영화 시장을 향한 두려움이 어떻게 대중 예술을 망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듯하다.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서사’라는 홍보 문구를 더 이상 믿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비극적 결과물로도 남을 것 같다.

 

라효진 에디터 hyojin.ra@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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