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 코로나19 시대에 사각지대에 몰린 싱글맘의 고백

코로나19 대유행은 아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힘든 시간이다.

코로나19 속 싱글맘과 6살 아들의 하루

다시 아침이 밝았고 나와 내 6살 아들은 원룸 함께 지내며 서로 노트북을 사용하겠다고 싸운다. 아들은 미술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는데, 다른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인 이 수업은 내가 찾아낸 유일한 온라인 수업이었다. 나는 질리지 않을 만한 아침 식사를 만들기 위해 애쓰다가 실수로 후라이 팬 소리를 세게 내는 바람에 노트북 너머로 수업 중인 미술 선생님을 짜증 나게 했다.

나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써야 할 글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우선 쌓여있는 설거지를 시작하며 머릿 속에 뭘 해야 할지 다시 정리해본다. 나는 마침내 컴퓨터를 되찾았고, 아들은 내 옆에 있는 의자에 비집고 들어와 코브라 뱀을 그려 달라고 잔소리를 한다. 나는 아들에게 당장 그만하라고 혼내는데,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이 빈도수가 늘었다. 그는 인내심 있게 타이탄 보아 뱀과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렉스의 싸움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크게 부른다.

나는 일을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아들이 밖에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나와 아들은 외출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일처리를 하는 날과 아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날을 번갈아 가면서 정한다. 꼭 필요한 일은 병원을 가거나 장을 보는 일 등을 말한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하루가 끝나있다. 자정 쯤 아들은 잠이 들고 나는 아마존 쇼를 볼지 그냥 잠을 잘지 고민한다. (사실 난 잠이 항상 부족하다)

싱글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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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으로 일자리 찾기의 어려움

다음날 일어나면 우리의 일과는 다시 처음부터 반복된다. 나는 아르바이트 전화면접을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아들까지 깨버렸는 데 우연히 면접관이 질문하는 도중에 내 옆에서 몬스터 트럭을 떨어뜨렸다. 젠장! 면접관은 이제 내가 엄마라는 걸 알아버렸다. 난 채용 전화를 받지 못했다. 3일 동안이나 무급으로 버티면서 이 면접을 준비했었는데 실패로 끝나니 눈물이 났다.

이외에도 내 머릿 속은 내가 스스로 내려야 할 중요한 결정들로 폭발하고 있다. 이사갈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언제 다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을까? 학교가 안전할까? 만약 내가 아프면 어떻게 아이를 돌볼까? 내가 계속 울자 아들이 나를 안아준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행동을 가다듬는다.

나는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가족은 우리 둘뿐이기 때문에 나 역시 병에 걸릴 여유가 없고, 죽을 수도 없다. 나는 죄책감 때문에 자주 운다. 나는 거의 항상 일을 하거나 일을 찾고 있는데, 내 아들은 다른 부모인 ‘내 휴대폰‘에게 맡기는 날이 많다. 내 휴대폰을 아들에게 주며 나중에 뭘 했는지 확인해 봤는데, ‘관찰 가능한 우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 ‘아기 하프 바다표범에 관한 다큐멘터리’ (117회나 관람했다), 그리고 ‘다른 공룡들과 싸운 인도미너스 렉스에 관한 비디오’를 본 걸로 나왔다. 생각보다 건전했다. 그러던 중, 어제 나는 ”수류탄 폭발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고 있는 내 아이를 발견했다.

격주마다 나는 상담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 그는 특별히 좋은 상담사는 아니지만, 값이 싸다. 그는 내 속마음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코로나19 상황 속 소외된 싱글 부모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서 너무 기뻐”라고 한 싱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아이가 없는 다른 친구처럼, 그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사용하며 거의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싱글 친구들은 휴가를 보내며 미뤘던 책을 읽거나 새로운 언어 또는 악기를 배우며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내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은 3월에 시작됐는데 여전히 전면적으로 진행 중이며 앞으로 몇 달 동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난 생존 스킬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난 구글을 검색했다. 싱글 부모를 위해 쓰인 한 기사는 싱글맘인 내가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고’ (언제?) 더 많이 영화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얼마나 더 많이 보라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싱글 부모가 쓴 기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아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힘든 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나 포함)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계속 집에 머무르고 있고, 매일매일 우리의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많은 부모가 이 새로운 생활을 관리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부부들은 그중 한 사람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교대로 일하는 등의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했다. 남편이 아이를 교외에서 산책시키는 1시간 정도만 혼자서 쉴 수 있다고 말이다. 인정하면 추해지지만 말하겠다. 솔직히 그가 부럽다.

