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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몽구스가 '적과의 동침' 위해 전쟁 벌이는 이유는 놀랍게도 '진화'와 관련이 있다

적과 짝짓기한 암컷이 진화적으로 더 성공했다는 얘기다.

  • 이인혜
  • 입력 2020.11.10 18:10
  • 수정 2020.11.10 18:15
지도자는 자신을 희생해 지지자를 구할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지자를 희생할까. 줄무늬몽구스는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후자가 맞을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를 제시한다.
지도자는 자신을 희생해 지지자를 구할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지자를 희생할까. 줄무늬몽구스는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후자가 맞을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를 제시한다. ⓒ한겨레/ 악셀 첸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부르는 폭력사태를 일으킨다는 실증적 사례가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줄무늬몽구스에서 밝혀졌다.

줄무늬몽구스는 몸길이 30∼40㎝의 작은 동물이지만 사자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집단의 힘 덕분이다. 큰 물고기에 맞서기 위해 작은 물고기들이 더 큰 물고기 형태로 뭉치는 삽화처럼 줄무늬몽구스는 무리 전체가 하나로 뭉쳐 마치 한 마리의 동물처럼 행동해 경쟁 집단이나 포식자와 맞선다.

이렇게 단단한 결속력을 지닌 몽구스 사회이지만 암컷이 경쟁 집단의 수컷과 짝짓기 하기 위해 싸움을 촉발하는 ‘착취적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부르는 폭력사태를 일으킨다는 실증적 사례가 밝혀졌다.

줄무늬몽구스는 집단 간 싸움이 잦고 희생 또한 크다. 그 원인의 하나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암컷의 부추김으로 드러났다.
줄무늬몽구스는 집단 간 싸움이 잦고 희생 또한 크다. 그 원인의 하나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암컷의 부추김으로 드러났다. ⓒ한겨레/데이브 시거 제공.

 

마이클 캔트 영국 엑시터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우간다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에서 16년 동안 줄무늬몽구스를 현장 연구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 서식하는 이 몽구스는 이웃 경쟁 집단과 잦은 충돌과 그 과정에서 많은 사망이 발생하기로 유명하다. 그 이유를 알려면 이 포유류가 사는 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딱정벌레 등을 주로 잡아먹는 이 몽구스는 10∼20마리로 꽉 짜인 집단을 이루는데 영역 관리에 철저하다. 굴속에서 새끼를 기르며 이웃 경쟁 집단과 끊임없이 영토 분쟁을 벌인다.

암컷은 7∼10일 시차를 두고 일제히 발정기를 맞고 수컷은 이들을 경쟁 집단 수컷으로부터 지킨다. 그런데 이때 경쟁 집단과 분쟁이 벌어져 수컷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암컷이 적의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이 영상 녹화를 통해 드러났다.

게다가 이런 싸움을 일으키는 건 무리의 지도자인 암컷이었다. 캔트 교수는 “집단이 오랠수록, 집단 내 근친교배의 수준이 높을수록 암컷의 싸움 부추기기 확률이 높았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장기간의 관찰 결과 이런 싸움에서 희생되는 건 대부분 수컷이었다.

연구자들이 수컷 499마리와 암컷 377마리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비교했더니 집단 사이의 싸움을 많이 일으킨 암컷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남겼고 생존율도 높았다. 같은 무리 수컷의 희생을 무릅쓰고 적과 짝짓기한 암컷이 진화적으로 성공했다는 얘기다.

줄무늬몽구스의 수컷은 집단 안 주도권을 놓고 싸우지만 암컷은 집단 사이의 싸움을 부추긴다.
줄무늬몽구스의 수컷은 집단 안 주도권을 놓고 싸우지만 암컷은 집단 사이의 싸움을 부추긴다. ⓒ한겨레/ 해리 마셜 제공.

 

연구자들은 “줄무늬몽구스는 집단 간 싸움을 하느라 많이 죽는데 이는 암컷이 유전적 이득을 얻기 위해 싸움을 시작하는 반면 수컷은 집단적 갈등의 대가를 도맡기 때문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도자가 침략을 주도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른다는 영웅 모델과는 맞지 않는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줄무늬몽구스가 보이는 것은 오히려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부분의 부담을 다른 이들에게 지우는 ‘착취적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포유류 가운데 침팬지와 사람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페이 톰슨 엑시터대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지도자들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집단 사이 분쟁의 파괴적 속성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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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과학 #진화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