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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이 총으로 아이들과 나의 새 애인을 쏜 뒤 자살했다

지난주, 텍사스에서는 2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여성이 겪은 참사는 언론에 보도되지도 못했다.

아만다 페인터 
아만다 페인터  ⓒMEI-CHUN JAU FOR HUFFPOST

아만타 페인터(29)는 낯선 아파트의 식탁 앞에 앉아있다. 아만다는 터무니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자신의 세 자녀가 죽었는데, 철야 기도회에 입고 갈 옷이 없다.

옷은 집에 있지만, 그녀의 집은 이제 범죄 현장이 되어 있다.

아이들이 살해당한 지 100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만다는 월마트를 돌아다니고 있다. 목에 난 총상은 거즈 붕대로 가렸다. 적절한 보라색 셔츠를 찾아냈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다. 월마트에서 웃으며 노는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보게 될 줄은 몰랐다. 8년 동안 아만다는 “엄마”라는 부름에 응해왔다. 오딘(8), 케이던스(6), 드레이크(4). 그러나 아이들은 이제 없다. 눈을 감을 때마다 아이들이 돌아온다. 깜빡이기만 해도 떠오른다.

아만다의 전 남편 저스틴 페인터(39)가 텍사스주 폰더에 있는 그녀의 집에 찾아와, 남자친구 세스 리처드슨(29)과 세 자녀를 쏴 죽이고 자살했다. 저스틴은 아만다에게 ‘너를 살려두는 이유는 고통을 떠안고 살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생각할 수도 없는 비극이었다.

이틀 뒤 5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생각할 수도 없는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났다. 산타페에서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총기 난사(mass shooting)는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가리킨다. 두 사건 모두 총기 난사였으며, 텍사스주에서 일어났다.

텍사스주만큼 총기 난사 문제가 심각한 곳도 없다. 2009년 이후 텍사스주에서는 20건의 총기 난사가 일어났는데, 다른 어떤 주보다 많다. 이중 65%는 아만다의 경우처럼 남성이 연인(전 연인 포함)이나 가족을 살해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이야기만 접했을 뿐, 아만다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MEI-CHUN JAU FOR HUFFPOST

허프포스트가 아만다를 인터뷰했을 때, 아만다는 막 퇴원하여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뒤였다. 가정 폭력 단체 ‘Friends of the Family’ 덴튼 카운티 지부가 제공한 집이었다. 활동가들은 아파트에 먹기 편한 음식, 꽃, 입욕제, 세면용품을 채워놓았고, 거울에는 힘을 주는 메시지들을 써두었다. “우리가 당신 곁에 있다!” 누군가 화이트보드 마커로 써둔 글이다. “여기는 치유하며 안전함을 느끼는 곳이다.”

아만다의 고통은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움찔거리며 천천히 아파트 안을 돌아다녔다.

그 날 아침 전 남편이 나타났을 때 그녀는 남자친구 세스와 함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세스는 그녀의 등에 배를 대고 한쪽 팔로 그녀를 안고 있었다. 저스틴은 들어와서 세스의 머리를 쐈다. 총알이 세스의 몸을 관통해 아만다에게도 맞았다. 목뼈에 금이 가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러나, 감정적 고통에 비하면 육체적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대화를 나누는 아만다는 1~2분 정도 차분해 보이지만, 곧 비통함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삶은 언제나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 삶이 더 나빠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나아갈 것이다.”

모두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이제 그녀가 가질 수 없다.

“나의 아이들은 죽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겼다.”

 

관계

 

아만다는 17세 때 온라인에서 저스틴을 만났다. 두 사람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했다. 그녀의 유저네임은 아마렐라, 그는 토라크였다. 아만다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 저스틴은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살았다. 그들은 1년 동안 인터넷으로 채팅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만다의 이야기는 복잡했다. 어머니는 마약 중독으로 고생했고, 아만다와 쌍둥이 자매 애슐리는 어렸을 때 자주 이사를 다니며 전학을 가곤 했다.

그녀에게 있어 저스틴은 새로운 시작의 기회였다. 저스틴은 그녀보다 10살 많았고 오클라호마주의 월마트 유통 센터에서 일했다. 아만다가 19세 때, 그는 버지니아로 차를 몰고 와서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실제로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클라호마에 도착하자 저스틴은 그녀가 집에 있으며 게임만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고 아만다는 회상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감옥 같은 생활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가족을 만나러 버지니아로 돌아갈 계획을 짰다. 그리고, 버지니아에 갔다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스틴과의 관계에 대해 이미 우려가 들었지만, 싱글 맘이 되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녀는 빈곤 속에서 자라났다. 자기 아기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던 그녀는 오클라호마의 저스틴에게 돌아갔다. 아들 오딘이 2009년 태어났다. 케이던스는 2012년에 태어났다. 저스틴의 가족과 가까운 텍사스로 이사했다. 그리고 2013년에 드레이크가 태어났다.

