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펜스룰이 대안이라고?

ⓒhuffpost

2017년 ‘우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직원이 성희롱 사실을 고발했지만 묵살되었고 오히려 자신이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우버의 사내 문화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고, 심각성을 느낀 우버는 광범위한 조사를 한 뒤 20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미국에서 성희롱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와 법원에 의한 성희롱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특히 성희롱 사건을 무마하거나 피해자의 2차 피해에 책임이 있는 회사들은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감수해야 했다.
이에 대해 일부 회사에서는 남녀 간 사내 데이트를 일절 금지하거나, 가해자로 지목되면 조사 없이 무조건 해고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성희롱 소송이 빈발했던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학생 간의 데이트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이 여성들과의 개별적인 상호교류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그러니까 요즘 이야기되는 ‘펜스룰’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인 것이다.

ⓒwebphotographeer via Getty Images

문제는 이러한 교류의 단절이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조직의 상층부를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과의 개별적·비공식적 교류가 차단되면,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여성들에게 불리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출장 같은 공식 업무에서 여성이 부당하게 배제되거나 채용·승진에서 탈락한다면 그건 아예 불법적 차별이다. 이것이 미투운동이나 반성희롱·반성폭력 운동이 지향하는 ‘성평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경험에서 몇 가지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다. 먼저, 강력한 성희롱 규제가 일부 부작용을 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회사가 파산 위기에 내몰릴 정도로 강력한 외부 압박이 가해지면서 발생한 일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미국의 미투운동을 촉발했던 와인스틴의 성희롱·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그의 회사(와인스틴 컴퍼니)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결국 매각되었다. 반면 한국에서의 성희롱 규제는 너무나 미약한 수준이다. 미국에서의 부작용 사례를 들먹이며 성희롱 규제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다만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조직문화를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바꾸고,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인권의식 수준을 향상시키고, 조직 내 비공식적 분쟁해결 기구가 당사자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절차를 제공하고, 성희롱 사건 발생 시 제3자 구성원들의 자율적 대응력을 향상시키는 교육·훈련을 실시한 회사·대학에서 성희롱 예방 효과가 높게 나타났고, 펜스룰 같은 부작용도 적었다는 미국의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는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가 전반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에서 성희롱 문제가 다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보고가 많다. 사내 성희롱 예방이 결국 노동권 보장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시사하는데,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미투운동으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용기와 시민들의 연대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동시에 미투운동 이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미투운동의 정신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안착하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설계된 제도화를 고민해야 한다. 펜스룰이 대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자유롭고 평등한 교류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미투 #보이스 #MeToo #성희롱 #우버 #고용기회평등위원회 #와인스틴 #노동권 보장 #사내 성희롱 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