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와 취향 사이 : 좋은 것 먹고 경험할 때마다 생각나는 엄마, 큰맘 먹고 모신 여행에서 내가 깨달은 것

‘여행 그런 거 질색’이라는 엄마의 말이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었다.
‘여행 그런 거 질색’이라는 엄마의 말이 과거에는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같은 유라고 생각했었다. 돈이 아까워 여행을 안 가는 것이고, 제대로 좋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몰라서 거부하는 거라고.
‘여행 그런 거 질색’이라는 엄마의 말이 과거에는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같은 유라고 생각했었다. 돈이 아까워 여행을 안 가는 것이고, 제대로 좋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몰라서 거부하는 거라고.

어버이날이 코앞이라 그런지 모든 홈쇼핑 채널에서는 부모님 선물용으로 좋은 상품을 팔고 있다. ㄱ사에서는 이동식 마사지 매트를, ㄴ사에서는 안마의자를, ㄷ사에서는 보석 세트를, ㄹ사에서는 흙침대를 팔고 있다. 호스트들의 멘트를 들으면, 저걸 지금 당장 사지 않는 건 천하의 불효다.

다른 부모님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좋은 곳에 데려가도, 뭘 사줘도 도무지 좋아하질 않는다. 그게 모두 자기 짐이고 부담이라고 여긴다. 망고가 맛있어 보여서 엄마에게 택배를 보내면 화부터 낸다. “쓸데없이 뭐 하러 보냈냐. 이런 데 돈 쓰지 말고 제발 돈이나 모아라.” 아니, ‘그까이 거’ 망고 한 상자 얼마나 한다고. 물론, 거기에는 제대로 밥벌이를 못하고 있는 내 죄가 크다. 부담 없이 선물을 받아도 될 만큼 내 벌이가 괜찮았다면 엄마도 망고 몇개 보냈다고 화를 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에 보증금이 오르면 2년마다 쫓기듯 이사를 다니는 비혼 딸내미의 통장 사정이 엄마에겐 빤히 보인다. 결혼도 아직 안 했는데 집도 없으면서 비싼 망고를 사는 건 엄마 생각에 과소비다. “맛있으니까 보냈다고? 맛은 어떻게 아냐. 너 평소에 이런 거 사 먹냐. 그러니까 돈을 못 모으지. 니가 망고 사 먹을 처지냐.” 아니, 이렇게 힘들게 돈 버는데, 제가 망고 하나 맘대로 못 사 먹습니까.

철이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모와 함께 살던 좁은 세계를 벗어나 혼자 삶을 꾸려나가면서 내 선택으로 ‘좋은 걸’ 먹거나 경험하면 “엄마에게도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방 소도시에서 평생 살아온 엄마가 가보지 않은 곳, 나는 그곳에 살며 엄마보다 넓은 세상을 걷는 사람이니까. 엄마는 서울에서 살아본 적도, 호텔에 가본 적도 없다. 밤늦게 차를 타고 한강 야경을 보거나 특정 시기에만 열리는 전시회와 공연들을 경험한 적도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지거나 새로이 탄생한 새 시대의 문화들, 먼 나라의 압도적인 풍경과 21세기의 대도시를 엄마는 체험한 적이 없다. 따로 살면서 나 혼자 좋은 걸 먹고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왠지 죄책감이 들면서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특별히 효녀인 건 아니고, 아마 여느 자식들 다 비슷할 것이다. 친구들 역시 여행 가서 좋은 것을 보면 “다음에 엄마랑 와야지”라고 말한다.