9년 동안 함께 하며, 저스틴이 아만다를 육체적으로 학대한 적은 없었지만 가끔은 그가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는 화가 나면 텔레비전 리모컨, 컴퓨터 의자 등을 집어 던졌다. 그는 통제하려 했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 그랬다. 케이던스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만다에게 직불 카드도 주지 않았다. 그 전에는 기저귀, 우유, 차 기름값 등 필요한 것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현금을 달라고 해야 했다.

아만다는 우울함을 자주 느꼈다. 가끔 저스틴에게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그는 ‘너 없이는 못 산다’며 함께 있어달라고 애걸했다.

그녀가 떠나면 아이를 잃게 될 거라고 위협한 적도 있다고 했다.

“육체적 폭력이 별로 없었던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Friends of the Family’ 덴튼 카운티지부의 법률 담당 도나 블룸의 말이다. 블룸은 사건 이후 며칠 동안 아만다와 함께 있었던 활동가들 중 하나다. 블룸에 의하면, 육체적 폭력은 파트너를 조종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아만다는 상당히 순응적인 사람이라, 육체적 폭력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목적은 통제권을 갖는 것이었고, 다른 도구들을 쓸 수 있었다.”

ⓒMEI-CHUN JAU FOR HUFFPOST

별거와 총

 

작년에 아만다는 마침내 저스틴을 떠나기로 했다. 28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새로운 직장이 생겨 자립심이 커짐을 느꼈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살림까지 챙기려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만다의 말이다.

2017년 4월 21일, 그녀는 저스틴에게 별거하고 싶으며 친구와 동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날 밤 두 사람은 함께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저스틴은 침대에 없었다. 다른 방에서 울고 있었다. 저스틴은 ‘총을 꺼내 장전한 다음 자살하려 했다’고 아만다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안전 때문에 겁이 난 아만다는 당장 떠나기로 결심했다. 저스틴은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릎으로 평면 텔레비전을 부쉈다. 아만다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운 다음 총을 가지러 집에 다시 들어갔다. 총은 장전돼 있었다. 그녀는 트렁크에 총을 넣었다.

“그가 자살할까 봐 걱정되어 총을 가져왔다.” 아만다의 말이다.

걱정했던 사람은 아만다만이 아니었다. 허프포스트가 입수한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저스틴의 양부가 그 날 오전 911에 전화해 저스틴이 괜찮은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앰뷸런스가 출동했다. 경찰은 저스틴이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허프포스트에 확인해 주었다.

저스틴이 병원 치료를 받는 동안 아만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나갔다. 저스틴이 퇴원한 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돌봤다. 아만다의 양로원 근무 일정이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육아에는 저스틴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작년 여름 저스틴이 이혼을 신청했고, 아만다는 놀랐다. 저스틴은 양육권을 얻기 위해 싸웠고 승리했다.

“나는 돈이 전혀 없었다.” 아만다의 말이다. 아만다는 변호사도 없이 법정에 나갔다.

아만다는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방문권을 얻었다. 한동안은 괜찮았다고 한다. 그들의 관계는 원만해졌다. 가끔 저스틴이 와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이것저것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논쟁거리가 있었다. 총이었다.

올해 초에 저스틴의 가족이 아만다에게 총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아만다는 돌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저스틴은 아만다가 총을 훔친 거나 다름없으니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저스틴의 가족에게 주었다. 아만다는 그 후 가족들이 저스틴에게 총을 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저스틴이 아이들을 죽일 때 쓴 총이 바로 그 총이었기 때문이다. 저스틴의 가족은 허프포스트의 인터뷰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사건

 

15일 저녁, 아만다와 저스틴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자를 먹으러 갔다. 차에서 아만다는 저스틴에게 새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진지하게 만나고 있으며, 동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몇 달 전부터 아만다는 십대 때부터 알았던 세스 리처드슨과 장거리 연애를 해왔다. 그들 역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만났고, 십 년 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리에겐 절대 사라지지 않는 유대가 있었다. 함께 있을 때면, 너무나 확신이 들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살던 세스는 최근 아만다 때문에 텍사스로 이사했다. 그들은 함께 가정을 꾸리길 바랐다. 아만다가 저스틴에게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세스는 이미 19시간 동안 차를 몰며 텍사스로 오는 중이었다.

