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여성이 ‘피임기구’를 시술받는 복잡한 이유(미레나 체험기)

미레나는 질병 치료 목적으로 시술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유일한 피임기구다.
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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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레나

생리는 여성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극심한 생리통 및 부정출혈로 고통받는 사례는 의외로 흔하다. 나 역시 생리를 시작한 청소년기 때부터 매번 생리통 때문에 고통받았으며 대부분 약으로 생리 기간을 버텼다. 병원에서도 진통제 처방이나 링거주사 처방 외에는 생리통을 없애는 마법 같은 약은 없다는 말만 매번 했다. 생리 기간이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중순, 생리 기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속옷에 피가 묻었다. 생리는 분명 아니어서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초음파 검사 후 더 큰 병원에 가보라는 진단서를 받았다.

대학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자궁내막증(자궁 안에 있어야 할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밖에 있는 증상)‘이었다. 피임약을 먹거나 ‘미레나’라는 피임기구를 시술하라고 추천받았다. 생리통과 자궁내막증에 큰 효과가 있다는 말에 미레나를 시술받기로 결심했다. 피임약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약을 챙겨 먹어야 해서 귀찮은 데다 미레나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미레나 시술을 고려할 때 첫 번째로 고민하게 되는 일은 시술 시 마취를 받을지 말지다. 후기를 검색하면 많은 이들이 마취를 받았다고 나온다. 나도 당연히 아플까 봐 걱정돼 마취를 받겠다고 했지만, 뜻밖에도 “우리는 다른 병원과 달리 미레나 시술할 때 마취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단호한 답을 들었다.

걱정은 됐지만, ‘뭐 아파서 죽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시술을 결정했다. 당일 새벽과 아침에 병원에서 미리 처방받은 진통제와 자궁을 이완시켜주는 약을 먹었다. 원래 미레나는 생리 중에 시술을 받는 게 원칙이고 통증도 적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생리를 하지 않을 때도 시술이 가능해 나는 생리를 하지 않을 때 받았다.

“자, 금방 끝나요.” 의사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산부인과 의자를 붙든 팔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초음파 기구를 넣는 불편함 정도라 ’어? 참을 만한데?’ 싶었지만, 곧 후회했다. 미레나 기구를 자궁에 실로 고정하는 느낌은 가장 심한 생리통을 느낄 때와 비슷했다. 내부 장기를 쥐어짜 바르르 떠는 그 느낌 말이다.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통증이다. 10분 이내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술이 끝난 직후 더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의자에서 내려오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간호사가 안내한 침대에 잠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누워있는 내내 생리통이 가장 심할 때와 비슷한 고통을 느꼈다. 구토도 한 차례 했다. 보호자와 함께 겨우 집에 와서도 침대에 누워 하루를 꼬박 쉬었다.

자궁에 직접 기구를 삽입하는 시술이므로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 없는 여성보다 덜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출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아팠으리라.

경험자로서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시술 후 바로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 최소 하루는 푹 쉴 여유를 두는 게 좋고, 가능하면 보호자와 동행하길 추천한다. 시술 후에는 생리와 비슷한 출혈이 있다. 나는 한 3일 후 멎었지만, 출혈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한 달 동안은 수영, 목욕탕 이용, 성관계를 조심해야 한다.

마취 여부는 의사와 충분히 상담한 후 결정하길 권한다. 병원에서 시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리면 건강보험이 적용돼 10만원 후반대에 시술이 가능하지만, 보험 없이도 30만원대에 시술받을 수 있다. 현재 미레나는 질병 치료 목적으로 시술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유일한 피임기구다.

루프를 설치한 자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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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를 설치한 자궁의 모습

미레나의 원리와 장점

미레나는 T자 모양의 플라스틱 재질이며, 루프의 일종이다. 작은 실린더(속이 빈 원통 모양에서 피스톤이 왕복 운동을 하는 장치)가 매일 극소량의 ‘레보노르게스트렐 호르몬’을 자궁 내로 방출해 배란을 억제해 임신을 막는다. 자궁질환의 주요 증상으로 내막이 필요 이상으로 두꺼워질 수 있다. 레보노르게스트렐은 자궁내막이 필요 이상으로 두꺼워지는 걸 막는 호르몬이다.

미레나가 배출하는 호르몬은 자궁에만 작용한다. 피임약은 전신에 작용하는 반면, 미레나는 호르몬을 최소한으로 생성해 부작용을 줄였다. 한번 시술하면, 최장 5년까지 사용 가능하며,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 5년 후에는 새 기구로 교체해 다시 시술이 가능하다. 또한 미레나는 현존하는 피임법 중 가장 피임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미레나가 몸에 잘 맞을 경우 지긋지긋한 생리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궁근종, 선근증, 내막증 같은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미레나의 부작용

미레나도 부작용이 있다. 모든 피임기구와 피임약은 인체의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며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나는 괜찮겠지’ 생각하기 쉽지만, 부작용은 생각보다 흔하다. 미레나의 부작용은 부정출혈, 구토, 체중 증가, 무월경, 피부 트러블, 유방암의 위험 증가 등이 있다. 이중 무월경은 가장 착각하기 쉽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미레나를 삽입한다고 해서 생리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다. 생리가 끊긴다면? 부작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레나를 삽입하면 생리 양이 줄더라도 생리를 하는 게 정상이다.

구토와 엉덩이 통증 부작용 극복기

내가 겪은 부작용은 구토와 극심한 엉덩이 통증이었다. 원래는 생리 때만 아팠지만, 미레나를 삽입하고 나니 생리 기간이 아닌데도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겪었다. 수시로 그랬다. 엉덩이가 아파서 누워있는 게 힘들 정도였다.

