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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13일 14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13일 14시 52분 KST

숙소로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 엔진의 굉음이 들리다

[소설 '리셋' 챕터⑬]

huffpost

조광희 작가의 미발표 신작장편 ‘리셋’은 새로운 감각의 스릴러 소설로, 현직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전임 시장이 연루된 비리를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는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음모에 휘말리면서 21세기 한국사회의 다양한 민낯과 부패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매주 월, 수, 금에 업데이트된다.

13

 

헌법재판소 근처 한정식집에 도착한 동호가 예약된 룸으로 들어갔을 때, 연 박사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의 식당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인데 시장 때문에 특별히 열었는지도 몰랐다. 동호는 연 박사와 나란히 앉아 시장을 기다렸다. 고 시장은 약속 시간인 저녁 일곱 시에 정확히 맞춰 룸으로 들어왔다. 등산을 다녀온 옷차림이었다. 동호와 악수를 한 후에 종업원을 부른 시장은 직접 나타난 주인에게 일요일이니만큼 평소보다 음식을 간소하게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동호는 연 박사가 고 시장에게 그동안 진행된 상황을 얼마나 전달했을지 궁금했다. 시장은 잠깐 시계를 본 후 말을 꺼냈다.

“제가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안 되겠지요? 제가 연 박사에게서 전해들은 것은 부학개발과 미래화랑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 화랑에 근무하던 편 전무의 딸이 뭔가 알고 있으리라는 것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느 기자가 부학개발과 민 의원의 관계를 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떠한 확증도 못 찾은 거죠?”

“현재로서는 그 딸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과 예사 사이가 아니니, 분명히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며칠 전 뉴욕에서 회장과 만났습니다.”

“편 전무의 딸 말이오? 그건 어떻게 아셨죠?”

“뉴욕으로 출국하는 것을 파악한 후에 그곳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뒤를 쫓았습니다.”

“무슨 일로 만났을까요?”

“지금 주위에서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상의하는 거겠죠. 시에서 조사하고 있고 기자가 쫓고 있는데다 전무는 시체로 발견됐고요.”

이때 연 박사가 헛기침을 했다. 동호는 편 전무 사망에 관한 자세한 경과는 말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시장이 말을 덧붙였다.

“기자가 좀 신경이 쓰이네요. 지난번 기사도 좀 불편했고요. 다행히 공보팀에서 관리해서 다른 매체의 후속 기사는 없었지만. 게다가 저희 당의 경쟁자들이 냉소적인 반응을보인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연 박사가 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민 의원이 이 사건으로 낙마하고 시장님이 부상할까봐 견제하는 겁니다. 스스로 길을 열기보다는 ‘정세가 어디로 흘러가느냐’에만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이라서요.”

동호는 다시 한 번 궁금해졌다.‘ 이 전직 대학 총장은 왜 나에게 이 일을 맡겼을까? 대통령이 되기 위한 몇 개의 플랜 중 하나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비리의 척결일까?’ 솔직히 더 이상 상황을 담백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뛰어난 정치철학자 출신의 청렴한 시장도 이제는 이 세계의 어두운 심연을 헤아리는 것이 몸에 배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종업원이 잡채와 LA갈비, 그리고 도라지무침을 가져다 놓는 동안 대화가 잠시 끊겼다. 시장이 소매를 매만졌다.

“사실 갑자기 보자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제 점심에 민 시장이 전화를 했더군요. 참, 지금은 시장이 아니라 의원이지요. 회의 중이라 한 번 안 받았더니 바로 메시지가 오더군요. 전화를 할까 말까 하다가 연 박사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통화를 피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셔서 통화를 했습니다. 녹음까지 하라고 하셨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서……. 전화를 받자마자 엄청나게 화를 내더군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를 했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면서 한바탕 쏟아붓더라고요. 오해 말라고 했더니 또 금방 웃고. 저는 참 그분 성격이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튼 마지막에 전화 끊으면서 ‘계속 쓸데없는 조사를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선의의 경쟁을 하자’, ‘그 당의 사람들을 믿느냐’, ‘차라리 자기와 손을 잡자’ 등등 별소리를 다 하더군요.”

