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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 휘발유] 남희석의 김구라 방송태도 지적을 온라인 여론전으로 키운 건 언론이다

언론이 소모적 논쟁을 키워 건설적 비판의 기회를 날린 또 하나의 사례다.

  • 라효진
  • 입력 2020.08.03 16:57
  • 수정 2020.10.16 13:28

 

 

방송인 남희석, 김구라
방송인 남희석, 김구라 ⓒ뉴스1

방송인 남희석이 페이스북에서 후배 김구라가 MBC ‘라디오스타‘에서 보인 방송 태도를 지적했다. 금세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차트로 반응이 왔다. ‘남희석‘, ‘김구라‘, ‘남희석 김구라’ 등의 관련 키워드가 차트를 장악하는 사이 남희석이 한 차례 해명을 하고,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제작진도 ‘우리 김구라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공식입장을 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사흘 동안 두 사람의 이야기가 뜨겁자 엉뚱한 이름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먼저 방송인 홍석천이 도마 위에 올랐다. 5년 전 KBS 2TV ‘1대100’에서 남희석을 두고 한 발언 때문이었다. 당시 홍석천은 ‘과거 남희석 때문에 개그맨을 그만 뒀다’는 식의 말을 했다. 그 진위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홍석천은 ”지금은 (남희석과) 절친이 됐다”는 마무리로 해당 발언이 흔한 방송용 화제였음을 시사했다. 같은 날 그가 ‘배우 김우빈이 데뷔하기 전 진로 조언을 했다’며 자신의 눈썰미를 자랑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격의 이야기다.

5년 전 방송까지 기어코 거슬러 올라간 결과, 언론은 ‘남희석이 김구라 태도를 지적할 입장은 아니다‘라는 모종의 어젠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홍석천이 <김구라 또 저격한 남희석…홍석천 ”나는 南에게 찍혀 개그계 떠났다”>는 기사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자극적으로 포장됐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아예 새로운 일은 아니다. 포털 사이트가 ‘갑’이 된 후 언론사들이 선택한 손쉬운 생존 방식이 바로 ‘어뷰징’이라 불리는 실시간 검색어 기반 기사 작성이었다. 아침 토크쇼에 왕년의 스타가 출연해 검색어 차트에 오르면 그날은 그의 과거사가 굴비 엮듯 딸려 나온다.

그래서 소위 ‘연어질(화제 인물의 과거 행적 등을 무한 검색해 정보를 얻는 행동)‘로 작성하는 ‘검색어 기사‘에 뉴스의 가치가 없냐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당장 김구라만 해도 정상에 오르기 전 인터넷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수 이효리, 방송인 하리수, 배우 신애 같은 여성들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희롱했던 과거가 드러나 뭇매를 맞았은 전력이 있다. 방송인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으로 구성된 개그 그룹 옹달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팟캐스트 방송에서 여성을 자위기구나 성기로 표현하며 욕설과 상황극을 하거나,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야”라는 같은 시시껍절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대중에 각인시켰다. 이 같은 여론 조성 덕에 적어도 ‘말 조심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방송인 남희석이 동료 김구라의 방송 태도를 지적하자 홍석천, 강예빈, 최국 등이 끌려 나오고 있다.
방송인 남희석이 동료 김구라의 방송 태도를 지적하자 홍석천, 강예빈, 최국 등이 끌려 나오고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그러나 남희석-김구라 사건에 있어 언론이 쏟아낸 ‘검색어 기사’는 건설적 비판의 기회를 날린 저열한 방식이었다. 남희석이 김구라를 겨냥하자 별안간 남희석의 과거 발언들을 샅샅이 찾아내 ‘자격론‘을 들고 나왔다. 남희석의 문제 제기 방식이 거칠었던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언론이 나서서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건 사실상 ‘행패’다. 차라리 김구라 본인이 남희석에게 ”당신이 그런 말 할 자격 있냐”고 분통을 터뜨린다면 이해가 될 수준이다.

여기에 동료들이 과거 남희석과 김구라에 대해 했던 말들을 불쏘시개 삼아 판을 키우며 이 모든 걸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는 만능의 문장으로 얼버무리는 방식은 언론으로서의 책임을 내려 놓은 것과 다름 없다. 남희석이 과거 인스타그램 댓글로 배우 강예빈을 성희롱했다면 그 사실만으로 비판받기에 충분한 건 맞다. 다만 이번 김구라 겨냥 사건과 강예빈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강예빈이야말로 언론이 판을 짠 ‘누가 더 착하고 누가 더 나쁜가’ 싸움에 괜히 거론돼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피해자다.

이 무의미한 일회성 여론전으로 눈 앞의 이익을 보는 건 언론사 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이런 사건들이 중첩되다 보면 언론은 이미 잃어버린 신뢰도를 마이너스로 만들고 말 것이다.

언론사의 지상과제는 독자 확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기사의 클릭수를 최대한 뽑아내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 조회수가 잘 안 나온다고 해도 그날 장사를 공치는 수준에서 끝난다면 좋으련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매체 영향력은 줄고, 그러다 보면 광고가 줄고, 회사가 가난해지고, 임시방편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구해 질 낮은 기사를 쏟아내고, 기자는 ‘기레기‘나 ‘기더기’로 전락하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악순환만 거듭될 따름이다.

모든 업계가 ‘숫자 권력’에 지배당하고 있지만, 언론의 경우는 그 악영향이 상품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숫자 권력‘이 신문과 잡지 발행 부수, TV 시청률 등으로 분산됐다면 이제는 ‘조회수’ 하나를 보고 전 매체가 경쟁한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언론은 ‘악마의 수’로 대응했다. 정보와 통찰을 전달하는 것보단 독자들을 싸움 붙이는 게 조회수에 도움이 된다.

홍석천, 강예빈, 최국 등등은 물론이고 남희석과 김구라도 결국은 이 판의 희생자다. 대중은 김구라로 대표되는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방송 캐릭터를 비판해 볼 여지를 얻는 대신 소모적 논쟁에 가담하게 됐다. 요 며칠 온라인을 ‘남희석 vs 김구라’로 분열한 언론은 그 책임을 애써 외면한 채 또 다른 싸움거리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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