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2018년 04월 16일 12시 14분 KST

너의 X세대 아저씨

huffpost

그렇다. 이것은 지겨운 세대론 이야기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가 말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꼰대는 386 꼰대가 아니라 X세대 꼰대래.” 나는 무릎을 쳤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완벽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설명을 좀 하겠다.

일단 세대론에 밝지 못한 분들을 위해 한국의 세대를 구체적으로 나눠보자. 1950년대 중·후반에서 6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반생은 ‘민주화 세대’라고 한다(그렇다, 386이다). 70년대 초·중반에서 80년대 초반생은 ‘X세대’로 묶을 수 있다. 그 이후는 N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로 구분하지만, 모두 밀레니얼 세대로 묶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한겨레21

한국에서 가장 거침없는 세대

회사로 따지자면 밀레니얼 세대는 신입사원에서 차장, X세대는 과장(혹은 부장급으로 막 진급했을 수도 있다), 부장급 이상은 거의 386세대다. 친구는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이 X세대를 더 싫어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386 꼰대들은 그냥 꼰대잖아. 어차피 말이 안 통해. 그런데 X세대 꼰대들은 이러는 거지. ‘이런 게 새로워? 니네보다는 내 아이디어가 더 신선하지 않아?’ 당연히 누가 더 싫겠어. 말 안 통하는 꼰대보다는 지가 더 생각이 젊고 자유롭다며 뻐기는 상사가 더 싫지.”

물론이다. X세대는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거침없는 세대일지 모른다. 여러 일간지들의 설문조사를 보자면 1970년대생 X세대는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기운을 잃지 않는 세대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종종 문제가 된다. X세대는 위아래에 대해 불만이 많거나 위아래와 잘 섞이지 못한다. 세상을 자신들이 바꿨다는 386의 자부심을 경계하면서도,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와는 의견이 상충한다. X세대는 문화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렇지 않다. X세대는 여전한 개인주의자들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개인보다 더 높은 집단적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미국도 비슷하다. ‘세계 가치관 조사’(월드 밸류스 서베이)에 의하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30%만이 ‘반드시 민주국가에서 살아야 한다’고 답했다. X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의하면 밀레니얼 세대의 40%는 ‘정부가 특정 유형의 모욕적 발언을 규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의견을 가진 X세대는 27%에 그쳤다. 한국도 비슷한 조사를 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한국의 X세대는 비록 짧지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거품’을 경험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공정하든 공정하지 않든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보다 중요하다는 여전한 믿음이 있고, 무한한 표현의 자유에 강박적 신뢰도 있다. 그 때문에 X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공포와 불안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올해 ‘밀레니얼 세대는 왜 자유를 경계하는가?’라는 칼럼에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경계심에 ‘공포’가 숨어 있다고 해석했다. 공포는 자유의 가장 큰 적이 맞다. 그 공포는 윗세대가 만들어놓은 허약한 경제·사회·정치적 토대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두 세대는 같은 고통을 통과하고도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아저씨 역할은 386세대에게

두 세대의 차이를 좁힐 방법? 그런 환상적인 방법이 있다면 제발 나에게 전자우편으로 좀 보내주시길 바란다. 다만 한 가지 다짐은 해볼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젊고 자유로운 X세대 아저씨’가 되고 싶어 하는 노력을 아예 포기하자는 것이다. 솔리드(1990년대 한국 그룹)가 컴백했어도 그게 우리를 젊고 힙한 오빠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아저씨의 역할은 매우 죄송하지만, 이미 어쩔 도리 없는 386세대에게 온전히 바치면 될 일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비슷하고도 아주 다른 두 세대의 격차를 좁힐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