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섹시한 남성 속옷은 없는 걸까? 이것은 욕망의 서열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남성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프랑스 란제리 브랜드가 패션 시장에 등장했다. 바로 CUM이라는 브랜드다. (CUM은 영어로 정액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게 분명한 이 세 글자, CUM이란 브랜드명은 사실 ‘Creative Underwear for Men(창의적인 남성 언더웨어)’의 약자다. 이 브랜드가 공략하려는 소비자는 분명하다. 남성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검정색 언더팬츠와 브리프 제품들이지만, 섬세하고 심지어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패턴이나 재미있는 디자인, 조잡한 농담 같은 건 없다. CUM은 ”강렬하고, 관능적이고, 고급스럽고, 두려움을 모르는” 브랜드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자신들의 제품이 ”미니멀리스트, 실키, 고품격”이라고 홍보한다. 제품 사이즈는 XS부터 XL까지 다양하다. 가격은 45~49유로 수준이다.

남성의 몸을 에로틱하게

CUM의 창업자인 소피 검벳은 ”남성 속옷치고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여성들은 이미 고급 란제리를 구입하기 위해서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브랜드는 기존 체계에 도전하고자 한다. 바로 남성의 몸을 에로틱하게 만드는 것이다.

브랜드에 대한 구상이 떠오른 건 몇 년 전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남자친구를 위해 섹시한 속옷을 선물하려다가 곧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남성을 위한 섹시한 속옷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남자친구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광 사각팬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건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문제다.” 그가 말했다. ”여성성(femininity)의 표현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남성에 관해서는 그런 대화가 훨씬 적다.” 그가 보기에 란제리는 성해방의 도구다. 그는 ”우리는 마침내 우리 여성들에게 이 힘의 대상을 돌려주었다”고 말했다. ”남성들도 그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다.”

물론 시중에는 CUM뿐만 아니라 다양한 남성을 위한 섹시 란제리 브랜드가 존재한다. 마리끌레르의 기사에 따르면 마이조조, 메나쥬리(MENAGERIÉ) 같은 여러 브랜드도 레이스나 실크, 새틴을 기반으로 섹시함을 강조하는 남성 란제리를 내놓아 성별 기준을 깨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존의 ‘마네킹’처럼 완벽한 몸매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더욱 다양한 신체의 섹시함을 포용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남성, 섹슈얼리티의 주체

영국 역사학자 숀 콜에 따르면, ”여성의 속옷과 달리 남성의 속옷은 항상 위생과 보호의 용도로 선택되어 왔다. 여성의 속옷과 똑같은 관심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게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프랑스 파리의 마레지구에서 볼 수 있는, 근육질의 남성이 화려한 란제리를 입고 있는 가게들은 그런 주장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엉덩이를 드러내기도 하고, 속옷에 각종 스트랩이 달려 있기도 하다.

성행태학 역사학자 겸 연구원인 실비 샤페론은 동성애자들의 경우, 오랫동안 이미지, 출판물에서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게이 남성의 몸을 에로틱하게 표현해왔던 역사적 언급들의 혜택을 누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성애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남자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섹슈얼리티의 주체로 간주된다.” 그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반면 역사적으로 여성은 남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역할에 갇혀왔다. 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형성한 것은 이 근본적인 비대칭이다.” 여성은 ‘섹시함을 강조’하기 위한 란제리를 입는다는 개념이 익숙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했던 경험이 있을 테지만, 남자라면 이런 개념이나 경험이 적거나 아예 없을 확률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에로틱한 여성 문학의 예를 들었다. 여기서도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들이 갖는 욕망의 대상으로 표현된다.”

스폰지밥 팬티

저널리스트 겸 섹슈얼리티 팟캐스트 ‘크랙크랙(Crac Crac)’ 진행자인 르네 그루사드도 비슷한 의견이다. 여성이 남성의 몸을 응시하는 것은 종교적 교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교회에 따르면 펠라티오(남성 성기에 하는 오럴 섹스)나 남색 행위처럼 번식을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모든 건 가치가 없다. 도덕적으로, 여성은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남성의 몸을 에로틱하게 바라보는 건 부도덕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킨다고 교회나 사회는 가르친다. ”여성이 남자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때 흔히 눈이나 손이라고 말한다. 절대 그의 페니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뤼89’의 한 섹스칼럼니스트가 말했다. 반면 남성의 욕망은 억눌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에 대한 관심을 좀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이런 현상을 란제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루사드는 현재 파트너의 여행 가방에서 스폰지밥이 그려진 팬티를 발견한 적이 있다. ”정말 심난했다.” 그건 파트너의 전 여자친구가 선물한 속옷이었다. ”정말 놀라웠던 점이 뭐냐면 내가 전에 만났던 남자들에게 속옷을 선물 받았을 때는 항상 성적인 유희와 관련된 것이었다는 거다. 스폰지밥 팬티 같은 속옷은 절대 주지 않았다.”

욕망의 서열

네모난 스펀지 모양의 이 작은 캐릭터에는 그 어떤 에로틱한 느낌도 없다. 기껏해야 웃고 싶게 만든다. 이건 많은 것을 시사하는 함축적인 물건이다. ”웃긴게 뭐냐면, 그(파트너)가 남성의 몸을 둘러싼 일종의 당혹함을 나타냈다는 거다.” 그루사드가 말했다. ”우리 여성은 (남성의 몸을) 욕망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배워 왔다.”

만약 여성들이 그런 가르침을 깨고 공개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면, 남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그루사드는 자신이 그런 욕망을 드러냈을 때 예전에 만났던 남성이 겁을 줬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성이) 그렇게 하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욕망의 서열을 깨드리는 게 되어버리고, 남성은 약간 놀라게 된다. 자기의 지위를 상실하는 거다.” 그루사드가 말했다. 샤페론은 ”남성들은 결코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CUM이나 리한나의 란제리 브랜드는 최근 흑인 모델을 기용하거나 빅사이즈 모델 덱스터 메이필드를 기용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의 틀을 깨고 남성성, 욕망의 규범, 신체 표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건 ”새로운 남성성”을 주제로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들(@Tubandes, @nontoxic_masculinity)이나 언론인 빅투아 투이옹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The Balls(고환) on the Table’의 등장에서 보듯 남성들이 자문하기 시작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건 좋은 현상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남성의 영역이었던 것들을 문화적으로 깨드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샤페론이 말했다. ”성 혁명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남성의 몸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그때부터 분출됐어야 했다.”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바깥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여전히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이는 단지 청년들에게 에로틱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모든 형태의 욕망을 가질 수 있고, (남성이나 여성의) 욕망이 (젠더 관념에 따라) 너무 좁은 영역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2014년,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나자트 발로 벨카셈은 성차별주의와 젠더 고정관념에 맞서는 학교 교육 프로그램인 ‘평등의 ABCD’를 소개했지만 반발이 너무 커서 결국 철회되어야만 했다. 샤페론은 ”젠더 관념을 해방시키려는 시도가 (대중의) 공포를 자아낸 것을 보면, 우리는 기숙사를 아직 떠나지 못한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 기숙사의 직원이 교육을 받았거나 변화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바지 속에 입고 있었던 속옷처럼 말이다.

*허프포스트 프랑스판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