연 박사가 냉담하게 웃었다.

“뭐가 있는 게 맞네요. 그렇게까지 횡설수설할 사람은 아닌데, 초초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뚜렷하게 확인한 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장이 반문을 하고는 젓가락으로 당면 가락을 들어 입에 넣었다.

“어쨌든 상황이 이러니 좀 더 조심스럽게, 하지만 치밀하게 움직여달라는 당부를 드리려고 식사 자리를 청했습니다.”

동호는 이 조사가 왜 필요한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려다가 참았다. 그러고는 짤막하게 말했다.

“잘 이해했습니다.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더 주의 깊게, 그리고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 시장은 동호의 앞 접시에 LA갈비를 얹어 주었다.

milicad via Getty Images

기사가 “어느 길로 갈까요?” 하고 물으며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가 인사동 사거리를 지나칠 때 외국인 둘이 택시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택시는 현판에 어둠이 드리워진 조계사를 거쳐 시내를 관통했다. 동호는 택시 기사가 틀어놓은 1990년대 가요들이 싫지 않았다. 택시가 장충체육관을 지나칠 때 동호는 창문을 내렸다.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가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주말 저녁에 기분을 내고 있었다. 가는 방향이 같은지 오토바이 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엔진 소리가 주말 도심에서 트럼펫 소리처럼 경쾌하게 퍼져나갔다. 깜빡 잠들었던 동호는 “다 왔습니다”라는 기사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태그하고 내렸다. 레지던스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서서 몇 발짝 내딛는 순간, 갑자기 오토바이 엔진이 굉음을 토해냈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려는 순간, 동호는 스쳐 지나가던 오토바이 운전자의 발길질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왼쪽 등에서 심한 통증을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일어나려 했으나 숨이 막혀 비틀거렸다. 오토바이에서 재빠르게 내린 사내가 동호의 배를 걷어찼다. 동호는 골목길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댄 채 호흡을 제대로 하려고 애썼다. 오른편으로 가로등에 비친 사내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내와 눈이 마주치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웅크린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발길질이 두려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고 싶으면 그만 까불고 미국으로 꺼져. 제 앞가림도 못 하는 놈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사내의 발길질이 한 번 더 옆구리로 날아왔다. 동호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사내의 실루엣이 눈으로 들어왔다. 무척 작은 키였다.

동호는 오 분쯤 누워 있었다. 방법용 CCTV가 있었다면 경찰이라도 왔을 테지만, 무슨 일인가 싶어 비틀거리며 다가온 취객이 전부였다. 그에게서 풍기는 막걸리 냄새에 구토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났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레지던스에 들어서는 동호를 보자 직원이 놀라서 달려왔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동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병원에 같이 가자는 직원에게 혹시 필요하면 전화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동호는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웠다. 누운 채로 바지와 웃옷을 벗고 침대 밑으로 집어 던졌다. 밖으로는 언제나처럼 남산타워가 보였다. 충격 때문인지 타워의 불빛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불빛은 푸른색에서 몽환적인 보라색으로 변했다. 무거운 잠에 빠져들었다.

 

동호는 산꼭대기에서 산 아래쪽을 향하여 달렸다. 20미터쯤 달리자 뒤쪽에 펼쳐져 있던 패러글라이더의 날개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날개가 팽팽해지면서 발이 지상에서 떨어졌다.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비행했다. 동호의 패러글라이더는 아주 부드럽게 골짜기를 지나쳐 산을 넘었다. 산 너머에는 웅장한 대리석 건물들이 즐비했고 그중 가장 화려한 건물 앞에 착륙했다. 패러글라이더를 버리고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간 동호는 건물 안 커다란 기둥을 손으로 만지며 살펴보았다. 대리석 기둥에는 화려한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동호는 문득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는 대리석 기둥의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이 아름다운 무늬를 깨어나서도 기억할 수 있을까? 이토록 정교한 무늬를 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그 무늬가 들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동호는 건물 안 어느 방에 이르러 그 방문을 열었다. 방 안쪽에는 소파가 있었다. 소파에 앉은 동호는 갑자기 자기 옆에 누가 앉아 있음을 알아챘다. 어느 여인이었다. 동호는 그 여인에게 입을 맞추었다. 계속 입을 맞추다가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동호는 그 여인의 옷을 벗기고 한 몸으로 뒤엉켰다. 극한의 흥분이 차올랐다. 이 달콤한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아래에서 번져가는 몽정의 기운 사이에서 방황했다. 동호는 흥분이 넘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계속 황홀감을 맛보았다. 어느 순간 동호는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손으로 여인의 턱과 뺨을 잡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그저 추상적으로 아름다울 뿐이어서 구체적인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선우의 얼굴을 기대하며, 아까 아라베스크 무늬를 공들여 확인한 것처럼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편윤미였다.