우리 엄마가… 민폐 여행객이라니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은 이제 엄마와 여행을 가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망고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여행도 ‘극혐’한다. ‘여행 그런 거 질색’이라는 엄마의 말이 과거에는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같은 유라고 생각했었다. 돈이 아까워 여행을 안 가는 것이고, 제대로 좋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몰라서 거부하는 거라고.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좋은 경험이 축적되어야 자신의 호오를 알게 된다. 우리 엄마는 육십 평생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몇년 전 계모임에서 중국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방송국이 인증하는 초특급 호화유람선 여행이라고 광고하던 그 패키지상품은 알고 보니 거의 사기에 가까웠다. 비행기로 2시간 반이면 가는 중국 칭다오를 배를 타고 반나절 동안 가고, 중국에서도 대절 버스에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평소 멀미가 심해 국내 여행도 거의 안 하는 엄마에게는 여행이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서커스 구경을 간다고 버스만 8시간을 탔는데, 도착해보니 서커스단이 폐업해 갔던 길 그대로 먼지만 뒤집어쓰고 돌아왔다고 한다. 느끼한 중국 음식은 엄마 입에 도저히 먹을 것이 못 되었고, 뱃멀미에 차멀미까지 겹쳐져 삼중고를 겪은 3박5일 일정에 무려 몇십만원을 냈으니 이게 사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엄마 말에 의하면 초호화 유람선이라던 배는 너무 좁고 불편해 피난살이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고 한다.(이 모든 내용은 제가 직접 보고 겪은 게 아니라 어머니의 증언에 따른 것임을 밝혀둡니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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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모님들이 등산복을 갖춰 입고 국내외를 여행하며 낯선 것을 선뜻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이 들수록 익숙한 틀 안에서 사는 것이 편한데 낯섦과 불편함을 자청하고 그곳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용감한 일이니까. 큰맘 먹고 엄마와 외국 여행을 갔던 게 몇년 전인데, 동생과 나는 그때의 ‘극한 효도여행’ 이후로 엄마에게 여행 권유를 안 하게 되었다. 일단 우리 엄마는 우리가 찡그리며 바라보던 ‘민폐 여행객’이었다. 비행기에서는 답답하다며 통로를 걸어 다니고, 차에서는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 게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여행지에서 만나면 얼굴 찌푸리며 ‘아, 진짜 싫다 저 아줌마 아저씨’라고 속으로 욕했던 민폐 관광객이 우리 엄마라니. 평소 어찌나 때 미는 한국인이 많았던지 한국어로 ‘때목욕 금지’라고 써둔 대형 온천탕에서 당당히 때를 미는 엄마 옆에서 나는 모르는 사람처럼 멀찍이 앉았다. 때타월은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건만, 반죽도 좋은 엄마는 목욕탕에서 금세 한국 친구를 사귀어 그녀에게 때타월을 빌려 왔다. “때를 밀어야 목욕이지 물에만 들어갈 거면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목욕탕 오냐”며 싫다는 내 등짝을 때리며 우리 몸까지 벅벅 씻겼다.

엄마와의 첫 외국 여행 내내 나는 엄마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에티켓을 소개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게다가 돈 아까워 무엇도 안 하려 하는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1천엔은 한국 돈으로 500원이라고 속이고 입장료를 내고 음식을 사 먹느라 매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엄마가 여행을 경험 안 해봐서 안 좋아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엄마도 좋은 걸 보면 좋아하게 될 거야. 다음에 또 가자고 할 거야. 경험이 쌓이면 달라질 거라고. 왜냐하면 내 기준에 이건 좋은 거니까, 엄마도 겪어보면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 것

“내가 그동안 이렇게 좋은 세계를 모르고 살았구나. 딸 덕분에 이렇게 좋은 경험도 해보네. 고마워. 다음에 또 데려와줘” 하는 아름다운 엔딩은 끝내 찍을 수 없었다. 엄마는 미쉐린(미슐랭)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맛집도, 전세계에서 몇위 안에 들었다는 아름다운 신사도, 블로거들이 극찬한 맛있는 커피도, 10만원이 넘는 호텔 뷔페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자신이 담근 김치를 밥에 올려 먹고서야 ‘이제야 진짜 밥 먹는 것 같다’며 사실 여행 내내 음식이 밍밍해 죽는 줄 알았다고 불평했다. 엄마는 값비싼 호텔 침대보다 자기 방 이불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잠드는 걸 더 즐거워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 뒤에도 엄마와 여행 가기를 시도하고, 엄마가 먹어보지 못했을 특이한 주전부리를 사 보내곤 한다. 내가 아니면 엄마가 평생 안 먹어볼 것들을 계속 엄마에게 추천하고 ‘내가 좋았으니 엄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 떡이랑 빵은 맛있는데 포도는 별로더라”고 솔직한 맛 평가를 한다. 물론 그거 얼마 주고 샀냐고 물으면 나는 구준표라도 된 것처럼 “아 그거 오다 주웠어. 누가 줬어. 이벤트 쿠폰으로 받았다” 등등의 거짓말을 한다.

내가 좋았던 경험을 엄마는 끝내 좋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게 엄마의 취향이고 삶이다. 당근 싫다는데 억지로 입에 넣어주던 내 어린 시절의 엄마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엄마에게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몰라서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는 육십 평생 자신에게 익숙하게 체화된 것만을 편안하고 즐겁게 느끼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엄마가 나를 낳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좋은 걸 보면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는 내 앞에선 ‘그거 별로’라고 해놓고는 뒤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나는 싫다고~ 싫다고~ 하는데 딸들이 끌고 가서 억지로 해봤는데, 그게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

글 · 늘그니

*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