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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우리가 인간임을 알려준다

ⓒhuffpost

문학의 쇠락 혹은 위기가 운위된지는 오래다. 하지만 몇몇 뛰어난 재능들이 만드는 문학텍스트들은 그런 와중에도 견고히 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한다. 김애란이 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그런 범주에 드는 소설이다. 이 빼어난 단편소설의 얼개는 대략 다음과 같다.

계곡 물에 휩쓸린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숨진 남편(권도경)을 둔 ‘나’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사촌언니의 권유에 따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체류하다 왔지만, 남편에 대한, 더 정확히 말해 남편의 죽음에 대한 ‘나’의 마음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 ‘나’는 남편이 구하려다 실패한 학생의 누나가 보낸 편지를 귀국한 후 받아보았다. 편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권도경 선생님 사모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누리중학교 1학년 5반 권지용 학생의 누나 권지은이라고 합니다.
사모님께서 혹시 지용이의 이름을 아신다면, 그 학생이 제 동생이 맞아요.
몇 번 전화드렸는데, 바쁘신 것 같아 편지로 인사드려요.
직접 찾아봬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지용이 친구한테 연락처를 물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글씨가 엉망이라 죄송합니다.
작년에 갑자기 마비가 와 오른쪽 몸을 잘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예전에 지용이가 돌아가신 엄마를 찾으며 울 때마다 제가 자주 업어줬는데, 제가 이렇게 되고부터는 오히려 그애가 저를 어른처럼 보살펴줬어요.
그런데 요즘은 집이 너무 조용해서 제가 제 발소리를 듣다 놀라요.

며칠 전 지용이가 꿈에 나왔습니다.
아마 집 떠난지 백 일쯤 돼 그랬나봐요.
누나 잘 지내?
평소처럼 인사하는데 그새 키도 크고 눈빛도 자라 조금 놀랐어요.
누나 잘 지내는지 보려고 왔어.
그런데 금방 가봐야 해.
너무 짧은 시간이라 꿈에서도 막 서운했는데,
지용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누나 나 키워주고 업어줘서 고마워.
누나 혼자 있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먹어.
누나, 나 이제 갈게.
누나 사랑해.

실은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생각 못했는데,
꿈에서 지용이를 보고 나서야
권도경 선생님과 사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도 지용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모님도 선생님이 많이 그리우시죠?
그런 생각을 하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이런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편지를 써요.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말이고,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사모님,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삶을 구하기 위해 자기 것을 버린 남편에게 아직 화가 나 있었던 ‘나’는 편지를 거듭 읽은 후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에 빠진 제자를 본 순간 남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 후 ”혼자 남은 그 아이야말로 밥은 먹었을까. 얼마나 안 먹었으면 동생이 꿈에까지 나타나 부탁했을까”라며 홀로 남은 지용이의 누나를 근심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아무 대가 없이 던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김애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사람에게 사람만이 희망이고, 빛이고, 의지라는 사실을 너무나 처연하고 아프게 알려준다.

김애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읽고나면 명치 끝에 예리한 통증 같은 것을 느끼고 된다. 그 통증은 괴로운 것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극에 공감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고통을 통해 우리가 인간임을 깨닫게 만들고, 인간이므로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걸 나직하게 알려주는 것이 문학의 본령 중 하나라고 할 때 김애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문학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이다. 김애란 같은 작가가 대지에 발을 붙이고 굳건히 버티는 한 문학은 특유의 힘과 위엄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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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문학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김애란 #단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