동호는 뜻밖의 얼굴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발길질을 당한 옆구리가 아까보다 더 아파왔다. 그는 깨어나지 말고 그 꿈을 더 즐기고 싶었으나 다시 잠으로 돌아가기에는 통증이 너무 심했다. 창밖으로 남산타워의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동호는 메뉴판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고른 후 주문했다. 서연은 물을 마시며 물었다.

“안색이 안 좋아. 괜찮아?”

“몸살 기운이 좀 있어서. 괜찮아질 거야.”

동호는 빵을 올리브유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한국에 온 일은 잘되고 있는 거야?”

“아니, 헤매고 있어.”

“언제 돌아가? 온 지 한 달쯤 됐지?”

“아직 안 정했어. 곧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야 할 텐데, 일이 언제쯤 마무리될지 아직도 모르겠네.”

종업원이 국물이 있는 빼쉐 파스타를 가져왔다. 서연은 면을 돌돌 말아 자기 접시로 덜었다. 동호는 먼저 조개와 홍합 껍데기를 모두 발라내고는 포크를 잠시 내려놓고 서연을 쳐다보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자각몽을 꾸었어.”

“어떤 꿈?”

“말하기는 좀 그렇고.”

“또 날아다니는 꿈을 꾸셨나? 아직도 애들처럼 그런 꿈을 꾸는 거야? 아님, 야한 꿈을 꾸었구나. 결혼을 안 하고 있으니 그 나이에 그런 꿈이나 꾸지.”

동호는 할 말을 잃고 웃었다.

“딴 이야기나 하자.”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고 꿈 이야기 상담 같은 거 하지 마. 그런 사람들 한 달에 열 명쯤 만나. 아주 지겨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가 왜 그런 꿈을 꾸는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알지.”

동호는 동생의 그런 단호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하고 연락해봤어?”

“오빠, 미국으로 돌아갈 때 스위스에 들르래. 맛있는 음식 만들어준다고. 엄마가 아니라 니콜로가 해준다고. 요리를 그렇게 잘한대. 참, 엄마는 요즘 책 쓴다던데.”

“무슨 책?”

“에스페란토 책이래. 문법책은 아니고.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는 책이라고. 물론 한국어로. 지난겨울에 한국에 오셨을 때 출판사랑 계약도 한 모양이던데.”

“그런 책은 천 부나 팔리려나?”

“난 오십 부라고 생각해.”

서연은 그사이 종업원이 가져온 고르곤졸라 피자를 잘라 입에 넣었다. 동호는 그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나, 서연을 위해 주문했다. 남매는 한 시간 동안 언제나처럼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양한 주제, 고리타분하지 않은 소재, 사려 깊으나 지루하지 않은 대화법은 어머니가 남매에게 물려준 자산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의견이 다를 때가 없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남매는 오빠 또는 여동생이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자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는지 성실히 탐구했다. 자기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 알리지 못해 안달하고, 자기 생각에 부합하는 증거만 애지중지하는 세태를 두 사람은 슬퍼했다. 미워하기보다는 슬퍼했다. 남매는 그러한 세태를 따르는 것이 개인에게 현실적인 이익을 주기 때문에 흐름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강하게 주장하고 논란을 불사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혐오했으나, 그것에 편승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미워하는 것은 경계했다.

동호는 내색은 안 했으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서연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처럼 좋은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적당한 리듬감에 귀를 맡기다 보면 기분이 자연스럽게 좋아지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