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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30일 15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30일 15시 53분 KST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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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특수학교의 선배들은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농담들을 내게 건네곤 했다.

”너 이것도 안 보이냐? 허구한날 여기저기 박고다니냐? 그래서 벽이 무너지겠냐?”

”뵈는 게 없으면 둔하지라도 말아야지!“

”깜깜이가 밤에도 길 못 찾으면 어디다 쓰냐?“

100여명 남짓의 기숙사 구성원 전체 시력을 합쳐도 두 눈 멀쩡한 사람 하나의 시력도 못 만드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이라 가능한 일이긴 했겠지만 실명의 충격조차 벗어나지 못한 내겐 한 마디 한 마디가 핵폭탄급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기는 장애드립들이라 나 혼자 당황하고 상처 받고 울고 있을 수도 없었다.

동의나 공감은 조금도 되지 않았지만 적응의 몸부림으로 억지 웃음을 짓다보니 어느틈엔가는 나도 비슷한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엇던 것 같다.

어쩌면 선배들의 아무렇지 않은 능청스런 농담 덕에 난 큰 어려움 없이 시력 잃은 내 상태를 인정하고 적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알게 된 것이지만 두 눈 못 보게 된 내 상황은 그다지 절망스럽거나 좌절해야 할 정도의 최악의 바닥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 둘식 맹학교의 문화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날 한 선배가 나를 포함한 몇몇의 친구들을 모아놓고 아주 비장한 목소리로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혹시 고를 수 있다면 맹인 할래? 내시할래?”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그에 대해 오랜 고심이라도 한 듯 너무도 심각해 보였다.

그런데 사실 심각한 것은 그 선배 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네 다섯의 눈 못보는 친구들은 남성성을 택할것인가 아니면 눈을 택할것인가에 대한 아무 현실성 없는 고민에 대해 너무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글 읽는 독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겠겠지만 깊은 침묵에 빠졌던 우리의 결정은 결국 그냥 눈을 포기하자는 쪽이었다.

눈 안보이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삶의 큰 불편함이 아니었지만 또 다른 장애는 우리에게도 불확실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조차 매우 비참하게 여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와줘야 하고 보살펴 줘야 한다는 생각 속에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깔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사는 삶은 자신있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객관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난 선뜻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눈이 잘 보이는 잘 생기고 건강하고 돈 많은 권력자라 하더라도 난 지금의 내 모습을 쉽게 놓을 것 같지 않다.

내겐 그냥 내삶이 내 삶이라는 그것 자체로 그냥 소중한 것인 것이다.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늘 불만족인 당신도 누군가의 얼굴과 당신의 얼굴을 바꿔준다고 하면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하기는 힘들 것이지 않는가?

당신의 신체도 당신의 목소리도 당신의 성격마저도 누군가와 바뀐다고 생각하면 왠지 원래의 것이 커 보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스스로의 삶에 극단적인 불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난 그럴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적어도 스스로의 삶이 장애인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 관련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저 사람도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용도로 관련 교육 자료를 꾸미는 강사들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착각은 매우 자유로운 영역이고 강력한 확신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난 내 삶을 당신의 삶과 바꾸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난 장애인의 삶을 동정이나 용기 회복의 영역쯤으로 여기는 당신의 삶을 동정한다. 누군가가 매우 정밀한 기준을 만들어 당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지 않는것처럼 난 내 인생을 의학적 잣대로 평가하고 순위 매기고 싶지 않다.

난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인격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삶을 다른 이의 그것과 바꾸고 싶지 않다면 다른 이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누군가의 삶과 당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은 그 바람이 이루어지더라도 또 다른 삶으로의 변화를 원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삶의 불만족은 객관적 상태나 상황보다는 그냥 만족할 줄 모르는 당신의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에겐 허황된 꿈은 버리고 얼른 그냥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권하고 싶다.

비참하게 평가 받고 싶지 않다면 다른 이를 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쓸데없이 걱정하는 이들은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