저스틴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별거한 지 1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재결합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가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나는 달라지려 노력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변덕스럽게 운전하기 시작하며, 그녀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녀의 집에 돌아오자,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일 수 있게 해달라’고 그에게 빌어야 했다. 식사 후 그의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만다와 아이들은 그녀의 침대에서 피자를 먹으며 ‘아틀란티스’를 보았다. 오딘과 케이던스는 페퍼로니 피자, 드레이크는 블랙 올리브와 소시지, 버섯 피자, 아만다는 양파 피자를 먹었다. 껴안고 놀았다. 식사 후 아만다는 차로 아이들을 저스틴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굿나잇 키스를 해주었다. 아만다는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집에 돌아간 아만다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경, 세스가 전화했다. 마침내 그녀의 집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지조차 않았다. 전화를 침대 위에 던지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를 끌어안고 그의 목에 입 맞추고 마냥 껴안았다. 그가 와서 너무나 신이 났다. 우리의 인생이 새로 시작될 거라는 의미였다.”

세스는 운전을 오래 해서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곧 침대에서 잠들었다. 그들은 오래 쉬지 못했다. 오전 8시경, 아만다는 머리 옆에서 큰 소리가 나서 깼다.

그녀가 이제껏 들어본 어떤 소리와도 달랐다. 등이 타는 듯 아팠다. 귀가 울렸고 혼란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폭음이 몇 번 더 들렸다.

“세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세스!”

찰나가 지나갔다. 몇 초였을까? 몇 분이었을까? 아만다는 시간 감각을 잃었다. 문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스틴이었다.

“세스는 죽었어. 아이들은 죽었어. 넌 그걸 떠안고 살아가야 할 거야.” 저스틴의 말이었다.

저스틴은 아만다 앞에서 자살했다.

아만다는 간신히 돌아누웠다. 총에 맞은 세스가 옆에 누워있는 게 보였다.

아만다는 전화를 집어 들고 비틀비틀 거실로 나와 911에 신고했다. 아이들에 대한 저스틴의 이야기는 그녀를 겁주기 위한 거짓말이길 바랐다. 그런데 신발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작은 다리. 가까이 가보니 세 아이 모두 총에 맞아 죽어 있는 게 보였다.

이웃들은 16일 아침 저스틴이 아이들을 데리고 아만다의 집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아만다는 주저앉아 버렸다.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을 안아 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고통으로 내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 역시 총에 맞았다. 저스틴은 아만다를 안고 잠들어 있던 세스를 쏘았고, 세스의 몸을 관통한 총알이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갔다.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갈 구급차가 왔지만 그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여성 경찰은 아이들을 죽인 아버지와 같은 차에 아이들을 태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병원에서 아만다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영상들을 올렸다. 이를 공유하고 싶다는 절박한 욕구를 느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통함을 털어놓고 알아봐 주길 원했다. 하지만 역효과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을 남겼다고 했다.

왜? 아만다가 저스틴을 떠났으니까.

ⓒMEI-CHUN JAU FOR HUFFPOST

추모

 

포트 워스의 파크뷰 초등학교. 맑게 갠 저녁이었다. 오딘은 2학년, 케이던스는 유치원생이었다. 4살인 드레이크는 어린이집에 다녔지만, 더 자라서 누나와 형과 같은 학교에 다닐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100명 정도의 조문객이 모였다. 부모들은 아이를 꼭 안았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 숨죽여 우는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했다. 사람들이 학교 앞에 곰 인형과 꽃다발 등을 두고 갔다.

아만다는 뒤쪽 벤치에 자리 잡았다. 그녀의 쌍둥이 자매가 옆에 붙어 앉았다.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따금 흐느꼈다. 학생들이 하나씩 마이크 앞으로 가서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오딘의 사물함이 내 사물함 위에 있어서, 언제나 사물함 문으로 내 머리를 치곤 했다.”

“쉬는 시간에 케이던스와 같이 놀았다.”

“내가 혼자 벤치에 앉아있을 때면 늘 오딘이 와서 같이 놀고 싶은지 물었다.”

“오딘은 늘 즐거웠다.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미소 짓고 있었다.”

행사 후에 아이들에게 헬륨 풍선을 나누어 주었다. 풍선에 메시지를 써서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도록 했다. 아만다 옆에서 풍선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아만다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울면서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총소리와 너무도 비슷했다.

풍선이 떠올라 밤 하늘 속으로 사라지자 아만다가 돌아왔다.

아만다는 흰 촛불을 들고 사람들과 함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끼리 모여 차로 걸어갔다.

아만다는 혼자 서 있었다. 아이들이 아만다에게 하나둘씩 모여들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만다의 다리를 껴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들은 아만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 허프포스트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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