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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5일 12시 38분 KST

여성들이 정해인과 박보검에게 열광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

"자기가 짐승남인 줄 알고, 그냥 '짐승'처럼 구는 남자들이 좀 많았어야 말이지"

JTBC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가끔 사석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요새 인기 있는 ○○○의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직업인들의 숙명일 것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한테는 요새 주목할 만한 주식이 뭐가 있는지 물어보고, 변호사한테는 자기가 가진 법률적 고민 물어보고, 하다못해 만화가에게는 만화 한 장만 그려달라고 하듯이, 티브이 칼럼니스트한테는 칼럼으로 쓸 법한 주제에 대해 물어보는 거다. 직업인들이 원래대로라면 돈 받고 하는 일을, 마침 사석에서 만난 김에 재미 삼아 한번 해보라고 부탁하는 일.

그날도 그랬다. “요새 어딜 가든 정해인, 정해인 하잖아요. ‘효리네 민박2’의 박보검도 장난 아니고.” 그다음 질문이 무언지 대강 짐작했던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날의 질문은 좀 달랐다. 결론은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인기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묻는 것이었지만, 그 결론에 도착하기 전에 한 굽이 꺾어가는 지점이 있었던 것이다. “저는 사실 그 두 사람이 전혀 취향이 아니거든요?”

어라, 이 질문은 진행이 좀 흥미로운데? 가만히 들으려 하니, 그 자리에 동석했던 다른 이들도 조심스레 입을 연다. “어, 나도…”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공교롭게도 그날 따라 그 테이블에 모인 이들은 대체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정해인과 박보검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환호에 동참하지 못해 속으로 ‘나만 이상한가’ 생각하던 그 테이블의 사람들은, 조심스레 내게 다른 어디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 주변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요. 이유가 뭘까요?”

이해는 간다. 정해인도 박보검도 보기 드물게 잘생긴 사람들이지만, 이때까지 한국 사회에서 사랑받았던 남자 연예인들치곤 그 외모가 단정하다. 차승원처럼 압도적인 수컷의 향기를 과시하지도, 김남길이나 소지섭처럼 상처 입은 육식동물 같은 처연함을 보여주지도, 정우성이나 이정재처럼 그리스 조각상 같은 외곽을 갖추지도 않았다. 마치 훠궈와 마라탕에 익숙한 이들에게 갑자기 간이 담백한 맑은 국물 두부전골을 내밀면 당혹스러운 것처럼, 그 테이블 사람들에겐 자기 주장이 뚜렷한 외모의 남자 연예인들 틈바구니에서 은은하고 담백한 매력의 정해인과 박보검을 보는 마음이 그랬던 것이다. 말간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 웃을 때 매력적인 입꼬리를 지닌 두 남자의 담백한 매력은, 그보다 더 선명한 외모를 지닌 남자들을 좋아하던 이들에겐 다소 싱겁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

대중문화가 포장해온 왜곡된 남성성

오늘날 정해인과 박보검에게 쏟아지는 열광의 가장 큰 부분은 아마 “무해해 보인다”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 깜빡이도 없이 들어와 사랑한답시고 손목을 낚아채며 자기 멋대로 굴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내 의사를 존중하며 날 지켜봐줄 것 같은 사람. 마치 티브이엔 ‘응답하라 1988’의 택이가 그랬던 것처럼, 제이티비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준희가 그러는 것처럼. 최소한 대놓고 유해해 보이는 구석은 없는 안전한 남자라는 인상과, 잘생긴 남성이라는 이상 사이의 최소한의 타협점, 그 지점이 지금의 정해인과 박보검을 향한 열광의 이유이리라. 그날 내 설명을 들은 이 중 한 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짐승남이 좋다고 하면 자기가 짐승남이라 착각하고 그냥 짐승처럼 구는 인간들이 좀 많았어야 말이지.”

뉴스1

그동안 한국 대중문화가 선보여왔던 남성성이라는 게 참 그랬다. 스킨십을 할 때 굳이 상대의 의사 따위 묻지 않고 확 끌어당기는 면모 같은 것들을 ‘상남자의 박력’으로 수식하고, 비가 오는 날 밤 우두커니 상대 여성 집 앞에 서서 불 켜진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스토킹을 ‘남자의 순정’으로 포장해온 관습은, 솔직히 남성들의 단점을 어떻게든 장점이라고 우기는 것 아니었나? 그랬으니 툭하면 손목을 낚아채고, 벽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상대 여성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기습 키스를 하고, 상대가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질투하는 광의의 데이트 폭력이 로맨스물의 소재로 오래오래 활용됐던 것이다.