나는 이 세대의 부모들이 직장 경력에서 뒤처질까봐 걱정하는 기사와 심리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록들을 본다.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언론이나 사회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다시 백인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부모와 그들의 평균 2.4명의 자녀의 삶과 투쟁에만 다시 주목했다.”

매일, 나는 엄마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불균형적으로 더 많이 한다는 뉴스 기사를 본다. 나는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 드디어 다인종 가정과 성소수자 가정, 경제적으로 차이가 있는 부모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의 부모를 인정하고 미디어에서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들을 다시 사각으로 몰아 넣은 듯하다. 언론이나 사회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다시 백인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부모와 그들의 평균 2.4명의 자녀의 삶과 투쟁에만 다시 주목했다.

어찌 된 일인지 다른 모습의 가정이 존재하고,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는 데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야기들은 들리지 않는다.

그럼 다른 가족들은? 질병에 노출을 감수하고 무료 급식소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몸이 안 좋아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해고되는 사람들은? 그리고, (이기적인 나를 용서해달라) 무엇보다 나는 어떡하지?

나는 이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투명 인간이다. 나는 싱글맘으로서 전적으로 아이의 복지 책임과 재정적, 보호적, 정서적 책임까지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있다. 나는 정부의 대책에서 배제됐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지난 3월14일, 스페인 정부는 우리를 산책이나 밖에서 운동도 못 하게 완전히 우리의 작은 아파트에 가두었다.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는 게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싱글맘인 나는 어떻게 쇼핑을 해야 했을까? 어찌 된 일인지, 사회는 나를 그들의 방정식에 넣지 않았다.

나는 아마존에서 배달시키기 위해 자정까지 깨어 있다가 또 다른 슈퍼마켓에서도 배달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배달은 종종 2주가 걸리고 일부만 배달됐다. 우리는 밀가루와 파스타와 약간의 기본적인 물품만으로 지내야만 했다. 어린 아들만 혼자 두고 가게에 방문하는 건 너무 위험했고 불법일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저축자금에 손을 댔고, 우리가 필요한 음식을 얻기 위해 두 배의 돈을 지불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상황이 나빴다: 나중에 만난 한 친구는 음식을 얻기 위해 지역 교회에 의존해야 했고,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음식을 보며 웃고 있는 가족의 사진을 교회에 줘야만 했다. 마치 모든 게 괜찮다는 듯이 웃는 사진이어야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격리 생활 중 스페인에서 1킬로미터 규칙이 발표됐다. 아이들은 그들의 집에서 1킬로미터 이내에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반면 어른들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이날 부부들은 한시름 놓게 됐다.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다른 부모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두 가족 중 한 명이 어린아이인 우리는 여전히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됐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이 사회의 일반적인 규범과 규칙 밖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한 미래

나는 페이스북에서 부모 중 한 명은 일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아이들과 함께 뭔가 프로젝트를 하는 모습을 올리는 친구들의 포스팅을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소속된 기혼 여성 모임인 ‘왓츠앱’(메신저 애플리케이션) 그룹 채팅에서 남편이 도시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시골로 데려갈 계획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들은 ”올래?”라고 묻는다. ”남편들이 평화롭게 일하게 하자”고 말하며 서로 웃는다. 나는 ”할 수 없어, 미안해”라고 타자를 쳤다. ”내가 바로 남편 역할 이거든”이라고 하자 대화는 거기서에 끝났다.

우리는 모두 잘못 생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훨씬 더 빨리 끝날 거라고 예상했다. 나는 이제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혹시 아프거나 휴교 조치(학교가 다시 문을 열기는 할까?)가 내려질 상황에 대비해 벌어왔던 적은 수입을 더 늘려야 한다. 아들이 등교하는 날 나는 말 없이 앉아 벽을 응시할 거라고 농담했다. 사실, 그 때가 오면 나는 아마도 나 홀로 남아 조용한 분위기를 어떻게 견딜지 모르겠다.

사회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나는 존재한다. 나와 내 아들은 여기에 있다고 손이라도 흔들고 싶다. 내 6살 아들은 가족마다 인원수, 성별, 인종, 경제적 지위 등 모습이 다른 걸 이해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이걸 이해 못 해? 왜 사회는 나처럼 싱글 부모거나 일반적인 틀에 맞지 않은 다른 가족이 존재하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지금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 약간의 도움도 개의치 않을 거다. 이런 게 포괄적이고 가치 있는 대화를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될거다.

캣 로시는 인간의 이야기와 대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이자 문법에 집착하는 편집자다.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독자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