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8년 08월 10일 10시 10분 KST

20대 대학생들이 유명 '아재 맛집'만 찾아다니는 특별한 이유

250곳 정도 목록이 있다.

한겨레
초원복집연구회 제작진이 지난달 27일 고려대 중앙광장 ’씨씨엘’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서동권, 이승주, 홍준혁, 이승렬, 장윤서씨. 

“‘우리가 남이가’ 한국 정치를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1992년 12월 11일,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당시 대선은....”

지난해 10월 1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초원복집연구회를 시작하며’라는 글의 일부다. 그날 이후 ‘초원복집 연구회’ 페이지에는 ‘김영삼 서거 2주기-칼국수 대통령의 칼국수’, ‘단합의 러브샷과 청년 곱창타운’, ‘그날,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으로 자본주의를 맛보았네: 데탕트와 맥도날드 그리고 웃음’ 등의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왔다. 올 4월에는 ‘이명박의 대선광고 국밥집’, 5월에는 ‘남북정상회담과 평양냉면’, 6월에는 투표 독려 영상 ‘지방선거를 앞둔 그대에게’ 등의 영상이 공유됐다. 찾아보니 글과 영상을 올린 주인공은 고려대생들이었다.

지난달 27일 고려대 중앙광장 지하에서 ‘초원복집연구회’ 제작팀 5명을 만났다. 영상팀 이승렬(26)·홍준혁(25)·장윤서(23)씨와 출연진 서동권(28)씨, 집필과 출연진을 겸하고 있는 이승주(25)씨가 그들이다.

초원복집사건은 26년 전 일이다. 이들이 태어나기 전이거나 가장 나이가 많은 팀원이 두 살 때였다. 어떻게 알고 시작했을까?

맨처음 연구회 아이디어를 낸 이는 경제학과를 다니는 승주씨다. 이렇게 말했다. “고교 시절 <한겨레>를 읽다가 초원복집사건을 알게 되었죠. 어릴 때부터 역사, 정치사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에 들어가 2016년 최순실 태블릿 피시 사건과 촛불혁명 등을 보면서 현실정치와 사회 분위기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어요. 그에 맞춰 사람들이 정치에 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죠. 그러다 정치인들이 여러 이유와 목적으로 방문한 식당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에 지난해 5월부터 꾸준히 식당 목록을 만들었고 어느 정도 자료가 쌓인 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10월에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글을 올렸어요.” 

승렬(미디어학부)씨는 “주변의 선배나 친구들은 ‘친구들끼리 정치 이야기 하지 마라’라고 자주 조언한다. 친구랑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싸우게 된다는 뜻이니 아예 꺼내지도 말라는 거다. 그러면 밥이나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안하다 보니 결국 각자 인터넷으로 파고들게 되고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싫은 것은 외면하게 된다. 자기 주장과 의견만 굳어지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게 된다. 이런 것이 우리 사회의 단절, 수많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출발했다. 정치 이야기를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대놓고 하자. 밥 먹으며 술 먹으며 하자. 그래서 맛집을 끌고 왔다”라고 말했다. 구성원이 다 대학생이니 글의 내용이나 방식, 영상의 접근방식 등이 발랄하다. 20대들에게 정치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하자는 취지와도 맞아 떨어진다. 이들은 정치는 우리 일상과 크게 떨어진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이명박의 대선광고 국밥집’ 영상을 보면 실제 대선광고를 찍었던 서울 낙원동 식당을 찾아간 출연진 세 명이 국밥과 머리고기를 먹으며 각본 없이 수다를 떤다. “야 이거 진짜 가성비 좋다. 대박, 그런데 엠비(MB)는 모닝빵과 두유를 먹는다잖아. 지금 이 국밥이 얼마나 먹고 싶을까? 난 그때 중학교 1학년이고 막 중2병이 시작될 무렵이었지. 난 그때 이명박 지지했거든. (웃음) 부모님이 투표를 안 한다잖아. 그런데 다스는 뭐지?” 

초원복집연구회 제작진이 만든 ‘엠비 국밥집’ 탐사편.

이들의 글과 영상은 결론을 내리거나 진영논리에 붙들리지 않는다. 다양한 시각에서 더 많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게 목적이란다. 앞으로 어떤 정치 맛집이 등장할까. 이들은 “현재 250군데 정도 목록이 있다. 김기춘이 자주 갔던 삼계탕집, 이재명이 많이 가는 국숫집, 최순실이 태블릿 셀카를 찍었을 때 배경으로 찍힌 중국집 등이다. 당장 이번 주말 쯤엔 후어궈 집에서 찍은 영상 ‘그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초원복집연구회] #3 제주난민편’이 올라갈 것이다”라고 했다.

연구회의 중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는 국회의원 300명과 한 번씩 밥을 같이 먹어보는 것이다. “300명 중에 언론에 주로 등장하는 의원은 채 30명 정도이죠. 나머지 270명도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다는데 그들의 활동을 알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요. 그동안 한국사회의 정치는 진영논리에 갇혀 소비되어 왔기에 소수의 정치인만 알려졌어요. 그만큼 일반 국민과 멀어졌죠. 지난번 지방선거 때 공보물을 유심히 봤더라면 자기 지역구, 자기 고향에 어떤 현안이 있고 그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어느 후보가 어떻게 주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정치는 우리 곁에 있어요. 일상 속에 정치가 있고, 정치 속에 일상이 있어요. 정치와 일상의 괴리를 좁혀보자는 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연구회 회원들의 일치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