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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이 퀴어 친구를 긍정하는 방법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지만, 진짜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다.”

Old hand (woman) holding a very old bible, isolated on white, rainbow flagHand (woman) holding a very old bible, isolated on white, rainbow flag
Old hand (woman) holding a very old bible, isolated on white, rainbow flagHand (woman) holding a very old bible, isolated on white, rainbow flag ⓒmichaklootwijk via Getty Images

나는 작은 근본주의적 교회에 다니며 자랐다. 일요일마다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사악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게이들을 소아성애자에 비교하는 목사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곤 했다.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성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억눌렀다. 그러나 공포가 나를 휩쓸고 가곤 했다.

“대학에 가면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생길 거야. 졸업하면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생길 거야. 곧 정상적인 기분이 들 거야.”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성애적 욕구는 결코 들지 않았고, 나는 고립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여성들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공황 발작과 욕지기가 너무 심해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토했다.

커밍아웃한 뒤 내 이야기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고, 하도 자주 이야기하다 보니 이제 말이 쉽게 나온다. 종교가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사람들이 알기를 원해서, 나 같은 사람들이 덜 외롭기를 바라서 내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하면 자주 듣는 대답이 있다.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지만, 진짜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다.”

종교적 학대를 당한 내 경험은 특이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내 퀴어 친구들 거의 전부는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상처받는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당신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소외된 집단을 학대하고 있는데 못 본 척하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퀴어들에게 위험하다. 아닌 척한다는 건 좋게 봐도 무지함에 지나지 않는다. 로이터에 의하면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란 LGBT 청소년은 자살에 대한 생각을 52% 더 많이 한다. 미국 게이 레즈비언 TF의 연구에 따르면 홈리스 청소년의 40%는 LGBT이다. 앨버트 케네디 트러스트의 연구에 따르면 홈리스 LGBT 청소년의 45%는 종교적인 가족원들에게 쫓겨나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퀴어를 긍정하는 크리스천 친구와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크리스천들이 LGBTQ 커뮤니티를 해치는 것이 무시무시하다고 말했다. 자신도 과거에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지만…”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자신의 퀴어 친구들이 자기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의도라는 건 알지만, 저 말이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해준 적은 없었다. 사실 기분이 나빠지기만 했다. 순수한 의도였다면, 왜 저 말이 그토록 상처가 될까?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지만, 진짜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다.”라는 말은 상대를 조종하려는 말이다. ‘진짜’ 기독교가 그런 폭력을 영속화시키지 않는다면, 종교적 트라우마의 경험이 사실일 수는 있는가? 이 말은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진짜’ 기독교는 너에게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너에게 일어난 것이 맞긴 한가?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다. 퀴어가 크리스천들에게 고통스러운 경험담을 털어놓을 때, 그들이 방어적이 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종교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토록 얄팍한 핑계로 그 책임을 거부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진짜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다’라는 설명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덮는 것은 퀴어들의 이야기를 침묵시키는 행위다. 이는 위험한 법과 정책을 통해 문자 그대로 우리를 침묵시켜온 동성애혐오적 크리스천들에게 더욱 힘을 심어줄 뿐이다. 퀴어를 긍정하는 크리스천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덮을 게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듣고 우리 목소리를 키워주어야 한다.

이 말은 잘난 척하며 우리를 비난하는 말이다. 퀴어들이 교회에 더 오래 남아 있었어야 한다, ‘진짜 기독교’를 찾으려는 노력을 더 했어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있다.

우리 중에는 교회를 다니며 자란 사람들이 많다. 주류 기독교가 퀴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기도로 동성애를 쫓으려’ 노력해 보았다. 전환 치료에 끌려간 퀴어들도 많다. 홈리스가 된 이들도 많다. 우리가 ‘진짜 기독교’를 찾으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은 비양심적이다. 많은 퀴어들에게 있어 교회를 떠나는 선택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LGBTQ 친구들이 자신이 안전한 사람임을 알아주길 원하는 퀴어를 긍정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알려주자면, 저 얄팍하고 상투적인 말을 쓰지 않고 당신의 뜻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첫째, 우리의 정체성을 100%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들은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말을 쓰는 동성애혐오 크리스천들에게 익숙하다. 우리의 모든 면이 다 사랑받고 정당하다고 반드시 말해야 한다. 퀴어로서, 나는 내 파트너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지옥에 갈 거라고 믿는 사람과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

둘째, 기독교가 퀴어 커뮤니티에 미친 고통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허한 죄책감을 표현하면서 퀴어들이 당신은 다른 크리스천들처럼 동성애혐오적이 아니라고 믿길 바랄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

셋째, 퀴어를 긍정하는 크리스천이라면 다른 크리스천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시스젠더 이성애자 지지자들이 우리를 옹호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보면 진정한 지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유해한 종교적 환경에서 자란 내 여러 퀴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현재 상담을 받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내 몸이 위험하다, 내 욕망이 사악하다, 나의 핵심적 자아가 죄가 된다는 말을 들어왔다. 기독교가 내게 미친 피해는 아마 평생 갈 것이다. 상담은 내가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믿도록 내 뇌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종교가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는 믿음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이 자신이 ‘다른 크리스천들과 다르다’는 말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배우고 기독교가 LGBTQ 커뮤니티를 얼마나 해쳤는지를 이해하는 크리스천들에겐 감사한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믿어주며, 우리 목소리를 더 크게 알려주는 크리스천들이 고맙다. 다른 크리스천들에게 책임을 묻는 크리스천들이 고맙다. 안전하고 충직한 우정을 주는 크리스천들에게 감사한다.

난 더 이상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퀴어를 긍정하는 크리스천들은 역사 속 이 순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달에 대법원은 퀴어와 트랜스젠더가 연방 시민권법에 의해 직장에서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을 들었다.

보수주의자와 크리스천이 가득한 법원에서, LGBTQ가 직장에서 차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퀴어의 권리를 빼앗으려고 매일 노력하는 복음주의적 크리스천이 지배적인 미국에서, LGBTQ를 긍정하는 크리스천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HuffPost US의 Christians, Here’s How To Affirm Your Queer Friends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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