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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투표 조작' 사태에도 CJ ENM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잔인해지고 있다

엠넷 <아이랜드>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생존게임이 시작된다'고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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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랜드> ⓒ엠넷

씨제이이엔엠(CJENM)의 경연프로그램 <프로듀스>(엠넷. 이하 프듀) 전 시즌이 지난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원회 회의에서 ‘과징금’ 부과 결정을 받고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방송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소위원회는 “공적 매체로서 방송의 공정성과 시청자 신뢰도를 현저히 훼손시켜 최고 수준의 징계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앞서 16일 <프듀> 시리즈를 담당했던 신형관 씨제이이엔엠 음악콘텐츠본부장도 사실상 경질됐다. 이로써, 조작으로 얼룩진 씨제이이엔엠의 경연프로그램 잔혹사는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2009년 시작한 <슈퍼스타케이>부터 <프듀> 시리즈까지 11년 동안 이어진 자극적인 경연프로그램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씨제이이엔엠은 <프듀> 시리즈 사태가 수습 중인 와중에 또 다른 경연프로그램을 줄줄이 선보이고 있다. 지난 6월24일 글로벌 아이돌을 뽑는 <아이랜드>(I-LAND)를 시작했고, 방영 때마다 자극적인 설정으로 입길에 올랐던 <쇼미더머니 시즌9>도 하반기 방송을 앞두고 있다. <프듀> 사건 직후 편성하려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보류했던 ‘10대들의 오디션’ <캡틴>도 10월에 방송을 확정했다.

씨제이이엔엠 쪽은 “시청자 투표로 이뤄지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관인 제도를 적용하는 등 <프듀> 사건 이후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참관인 제도를 <로드 투 킹덤> 등 7~8개 프로그램에 적용해보니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하지만 <프듀> 사태 이후 아이돌 연습생을 대상으로 한 첫 프로그램 <아이랜드>를 보면 씨제이이엔엠이 과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4회까지 방송된 내용을 살펴보면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더 가혹하고 잔인해졌다. 4년간 4시즌에 걸쳐 대국민 투표를 조작해온 <프듀>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참가자들에게 떠넘긴 모양새다. 경연에 참여한 총 23명의 운명을 아이들 손으로 직접 결정하게 했기 때문이다. 12명을 뽑는 1차 선택에서 참가자들은 다른 이들의 무대를 본 뒤 거수로 직접 합격자와 탈락자를 정했다. 아이들은 “잔인하다”면서도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며 방출되지 않기 위한 작전을 쓴다.

살기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행위를 진행자인 남궁민의 입을 빌려 합리화하기도 한다. “운명을 함께할 팀원을 정하는 특권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한 단계 성장해가는 시간이다.” 씨제이이엔엠 쪽은 “참가자에게 자발성을 부여하고, 시청자 입장에서도 고민했으며, 투표의 공정성까지 고려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돌 인권 관련 책을 집필했던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영화 <헝거게임> 혹은 <배틀로얄>이 생각날 정도로 참가자들의 경쟁방식을 더 노골적으로 볼거리화했다”며 “친구가 탈락할 때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감정을 전시하는 게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프듀> 사태 이후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경쟁 과정에서도 아이들 인권은 철저히 배제된다. 프로그램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70억원짜리 세트는 마치 현실 속 경쟁 사회를 축소해놓은 듯하다. 합격한 아이들은 모든 것이 갖춰진 ‘아이랜드’라는 공간에서, 탈락한 아이들은 공간만 덜렁 있는 ‘그라운드’에서 연습을 한다. 성적으로 우등반과 열등반을 나눠 아이들을 차별화했던 교육시스템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 모양새다.

시작부터 차별적인 환경에서 연습한 아이들이 흙수저와 금수저처럼 자신이 속한 공간을 ‘태생’으로 여기는 모습도 놀랍다. 그라운드에서 아이랜드로 올라온 한 참가자는 아이랜더의 화려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이고, 아이랜드에서 그라운드로 내려간 참가자는 그라운더 아이들을 무시한다. 씨제이이엔엠 쪽은 “그라운더에서 시작했지만 노력을 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프듀> 당시 순위를 매기고 무대 높낮이를 달리해 논란을 빚었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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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

인권을 무시한 채 이뤄지는 현재 아이돌 연습생 양산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민 없이 가져온 것도 불편하다. 참가자들을 무한경쟁에 몰아넣고 “사회는 원래 이런 곳이니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강요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까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씨제이이엔엠 쪽은 “정신과, 내과, 이비인후과, 한의사까지 전문의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원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상담도 한다. 제작진 외의 직원이 밀착해서 지원자의 멘탈 등도 관리한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프듀>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연습생을 상대로 한 또 다른 경연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도준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는 “<프듀> 투표 조작의 가해자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피해를 본 참가자에 대한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연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는 만큼 장점을 잘 살리는 포맷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씨제이이엔엠의 경우, <슈퍼스타케이> 때부터 경연프로그램이 통한다는 걸 체감했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는 만큼 장점을 잘 살려서 이어가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며 “잘 못하는 아이들을 오히려 좋은 환경에서 연습하도록 해 실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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