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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리사와 사랑에 빠진 후 알게 된 것들

  • Andy Marra
  • 입력 2016.02.17 17:32
  • 수정 2016.02.17 19:01

올해 발렌타인 데이에 나는 혼자 있을 것이다. 커플들이 함께 로맨틱한 주말을 보내는 동안, 나는 밀린 일과 집안일을 하고, 혼자 먹을 저녁을 요리하고, 한국 드라마를 연달아 보고, 혼자 잠자리에 들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사랑의 날을 혼자 보냈다.

내가 싱글이냐고? 아니, 나는 요리사와 약혼했을 뿐이다.

내 약혼자 드류는 미국에 230만 명 정도 있는 라인 쿡 중 하나다. 그는 미국 요식업계에서 1년 중 가장 바쁜 날들 중 하나인 발렌타인 데이에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수많은 커플들을 위해, 발렌타인 데이 식사를 다시 한 번 로맨틱하고 기억에 남는 행사로 만들어 주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일할 것이다.

처음 약혼자를 만났을 때 그는 요리사가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그는 파크 애비뉴의 여러 금융 회사 중 한 곳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처음 문자를 주고 받았을 때부터 그는 안정적이고 벌이가 좋은 직장을 버리고 분주한 주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밝혔다.

나와 드류의 초기 데이트들은 음식이 중심이 되었다. 몇 번은 그가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그가 주방에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우리 관계의 초기부터 이야기했던 그의 열정이 나도 느껴졌다.

“너 타고났구나.” 데이브가 압력솥에서 부드러운 갈비찜을 꺼내 내 입에 살짝 넣어주자 나는 쾌감의 신음 소리를 냈다. 솥에는 몇 시간 동안 익으며 풍부하고 맛있는 향으로 집안을 따뜻하게 했던 소갈비, 당근, 감자가 들어 있었다. “넌 요리를 직업으로 삼아야 돼.”

“그렇게 생각해?” 그가 압력솥 뚜껑을 덮은 다음 물었다. 칭찬을 들은 그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우리의 관계가 진전하면서, 금융은 드류의 열정의 대상도, 그가 장기적으로 추구할 커리어도 아니라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는 무관심했고, 출근할 때 미적미적 걷곤 했고, 안주할 생각이 점점 없어졌다. 드류는 식사하러 갈 새 레스토랑을 찾는 일, 다음에 요리해 볼 음식을 계획하는 일에 더 집중했다.

몇 달 뒤, 어느 후텁지근한 8월 저녁에 드류와 나는 그가 살던 아파트에서 가까운 소호의 붐비는 국수 가게 켈리 & 핑에 갔다. 주문을 한 뒤 드류는 내게 이야기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나 회사 그만둘 거야.” 그는 플라스틱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다짐과 불안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나는 요리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

저녁을 먹는 내내 나는 드류에게 이 철저한 변화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요리 학교에 갈 거야? 오래 일하면서 훨씬 더 적은 돈을 버는 건 괜찮아? 새 방향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내 직업이 무엇인지는 내게 중요해. 내가 모르는 여러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주방에 있을 때면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나는 한 사람을 위해,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요리해.”

드류가 한 말을 듣자 여러 가지 밥과 국수를 먹는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곧 레스토랑에서 나와, 다시 자갈이 깔린 습한 소호의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지하철 역에 도착하기 전에 드류를 멈춰 세우고 마침내 내 생각을 말했다.

“넌 전직을 해야 돼. 네 열정을 추구해야 해. 네게 뭐가 필요하든 내가 응원할께.”

내 손을 잡는 드류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가 달라질 수도 있어.” 그가 천천히 인정했다. “넌 그건 괜찮아?”

그의 질문, 커리어의 변화가 우리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그가 입밖에 내지 않은 두려움에서 아이러니를 느꼈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나는 내 젠더 정체성이 남성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내 자신의 불안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드류는 내 삶에 들어와서 내 진정한 모습이 우리의 관계에 장애물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해주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여러 면 중 하나였다.

그가 내게 보여주었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을 보여줄 위치에 이제 내가 있었다. 나는 드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우린 방법을 찾아낼 거야. 함께.”

“좋아.” 그는 조금 안도한 것 같았다. “이 일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며칠 뒤 드류는 마침내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좀 고려해 본 뒤, 요리 학교에 들어가는 대신, 공짜로 일하며 새로운 퀴진과 테크닉을 배우는 견습생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한국인 입양아인 드류는 한국의 음식을 더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요리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한국 주막을 본뜬 한국 식당인 한잔에 문의했다. 우리는 함께 보낸 첫 발렌타인 데이를 한잔에서 보냈다.

