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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상상해왔는가

ⓒhuffpost

판문점 경계를 넘나드는 김정은 위원장을 보며 세계가 탄복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그의 웃음 띤 모습이라니. 은자(隱者)의 왕국, 그곳의 미치광이 외톨이로 여겨진 그가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고, 농담을 건네며, 진지하게 평화를 논의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낯섦 그 자체였다. 자신을 향한 비난과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메라 앞의 김정은 위원장은 여유롭고 당당했다. 해외언론들은 앞다투어 그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꼬마 로켓맨’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아주 개방적이고 훌륭하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세계가 여태껏 인식해온 독재자 김정은과 지금 우리가 마주한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커다란 간극 앞에서 사실 우리 모두는 당황하고 있다.

ⓒHandout . / Reuters

‘괴물’의 놀라운 변화

김정은 위원장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 이후 갑작스레 정치 전면에 등장한 김정은에게 전세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검증되지 않은 젊은 지도자의 등장을 비판하면서 몇년 안에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행보는 값싼 뉴스거리가 되어갔고, 인신공격이 난무했으며 그의 외모와 패션은 조롱거리로 회자되기까지 했다. 확인되는 않은 온갖 ‘설’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숨겨진 비밀인양 유통되고, 거기에 장성택 처형이나 김정남 독극물 살해 등 드라마 같은 ‘사실’들이 뒤섞이면서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는 괴물이 되어갔다. 괴물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는 없었으며, 그는 멸종되어야만 하는 ‘종(種)’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외면할 때 김정은 위원장은 홀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장마당을 활성화함으로써 인민의 경제적 필요를 적극 고려하는 행보를 보인다. 부패한 군부세력을 장악하며 선군정치에서 선당정치로 통치 방식을 전환하여 지금까지 북한에 따라붙어 있는 ‘유격대 국가’, ‘정규군 국가’, ‘병영 국가’와 같은 꼬리표를 떼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당을 중심으로 한 통치체계 재정비는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동시에 자신 또한 정상국가의 지도자임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껏 절대적 위치에서 군림했던 북한의 지도자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2017년의 신년사에서는 인민을 더 높게 떠받들고자 했지만 자신의 능력이 따라가지 못해 자책했다는 ‘고백’을 하고, 급기야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다짐하기까지 한다. 북한이 지난 수십년간 매달려온 수령제를 감안할 때, 지도자의 이같은 고백은 파격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북한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으며, 그곳의 지도자인 김정은 또한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에 대한 인정이 절실한 때

문제는 세계가 그러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 북한이 살아남고자 하는 그 몸부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분단체제에서 남북의 적대적 관계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한국의 기득권층과 보수언론은 그렇다고 쳐도, 북한과의 대화와 평화를 주장했던 상당수의 전문가 집단 또한 자신들의 몸과 의식에 각인된 ‘악마화된 북한’이라는 재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복잡한 동아시아의 정치지형에서 갈등을 만들어내는 ‘깡패국가’가 ‘필요’했던 미국, 일본이나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고분고분한 북한 만들기에만 열중했던 중국까지 모두가 나서서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무대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려 자신을 스스로 재현할 수 없었던 북한은 그렇게 ‘미친-나쁜’ 나라로 취급되었으며, 그렇게 왜곡된 이미지는 ‘사실’로 둔갑하여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게 된 것이다.

남북 간 대화의 물꼬가 열린 현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북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얼마나 온당한 것인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그간 북미 간 협상 결렬에 대한 평가와 분석에서 북한 입장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고려된 적이 있었는지, 온탕과 냉탕을 오간 남북관계에서 북한에 대한 남한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이 작동하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또한 가장 힘 있는 국가인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서 단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북한에 어떤 선택지가 있었는지,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온 북한이 느꼈을 모멸감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절대적 열세에 있는 그들이 경험해온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사회에 깊게 배태된 분단적인 시각에 대한 반성일 것이며, 강대국 중심의 냉전적 질서가 탈냉전 이후 각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재조정되었는지에 대한 비판적 복기 과정의 일부이다.

다시 한번 찾아온 한반도의 기회를 또다시 근원조차 불분명한 불신과 오해로 망쳐버릴 수는 없다. 북한을 향한 우리 모두의 인식이 사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비틀어진 허상일 수 있다는 반성과 함께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어떤 곳인지,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의 지도자는 어떤 철학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지 조금 더 찬찬히 살피고, 그 자체로 온당하게 ‘인정’해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두려움과 외로움에 서러웠을 북한과 그곳의 사람들을 조금은 안쓰러워하면 어떨까?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꼭 필요한 덕목은 바로 공감이니까 말이다.

*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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