다행히 부정출혈은 없었다. 부정출혈이 심한 사람은 6개월 내내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미레나가 저절로 빠져 외부로 배출되는 경우도 있다. 부작용이 확인되면 바로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보통 3~12개월은 적응 기간이지만, 이후에도 부작용이 지속되면 몸에 맞지 않는 것이니 제거를 추천한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부작용이 발생하면 미레나 같은 루프는 제거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제거를 할 때도 어느 정도 통증과 출혈이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처음 몇 달은 매일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다. 너무 힘든 날도 있었다. 항암 치료에 쓰인다는 구토 억제제까지 처방받아 먹었지만, 효과가 없을 정도였다. 힘들어도 딱 6개월만 견뎌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딱 6개월 차쯤 통증이 점차 줄어들었다.

완전히 방심할 순 없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것만으로 행복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다른 사람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다. 그래도 생리 양이 조금은 줄었고, 장기적으로 자궁 질환이 좋아지길 기대한다. 피임 효과는 크게 생각해본 부분은 아니지만, 아직 결혼 및 출산 계획이 없는 입장에서 일종의 ‘덤’이다.

여러가지 피임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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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피임방법

피임기구 및 자궁질환에 관한 편견

생리통과 자궁질환 때문에 피임기구를 시술하면서 이를 둘러싼 여러 오해 및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앞으론 원하더라도 임신이 어려워진다‘, ‘여성의 몸에 좋지 않다‘, ‘성생활이 문란할 것이다’ 등이다. 여러 병원에서 상담하는 동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피임 기구를 삽입하는 걸 반대하는 의사도 만났다.

피임기구를 시술하는 일은 사실 더 건강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다. 피임기구는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생리통이나 자궁질환에 큰 도움이 된다.

생리통이나 자궁질환을 앓는 이들이 주의해야 할 일도 있다. 석류와 홍삼에 대한 오해다. 흔히 석류나 홍삼은 여성과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여러분이 생리통이나 자궁 질환을 앓고 있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석류와 홍삼을 피해야 한다. 이 음식이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이 과다 분비하면 생리통, 생리 전 증후군, 근종이나 여성 생식기계의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생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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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

좋은 병원을 선택하는 방법

피임기구를 시술하는 병원은 너무나 많건만, 어떤 병원을 택해야 할까? 크게 대학병원과 동네병원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학병원의 장점은 좋은 시설과 뛰어난 의사가 있고, 여러 부서와 협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예약을 해도 때때로 몇 달씩 기다려야 하고, 넓은 병원에서 검사나 약을 받을 때마다 해당 부서를 찾아다녀야 한다. 정해진 진료 시간에 내 일정을 맞춰야 하는 것도 단점이다.

동네 산부인과의 장점은 가깝다는 것이다. 영업시간이 비교적 길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은 의사마다 실력 편차가 크고, 대학병원보다 시설이 부족하다. 의사와 내 ‘코드’가 맞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내 경험담을 얘기해보겠다. 한 의사는 생리통 치료도 중요하지만, 상담 내내 미래의 ‘임신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의사가 임신하려면 생리통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에게 진료받고 싶지 않아졌다. 임신 가능성보다 지금 당장 생리통을 없애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임신을 정말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사가 더 마음에 들 수도 있지만 말이다. 불편한 의사는 또 있었다. 증상 및 치료 방법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사무적이거나 무뚝뚝한 부류다.

피임기구를 시술하려면 병원에 여러 번 가야 한다. 지속적인 검사가 필요하고, 부작용이 발생하면 병원에 또 가야 한다. 그러니 여러분은 병원을 세 군데 정도는 미리 상담받아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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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기구’ 아닌 ‘호르몬 조절 기구’로 명칭 바꾸면 어떨까?

피임기구를 시술받는 여성이 많은 이유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중에 여러 피임약 및 미레나 같은 루프 기구와 수술법이 있지만, 내 몸에 맞는 방법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영국 여성 사라는 무려 12년간 자신의 몸에 맞는 생리통과 자궁내막증 해결방안을 찾아 헤맸다. 생리로 인한 통증이 너무 심해서 심한 불안, 공황 발작, 편집증을 겪으며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미레나를 시술받으며 마침내 행복을 찾았다. ”최고다. 부작용도 거의 없고 18개월 동안 생리도 안 했다. 이제 이걸로 자궁내막증이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사라는 말했다.

물론 말 그대로 ‘피임‘을 위해 피임기구를 시술하는 사람도 많지만, 생리 주기 조절, 생리통 완화를 주목적으로 시술받는 경우도 정말 많다. 미레나는 자궁 적출 전 마지막으로 도전하는 시술이기도 하다. ‘피임’이라는 단어가 직관적이면서도 쉽긴 하지만 여성이 ‘피임기구’를 시술하는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하다. 단지 피임만을 위해서 시술받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최근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변경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2019년 11월에는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명칭을 바꿔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와 4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피임기구도 ‘호르몬 조절 기구‘로 명칭을 변경하면 어떨까? 그럼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처음 피임약을 먹은 건 고등학교 때 생리 주기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시험 기간과 생리가 겹치는 걸 피하려고 약국에 갔는데 처음엔 피임약을 달라고 하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생리 미루는 약’ 주세요”라고 에둘러 말한 기억이 난다.

사실 ‘피임기구‘와 ‘호르몬 조절 기구‘는 같은 원리지만 어감이 매우 다르다. ‘피임약‘과 ‘호르몬 조절약‘도 마찬가지다. 피임약이나 피임도구에 붙은 ‘피임‘을 ‘호르몬 조절(임의명칭)’로 바꾸면 접근하기 쉬우면서도 오히려 더 경각심을 갖고 사용하게 되리라. 생리이나 자궁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여성이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 및 완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