드류는 불안해하며 김훈이 셰프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잔에서 견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경험이 없다는 것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랩탑을 닫은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장이 없을 거야.”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격려의 미소를 지었다. “최소한 일주일은 기다려 봐.”

그 일주일 동안, 경험이 없던 내 남자 친구는 김훈이 셰프에게서 한잔의 프렙 키친에서 견습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오징어 씻는 법, 통닭을 해체하는 법, 김치 담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계속 반복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해야 했지만, 드류는 누군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받아주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는 한잔에서 몇 달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울 결심이었다.

우연히 드류는 댄 클루거 셰프에게도 소개를 받았다. 당시 그는 ABC 키친과 ABC 코치나의 총 주방장이었다. 경험은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드류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를 수상한 ABC 키친 면접 제의를 받아 깜짝 놀랐다. 댄 셰프가 그 자리에서 드류를 채용했을 때는 더욱 놀랐다.

드류는 그 뒤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테크닉을 발휘한 요리로 알려진 와일리 뒤프렌 셰프, 뉴 노르딕 퀴진을 주도하는, 노마를 오픈한 셰프들 중 하나였던 매즈 레프룬드 밑에서도 요리를 했다.

금융업에 있을 때와는 달리, 드류는 얼른 일하러 가서 배우고 싶어서 아침마다 후다닥 일어났다. 12, 13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도, 다시 똑같이 요리할 수 있도록 자기 전에 몇 시간 동안 새 레시피와 요리책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나는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몰랐다. 드류는 하루 종일 푹푹 찌는 주방에서 일하고 끈적끈적한 몸으로 귀가했고, 그 날 준비한 재료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해물이나 새로 깐 마늘 냄새를 엄청 풍겼다. 그러나 곧 그의 손과 팔에 다양한 베인 상처, 덴 상처, 물집, 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는 날 밤늦게 집에 돌아온 드류는 내게 자랑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것 봐! 내 손 좀 봐!”

나는 화상을 입어 골프공 크기의 물집이 잡힌 그의 손을 보자마자 펄쩍 뛰었다. “맙소사!” 나는 놀라고 역겨워서 소리질렀다. “응급실에 가야겠네!”

“아까 이게 이만했을 때 봤어야 되는데.” 드류는 신이 나서 다치지 않은 손으로 손짓했다.

나는 드류의 얼굴과 부어오른 상처를 정신없이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아프지 않아? 심해 보여.”

“난 괜찮아.” 드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른 요리사들이 더 심하게 다치는 것도 봤는데, 다 그냥 계속 일해.”

나는 그의 느긋한 자세를 무시하며 따뜻하고 편안한 침대에서 서둘러 나왔다. “네 데인 손을 감쌀 것을 찾을 테니까 가만히 기다려.” 나는 복도 벽장 속 어딘가에 있는 빈약한 구급상자를 찾으러 달려갔다.

“내 말 믿어, 자기야. 주방에서 다치는 게 이게 마지막은 아닐 거야!” 그는 즐겁게 내게 외쳤다.

나는 어이가 없어 눈알을 굴렸다. “안심시켜줘서 고마워.” 나는 어지러운 벽장에서 구급상자를 찾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이후 우리는 그의 상처를 위한 1회용 반창고, 골무, 크림, 연고들을 잘 갖춰두었다. 하지만 궂은 일과 여러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이 요리하고 배우려는 드류의 열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주방은 내 인생의 연인을 호기심, 자신감, 야심으로 가득찬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내게 있어 더욱 놀라웠던 것은 나 역시 배우고 성장했다는 점이다. 나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익혔다. 미쟝 플라스, 하이드로콜로이드, PPX 같은 단어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 미각은 새롭고 다양한 요리에 더욱 개방되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드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존경과 공감을 곧 갖게 되었다.

여러 해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접근을 조금씩 바꾸었다.

나는 드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익혔다. 요리사들은 늘 음식에 둘러싸여 있지만, 하루 종일 실제로 음식을 먹을 시간은 아주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드류의 레스토랑에 자주 들러서 스포츠 드링크와 디너 서비스 전 또는 후에 얼른 먹을 수 있는 것을 갖다준다. 얼마전의 생일에는 레스토랑이 디너 오픈을 하기 전에 코릴라에서 케이터링 식사를 준비해 드류와 동료들을 놀라게 해주었다.

드류와 같이 집에 갈 수 있게 가끔 늦은 밤에 레스토랑에 들르기도 한다. 그가 주방에서 걸어 나오는 것, 내가 레스토랑 바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그의 지치고 구겨진 몸이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면 잠 몇 시간을 잃는 것이 아깝지 않다.

