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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고 눈물겹다,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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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방영 중인 ‘라이브‘는 좋은 드라마다. ‘라이브’는 전국에서 사건사고가 가장 많다는 홍일지구대(가상의 지구대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다루고 있다. 홍일지구대의 일상은 주취와 가정폭력과 차량접촉시비와 절도와 폭행 등으로 점철 돼 있다.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한 연쇄 강간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홍일지구대의 구성원들은 이따금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합심해 사건을 해결하고 치안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한다. 홍일지구대의 구성원들은 경찰이라는 직업이 지닌 무게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라이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면에 깊은 상처와 절박한 사정을 안고 있다. 한정오(정유미, 홍일지구대 3조 부사수 시보순경)는 미혼모 밑에서 자란데다 지독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염상수 (이광수, 홍일지구대 1조 부사수 시보순경)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혹독한 유년시절을 보낸데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 사기를 당한 아픔이 있으며, 오양촌(배성우, 홍일지구대 1조 사수 경위)은 경찰계의 레전드이긴 하지만 식물상태의 모친을 둔데다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상태고, 안장미 (배종옥, 마현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장 경감)는 요양병원에 모신 부모를 동시에 잃고 남편 오양촌과 헤어지려 결심했다.

기한솔 (성동일, 지구대장 경정)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지구대장이지만, 말기암 환자고, 이삼보(이얼, 2조 사수 경위)는 정년을 목전에 둔 데다 자녀의 이혼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며, 강남일 (이시언, 3조 사수 경사)는 뜻하지 않게 세번째 아이를 임신해 피자집을 개업해 생계를 유지하려 하는데, 지구대 내에서 뺀질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최명호 (신동욱, 4조 사수 경장)는 경찰이었던 애인의 순직으로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으며, 송혜리 (이주영, 2조 부사수 시보순경)는 방앗간을 하는 장애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데 동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고 있다. 하긴 상처 없고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며, 절박한 처지와 심각한 불행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은 악인들로 가득하고, 범죄는 파도처럼 밀려오며, 약자들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오는 건 좀체 어렵고, 권력과 금력의 힘 앞에 공권력이 초라해 질 때도 많음을 ‘라이브‘는 솔직히 고백한다.‘라이브’의 장점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모순을 외면하지 않으며, 삶의 추레함과 복잡함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브’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건 오양촌의 아버지인 늙은 이순재가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장면들이다. 이순재는 젊었을 때 아내를 때렸던 폭력남편이었다. 내 눈에 이순재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아내를 자기 몸처럼 돌보는 건 젊은 날 자기가 한 악행들에 대한 속죄처럼 보였다. 이순재는 아내가 누워있는 요양병원과 집 사이를 걸어서 다니는데, 편도로만 3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성치 않은 무릅으로 그 긴 길을 매일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가 저지른 어떤 잘못이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관건은 그 다음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잘못을 저지른 후 속죄를 해야 한다.

‘라이브‘의 극본을 쓴 건 노희경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왜 노희경, 노희경하는지 알 수 있다. 노희경은 ‘라이브’에서 세상은 모순투성이고, 실존적 삶은 누추하고 핍진하지만, 그럼에도 애써 살아야 한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 써야 한다고, 사람에겐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나직하게 말한다. 서늘하고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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