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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0일 11시 02분 KST

이번 주 '불법촬영' 공포감 호소하는 한국 남성들이 급증한 이유

4년동안 동영상 2만개가 몰래 녹화됐다.

한겨레

직장인 김아무개(29)씨는 지난 17일 ‘40대 남성이 모텔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불법촬영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남성인 자신도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어서다. 김씨는 “출장을 가거나 술을 많이 마시면 모텔에 숙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뉴스를 보면서 눈치채지 못하는 새에 나도 찍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성들이 불법촬영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을 때의 심정이 이해됐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4년 동안 모텔에서 불법촬영을 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공포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의자 ㄱ(43)씨는 2014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초구의 모텔 3곳, 17개 객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투숙객을 불법촬영한 혐의(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지난 18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경찰 조사 결과 ㄱ씨가 불법촬영한 영상은 2만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을 접한 이들은 대체로 ‘모든 사람이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건이 특정 성별을 겨냥한 게 아니라 모텔을 찾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어진 탓이다. 직장인 김명환(28)씨는 “이번 사건을 보고 (다중이용시설이) 꺼림칙해졌다”며 “모텔 불법촬영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김대경(29)씨는 “모텔은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할 텐데, 이런 곳에서 불법촬영이 수년간 계속됐다니 공포감이 들었다”며 “행여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삭제도 어렵기 때문에 불법촬영은 악질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수년간 불법촬영 피해는 성별을 불문하고 꾸준하게 늘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이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불법촬영 범죄 발생 건수는 2012년 2400건(피해자가 여성인 경우는 2286건)에서 매년 늘어나 2017년 8월에는 3914건(3329건)으로 약 1.6배 늘었다. 남성 피해자 수도 2012년 53건에서 2016년 160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성별과 관계없이 불법촬영의 피해사례가 늘어나면서 일부 남성은 그간 여성들이 호소하던 불법촬영에 대한 불안감을 이해한다는 반응도 보였다. 직장인 전길중(27)씨는 “지금껏 불법촬영 범죄의 대상으로 여성이 많았던 탓에 남성들이 이 문제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며 “이번 일로 남성들도 어렴풋이 알게 된 놀람과 분노를 여성들은 매번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아무개씨도 “여동생이 ‘불법촬영이 무섭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 사건을 보니 그게 예민한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더구나 불법촬영은 피해자가 주의를 기울인다고 예방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카메라를 눈에 잘 띄지 않는 텔레비전 아래 쪽에 부착한 탓에 4년 동안 발견이 안 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텔레비전의 전자파로 인해 경찰의 불법촬영 기기 감지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검증 당시) 맨눈으로 봤을 때 불법촬영 기기를 쉽게 알아채기는 어려운 상태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법촬영을 근절할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불법 촬영물을 소비해온 남성들도 불법촬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불법촬영 영상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불법 촬영물을 다운받는 사람이 있는 이상 불법촬영자가 영상을 지운다고 해서 영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영상물을 소비한 이들과 소비를 중개한 웹하드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제재도 있어야 디지털 성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도 “불법촬영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엄격한 처벌은 당연하고, 개개인이 불법 촬영물을 소비하거나 유통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