심지어 이런 면모가 ‘사랑하는 마음을 어찌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튀어나온 서툰 남자의 순수함’으로 포장이 되는 동안, 여자의 마음을 잘 읽으려 노력하고 상냥하게 구는 남자는 ‘이 여자 저 여자 다 겪어 봐서 이렇게 능숙할 수 있는 선수’로 몰리며 ‘너무 능숙한 선수보단 서툴지만 우직하고 순수한 남자가 더 좋다’는 식의 ‘서툰 남자 신화’가 오래 지속됐다. 울고 있는 상대를 위로한답시고 “나랑 밥 먹을래, 아님 나랑 죽을래?”(한국방송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버럭버럭 고성을 지르는 장면이 멜로 드라마의 명장면이랍시고 인구에 회자되어온 세월이 얼마나 길었나. 하지만 그처럼 제 진심을 표현한답시고 목숨을 거는 남자들의 대사를 애교로 넘어가주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자기랑 안 만나준다고 여자를 죽이는 남자들의 소식이 뉴스 사회면에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도 그 판타지를 계속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도 잘생긴 사람이 하면 좋아할 거면서! 결국은 뭐니 뭐니 해도 얼굴 보는 거 아냐?”라고 묻는다. 마치 그게 엄청 날카로운 일침이기라도 한 양. 하지만 생각해보라. 첫째, 사람들이 다시 꺼내어 문제 삼고 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대사는 소지섭의 대사였다. 설마하니 사람들이 소지섭이 잘생긴 걸 몰라서 그 대사를 새삼 다시 문제 삼고 있을까? 둘째, 잘생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느낄 불쾌함이 다소 경감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자기 자신을 깔끔하게 잘 가꾸고 돌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똑같이 멋대로 손목을 낚아채는 불쾌함이라고 해도, 화장실 다녀와서 손도 안 씻고 나올 것처럼 구는 사람이 낚아채는 것보다는 그나마 규칙적인 세안과 세수를 한 흔적이 보이는 사람이 낚아채는 게 조금이라도 덜 불쾌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잘생기면 멋대로 손목을 낚아채도 좋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단점을 장점으로 포장하지 마

한국의 미디어가 이처럼 남자의 단점을 장점인 양 포장해서 유통시킨 것의 제일 최신 버전은 아마 ‘아재 열풍’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티브이와 잡지, 신문 따위에서 ‘아재파탈’이니 ‘아재 전성시대’ 같은 이야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전국의 아재들이 갑작스레 근거 없는 자신감을 온몸에 두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젊은 시절 지녔던 육체의 긴장감이나 자신의 소신 같은 덕목들을 나이 먹어서도 단단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좋다는 이야기지, 세월의 풍파를 핑계로 육체와 정신의 태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사람들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최근 일본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이적한 전 ‘뽀빠이’ 편집장 기노시타 다카히로처럼, 나이 먹고도 자세가 흐트러지기는커녕 더 단정하고 깔끔한 모양새를 보여주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극히 예외적인 몇몇에 대한 경탄을, 그냥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 모두에 대한 열광인 것처럼 포장해왔으니 자꾸 티브이엔(tvN) ‘나의 아저씨’ 같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난들을 보라. 자신도 이제 40대인데 드라마 덕분에 20대 아가씨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이상한 댓글들이 춤을 춘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최소한 나에게 해는 끼치지 않을 것 같은 단정하고 깔끔한 남자들에게 그나마 눈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건지도 모른다. 폭력과 로맨스를 헷갈리지 않을 것 같은 남자, 대화와 맨스플레인을 혼동하지 않고 내 의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 것 같은 무해한 남자. 지금 정해인과 박보검에게 쏟아지는 열광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용인해왔던 남성상에 대한 경고등인 건지도 모른다. 제발 단점을 장점인 것처럼 포장해 파는 일 좀 그만두라는 마지막 경고 말이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