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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게 있다. 나는 정신장애 앓는 걸 창피하게 여기며 산 사람이다

성인으로서의 내 삶은 어릴 적만큼이나 불안정했다.

  • 김태성
  • 입력 2018.09.18 15:27
  • 수정 2018.09.18 15:49

정신건강 운동가로 활동해온 나는 불안증, 광장공포증, 우울증을 앓는다고 이전에 밝힌 바 있다. 모두 사실이다. 다만 불안증과 광장공포증은 전문의의 진단을 받은 병명이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 내 우울증은 내가 앓는 다른 정신질환들의 증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남에게 드러낸 내 모습은 온전한 성인이었다. 그러나 그건 카오스와 같은 혼란스러운 내 삶을 숨기는 데 필요한 가면이었다. 지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몇 명의 절친을 제외하고는 내 관계라는 건 끊임없는 남자친구와 부끄러울 정도로 잦은 이직을 통해 만난 사람뿐이었다. 성인으로서의 내 삶은 어릴 적만큼이나 불안정했다.

ⓒGETTY IMAGES/EYEEM

나는 나 자신과 매번 약속했다. 다음에 만나는 남성을 남편으로 맞을 것이며 관계를 망치는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새 직장을 그만두면서는 다음 직장이 내 마지막 일터가 될 거라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게 행동할 거라고. 회사를 즉흥적으로 때려치우지 않고 문제나 이견을 자문위원회에 의뢰할 것이라고. 뒤돌아보면 이런 약속들은 내 마음을 잠시 안정시키고자 생각해낸 허사에 지나지 않았다. 

2014년, 나는 준법률가(paralegal) 과정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주치의의 권고로 한 상담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정신과 의사도 만났다. 진단을 마친 의사는 경계성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는 질환이라며 내 삶이 카오스 같은 이유는 이 병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계성인격장애가 무엇인지 아예 몰랐던 나는 소리를 지르고 울며 병원을 나왔다.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병인가? 내 성격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집에 돌아온 후 인터넷을 뒤져봤다. 몇 줄을 읽다 말고 겁이 덜컥 났다. 나는 의사의 진단이 없었던 듯, 내 문제는 불안증과 우울증이라고만 지인들과 매체에 계속 고집했다.

그리고 작년, 정신적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전체적인 정신건강을 타진하는 2시간짜리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불안증, 광장공포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그리고 경계성인격장애를 공식적으로 진단받았다. 

마음을 어느 정도 가다듬은 상태여서 두 번째 진단 결과에 대해 이전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경계성인격장애가 확정되는 순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병을 앓는다는 사실도 문제였지만, 병명도 모른 채 그런 병을 안고 살았다는 사실이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누구에게나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은가?!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두 정신과 의사로부터 진단받은 경계성인격장애라는 내 병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

국립정신건강제단은 경계성인격장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서울아산병원의 설명 인용함- 옮긴이).

경계성 인격장애란 정서·행동·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인격 장애로 권태감과 공허감이 만성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자제력이 부족하고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매우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환자의 감정이 정상에서부터 우울, 분노를 오가며 매우 기복이 심하고 행동은 폭발적이고 예측할 수 없으며 낭비, 도벽, 도박, 자해, 자살 시도, 약물 남용 등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발병 빈도가 높고 여러 가지 인격장애 중에서도 빈도가 가장 높은 인격장애입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고 외쳐대던 나에게 아주 크나큰 창피감이 엄습했다. 내 연설을 들은 관객 중에는 내 말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동기가 되었다며 감사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사실을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경계성인격장애를 재차 진단받은 날, 나는 거대한 세상에 사는 아주 초라한 인간 같은 기분이었다.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 이 병이 ‘나’라는 인간에게 뭘 의미하는가? 자신의 병을 부인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정신건강 운동가를 계속 자처할 수 있는가? 뭐가 진실인가? 경계성인격장애를 앓는 사람에게 정신건강 운동가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가? 경계성인격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산 사람으로서 내가 운동가로 누린 기회와 혜택은 무의미한가?

내 정신건강이 안정돼 보여야 정신건강 운동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게 오명을 씌울 수도, 모멸감을 줄 수도 없었다. 당연히 타인에게 보이는 안정되고 침착한 나의 삶과 카오스로 가득한 나의 실제 삶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정신건강 문제를 창피하게 여기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나는 내 현실을 감췄다. ‘오명을 벗어던지자‘라는 운동을 이끌던 순간에도 나는 그 오명이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2013년에 캐나다 당국이 주최한 ‘나는 내 장애가 아니다’라는 정신건강 캠페인에 출연한 바도 있지만, 나부터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최근까지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정신건강 운동가로 계속 활동하려고 한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내 독자, 내 관중과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신질환이란 오명을 벗기는데 노력할 것이며 그런 움직임에 앞장설 것이다. 다만 전달법은 바꿀 생각이다. 더는 정신장애인에게 질환을 앓는 걸 창피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지 않을 거다. 대신 낯설고 두려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창피를 느끼는 건 당연한 반응이라고 설명할 거다. 여러분의 사랑과 지지를 부탁한다. 

 

*허프포스트CA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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