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성 상품화’ 비판을 받아온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겠다’ 선언했다. 하지만 11일 열리는 본선대회에서 후보들의 ‘수영복 영상’은 공개하기로 해 ‘여성 외모 품평’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회 공동주최사인 한국일보 이앤비(E&B)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과거 후보들이 번호표를 달고 무대에서 펼쳤던 수영복 퍼레이드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 공개될 수영복 영상은 평가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호텔 옥상 수영장에서 촬영한 10분 가량의 스케치 영상이기 때문에 후보들도 번호표를 달지 않고 촬영했다”고 수영복 심사의 폐지를 주장했다. 선발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 수영복 영상을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선 “하나의 콘텐츠로 수영복 영상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스코리아 대회 운영본부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껏 미인대회가 비판받아온 본질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모순적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주최 쪽이 정말 수영복 심사를 폐지할 생각이었다면, 후보들의 수영복 영상 자체를 찍을 필요가 없다”며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대든 영상이든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모습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적인 품평, 외모 서열 매기기 등의 미스코리아 대회의 본질적 문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99년 여성의 외모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 제시 등을 비판하며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개최했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출신의 조박선영 이프북스 편집장 역시 “20년 전 열렸던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가 미스코리아 대회의 목적과 취지에 의문을 제기했던 수준이라면, 지금의 여성들은 아동 모델에게까지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미인대회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10대·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탈코르셋 운동까지 전개되는 상황에서 주최 쪽이 사회적인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최사인 한국일보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기자들은 10년째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회사 경영진은 이러한 목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며 “매년 미스코리아 대회 때마다 성차별 문제를 제기해온 현장 기자들만 부끄러워진다. 사업적으로도 이 대회가 돈이 되지 않는데, 왜 경영진이 주최를 고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