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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엔 없는 생리휴가 악용하는 여성들, 연휴 쉬려고 주말에 붙여써" 지적은 외국 주요나라 현실 몰라서 하는 얘기다

유럽 선진국에선 ‘아플 때 쉴 수 있는’ 병가제도가 있기 때문에 따로 생리휴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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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RunPhoto via Getty Images

 

“생리(보건)휴가는 입사한 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직장에 여성직원이 많지만 보건휴가를 챙겨서 쓰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아무개(26)씨는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생리휴가가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아무개(28)씨도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분위기임에도 생리휴가를 쓰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73조는 ‘여성 노동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일터에서 많은 여성들은 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김수천 전 아시아나항공 대표가 승무원 15명이 138차례 신청한 생리휴가를 승인하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2백만원 벌금형이 확정되자, 생리휴가를 놓고 온라인에서 때아닌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이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주말에 붙여서 쓰는 것이 문제”라는 등 생리휴가가 ‘특혜’라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소수 사례를 일반화해 생리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리휴가 사용했다”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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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golibtolibov via Getty Images/iStockphoto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실제로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노동자는 다섯명 중 한명에 그친다. 27일 통계청에 공개된 여성 노동자의 생리휴가 사용률을 보면 2014년엔 “지난해 생리휴가를 사용했다”고 답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23.6%였지만 꾸준히 감소하다가 2018년엔 19.7%만이 지난해 생리휴가를 썼다고 답해 20% 아래로 사용률이 떨어졌다. “생리휴가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2012년 54.8%가 쉽게 쓸 수 있다고 답했고, 2018년엔 60.5%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사용률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통계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년 주기로 시행하는 ‘여성관리자패널 조사’로 100인 이상 기업 대리급 이상의 여성 노동자 23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일정 규모·직급 이상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여성들이 이보다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리휴가 사용률이 높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성들은 생리 기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상 갑자기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하는 손아무개(28)씨는 “매장 근무는 갑자기 자리를 비우면 일할 사람이 없어 생리휴가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며 “근무 기간 2년 동안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조퇴를 한번 했는데 아르바이트생에게 전화를 돌려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을 찾은 뒤에야 조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업무 때문에 생리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공무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달 4일 기본소득당 신지혜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 번이라도 생리휴가를 사용한 서울시청 여성 공무원은 4057명 중 16명(0.4%)에 불과했다. 울산, 세종, 전북에선 생리휴가를 사용한 여성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직장상사나 동료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생리휴가 사용을 망설이는 이들도 있다. 김아무개(35)씨는 “다수의 여성들은 생리 주기가 기계처럼 규칙적이지 않은데, 이해가 부족한 동료가 있으면 쉬는 주기를 가지고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며 “생리기간이기 때문에 아파서 쉬어야 한다고 동료에게 밝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생리휴가 입증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사실상 생리 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사업장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해 12월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생리휴가 신청 시 회사가 입증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인권을 침해 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에 차별 시정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생리 휴가 신청 노동자에 입증·사전 승인 강요 건강보험 고객센터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0.12.7/뉴스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생리 휴가 신청 노동자에 입증·사전 승인 강요 건강보험 고객센터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0.12.7/뉴스1 ⓒ뉴스1

 

법정 병가제도·상병수당 없는 국가는 OECD 중 한국뿐

온라인에서 일부 누리꾼은 “여성이 연휴를 쉬기 위해 생리휴가를 주말에 붙여 쓴다”, “한국과 일본 등 소수 국가에만 존재하는 제도로 없어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일터의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시각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8년 노동자 5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이듬해 발표한 ‘2019년 근로자 휴가조사’를 보면 ‘휴가일정을 사전에 동료와 협의하도록 권유받는지’를 묻는 질문에 여성의 16.2%가 “매우 그렇다”고 답해 남성(12.4%)보다 3.8%포인트 많았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서비스업 등 ‘대면노동’에 종사해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면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과 일본 등 소수 국가에만 존재하는 제도로 없어도 된다”는 주장 역시 누구나 아플 때 쉴 수 있는 외국 주요 나라의 현실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유·무급 병가제도가 법으로 보장되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미국은 지난해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한시적으로 유급 병가를 도입했다. 유럽 선진국에선 세부내용(휴가 기간, 사용조건 등)의 차이가 있지만 ‘아플 때 쉴 수 있는’ 병가제도가 있기 때문에 따로 생리휴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OECD 가입국 중 법정 병가제도와 상병수당이 모두 없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휴식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전문가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리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오한진 교수는 “생리가 동반하는 통증 및 증상을 고려하면 생리휴가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짚었다. 오 교수는 “생리는 복통뿐 아니라 빈혈, 구토, 메스꺼움, 설사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출혈량이 많아지면 빈혈 탓에 쓰러지는 사례도 있다. 또 호르몬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울, 불안,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도 야기한다.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한다면 생리휴가를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승현 부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생리휴가가 노동법상 실제 있는 제도임에도 쓰라고 권장하거나, 쓰는 선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자 입장에선 ‘실재’하지 않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생리휴가 보편화를 위해선 정부의 시행 의지와 씨이오(CEO) 등 상위 관리자 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법적·정책적으로 시행하면 기업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여성 임원 등 관리자급이 앞장서서 생리휴가를 써주는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시작하긴 힘들지만, 위에서부터 시작하면 (생리휴가 사용이) 자연스럽게 퍼질 수 있다. 이런 인식이 확산할 수 있도록 고용부 등 정부의 상위 관리자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마음 편히 생리휴가를 쓸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논의가 아프면 노동자 누구나 쉴 수 있는 제도 마련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동자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일터에선 산업재해 발생률이 낮고, 노동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가 증명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에선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 건강연구센터장은 “한국은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보장이 미흡한 가운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1953년 근로기준법과 함께 생리휴가가 도입됐던 것”이라며 “남녀를 가르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몸이 아플 때 병가를 쓰고 쉬면서 회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이재호 박고은 김윤주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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