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릭닉]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이성에 대한 관심은 사랑일까? 아닐까?

당신의 막무가내 고백이 상대에게는 공포와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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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이혼한 지 시간이 꽤 흐른 40대 ‘돌싱남’ 직장인입니다. 나이가 젊은 편이라 그런지, 이혼 후 시간이 좀 지나자 이성을 소개해준다는 지인들도 있었는데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불쑥 한 사람이 궁금해졌습니다. 알고 지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얼굴을 안 지는 벌써 2년째입니다.

2년 전부터 출근길 지하철에서 항상 마주치는 여성입니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마주치는 것 같아요. 거의 같은 역에서, 같은 칸에 타고, 심지어 같은 역에서 내립니다. 사실 제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의 분이라 눈에 띈 점도 있습니다. 지하철 어느 역에서 타고 내리는지 정도 빼고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남성이 그에게 접근하는 듯했어요. 전 그저 바라보기만 해왔는데, 그는 적극적으로 옆자리에 앉고, 말도 걸고 그럽니다. 되게 신경이 쓰여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고백해도 될까, 고민하다 보면 온갖 생각이 다 듭니다. 유부녀면 어쩌지,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럼 다시 마주칠 때 어색해서 어떡하지 등등요. 제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사랑일까요. 연애 경험이 있고, 결혼도 해본 40대라지만, 이런 감정 앞에 속수무책이 되는 건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네요. 두근대는 돌싱남

A. 네? 사랑이요? 정말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저 지하철에서 마주쳤고, 외모가 마음에 들었고, 누군가가 말을 거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진 지금 본인의 상태를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물론 어떤 감정이든 우리는 느낄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은 늘 자기 자신에게는 애틋하고 또 소중하지요. 하지만 호기심과 조바심의 결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까지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이제 10대도 20대도 아니니까요.

자신의 감정을 과잉해석하지 않고,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은 가장 먼저 당신 자신에게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호기심과 조바심 정도인데, 한번 용기 내서 조심스럽게 말이라도 걸어볼까?’라고 생각했을 때 당신이 하게 되는 행동과, ‘이 감정은 사랑인 것 같아! 고백해봐야지!’라고 생각했을 때 당신이 하게 되는 행동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라면 당신도 어느 정도는 편하게 말을 걸겠지만, 후자라면 엄청난 긴장과 떨림 속에서 말을 걸겠죠. 내가 무려 ‘사랑’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자, 어느 쪽이 당신에게 더 유리할 것 같은가요?
자기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능력은 타인에게도 중요합니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고백’이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상대방 입장은 생각도 않고 오직 자기감정에 도취하여 있을 때 이런 표현을 하게 됩니다. 매일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이상형의 여성이라는 존재가 당신에게는 운명적으로 느껴졌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매일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줄곧 지켜봐왔다는 사람이 별안간 나를 불러세우고 ‘사랑’이란 감정을 ‘고백’할 때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그것이 운명으로 여겨질까요? 공포와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내 감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감정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최대한의 익명성을 유지하고 싶은 대중교통이라는 공간에서 낯선 누군가가 말을 걸어 관심을 표현한다면, 아마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이 정말 멋진 첫인상과 편안한 태도로 이야기를 건다고 해도 이런 장소에선 마음이 잘 전달되는 게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혼자 너무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펴진 마세요. 그 사람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느끼는 끌림, 그거 사랑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이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면, 그분에게 간단히 말을 건네고 당신의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호감을 가지는 건 당신 자유이지만, 거절할 권리는 그분에게 있다는 것 꼭 기억하시고요.

※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고민이 생기셨나요?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채택된 사연은 익명으로 실리며, 추후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보낼 곳: es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