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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17일 15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3월 17일 15시 49분 KST

“겁에 질려 도주하자 무의식적으로 총 쐈다" : 5·18 계엄군이 유족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가해자가 자신이 발포한 사실로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1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와 고(故) 박병현씨 유족이 사과와 용서의 포옹을 나누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을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16일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사망케한 계엄군과 그 유가족 간 사과와 용서의 자리가 마련됐다.

그간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이 자신이 목격한 사건을 증언한 경우는 더러 있었으나, 가해자가 자신이 직접 발포해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며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가해자 A씨는 조사위에 자신의 사살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조사위는 유족에게 용서 의사를 물었고 유족이 이를 수용해 자리가 마련됐다

A씨는 80년 당시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다. 5월 23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순찰하던 중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인 보성으로 이동하던 고(故) 박병현씨(당시 25세)를 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광주 외곽을 차단할 목적으로 1개 중대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박병현씨와 마주쳤다”며 “박씨가 저희를 보고 도망가기에 ‘도망가면 쏜다’고 경고했지만, 그가 겁에 질려 도주하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사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박병현씨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다.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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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가 오월영령에 묵념하고 있다.

 

유족 “늦게라도 사과해줘서 고맙다”

이날 국립5·18민주묘지 접견실에 마련된 만남의 자리에서 A씨는 박병현씨의 유가족에게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참을 오열하던 그는 “지난 4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이제라도 유가족을 만나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하며 유가족에게 큰절을 올렸다.

박병현씨의 형인 박종수씨(73)는 “늦게라도 사과해줘서 고맙다”며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용기있게 나서줘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며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편히 살아달라”고 말하며 A씨를 껴안았다.

조사위는 활동을 통해 A씨의 고백과 유사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조사위는 향후 계엄군과 희생자(유가족) 간 상호의사가 있는 경우 사과와 용서를 통한 과거사 치유, 국민통합 등을 적극 주선할 계획이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A씨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건강관리에도 힘써주길 바란다”며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A씨에 이어 이제라도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