드류 역시 사랑을 보여주는 방법을 바꾸었다. 내가 일하러 가기 전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와 함께 일어난다. 4, 5시간 밖에 못 자고 일어날 때도 있다. 그의 스케줄 때문에 자주는 못하지만, 그는 데이트할 시간을 내겠다는 약속 또한 지켰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굿나잇 키스를 해준 다음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의 명절을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드류는 외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방에서 요리한다. 가끔 명절을 즐기긴 했지만, 우리는 보통 실제 명절보다는 며칠 일찍 혹은 늦게 축하하는 게 보통이다.

휴가 계획을 짜는 것도 쉽지 않다. 요리사나 셰프가 쉴 때면, 주방의 모든 사람들은 그 영향을 받는다. 근무량을 두 배로 늘리거나, 일주일에 6, 7일 일하거나, 그 두 가지를 섞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드류가 직장을 옮길 때 휴가를 간다. 그리고 휴가를 가서도 드류는 새 음식을 실험해 보고 싶은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소중한 쉬는 시간에는 나는 알리니아나 베누 같은 곳을 예약해서 그를 놀라게 해주는 것으로 그의 휴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려 한다. 그는 그런 곳에서 신성한 주방을 견학하고, 더 나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키웠던 셰프들을 직접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드류가 불, 칼, 전보다도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격렬한 욕구에 사로잡힌 다른 요리사들에 둘러싸여서 너무나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늘 내 마음은 터질 것 같다. 그가 자기 스테이션에서 레이저 같이 정확하게 주문 받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얼굴에서 결의가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응원한 이 직업은 가끔 내 두려움을 사실로 만들기도 한다.

나처럼 요리사나 셰프와 사귀는 사람들은 연인을 실제로 보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서 농담 삼아 (그리고 어쩌면 마지 못해) 우리는 셰프의 과부라고 한다. 나는 드류 없이 파티와 모임에 가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 또한 내 저녁 시간을 대부분 혼자 보내는 것에도 적응해야 했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 주방에서 받는 육체적, 정신적 부담 때문에, 하루가 끝날 때면 기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드류가 나와 함께 새로 나온 영화를 보거나, 친구의 농담을 듣거나, 그저 집에서 빈둥거릴 수 있었다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정말 안 좋은 날이면 결혼을 하고, 함께 가정을 이루고 가족이 된다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가능할지 상상이 안 될 때도 있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그의 직업과 우리가 함께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싸운 적이 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넌 우리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우리 차의 조수석에 앉아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밤 늦은 시간에 근처 피자 식당에 다녀왔는데,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때문에 싸웠다.

드류는 천천히 키를 뽑고 뒤에 기대 앉았다. 스파이시 페퍼로니와 녹은 치즈 냄새가 차 안에 감돌았다. “네가 언짢아 하는 건 이해해.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솔직히, 우리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너 같은 기분이 들었을 거야. 가끔 나는 요리 때문에 내가 혼자가 될까 봐 두려울 때도 있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차 안은 조용해졌다. 뜨거운 피자와 우리의 불편한 대화 때문에 창문에는 김이 서렸다.

“있잖아, 우리에겐 노래가 있어.” 드류가 갑자기 털어놓았다.

나는 갑자기 대화 주제가 바뀌어서 놀랐다. “그래? 우리에게?”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유어 송’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방에서 일 준비하고 있으면 자주 나와. 그 노래를 들으면 늘 네 생각이 나.”

나는 엘튼 존의 가사를 머릿속에서 떠올려 보았다. 눈물이 내 옆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힘들다는 거 알아.” 드류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힘들어. 하지만 넌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는 걸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가는 곳마다, 특히 주방에 있을 때 너를 함께 데리고 가. 너 없이 내가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언제나 너를 최우선으로 할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 내 목소리는 떨렸다. 눈물 몇 방울이 더 느껴졌다.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 그게 내 기본 자세야. 나는 우리가 잘 되어가도록 계속 애쓰고 싶어.”

“나도야.”

나는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따르는 모든 시험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드류의 커리어가 계속 나아가면서 더 쉬워지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안다. 지금 드류는 새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팀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고, 우리 모두 예전보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적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발을 내디딘다. 드류가 나를 선택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드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이 경험은 우리 사이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약속했던 대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하고 있다. 그가 이 삶을 선택한 것 만큼이나, 나도 이 삶을 선택한 것이니까.

요리는 드류의 감정 표현의 중요한 연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드류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물으면, 나는 거의 언제나 그가 요리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발렌타인 데이를 약혼자와 함께 보내지는 못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요리에 들어가는 사랑과 열정을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그에게서 매일 받는 바로 그 사랑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나는 발렌타인 데이를 혼자 보낼 것이지만 괜찮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나면 드류가 집에 돌아와 내게 굿나잇 키스를 한 다음 나를 안고 잠들 거라는 걸 아니까.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그 글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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