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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18일 16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9월 18일 17시 17분 KST

[허프 인터뷰] 소리꾼 이희문은 "국악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한다

한겨레 편집국에서 열리는 '기자실 라이브'를 앞두고 이희문과 만났다.

HUFFPOST KOREA/SUJONG LEE
이희문

소리꾼 이희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국뽕’ 덕이었다.

지난 2017년 9월, 평소 즐겨보던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이희문이 프런트맨으로 있는 민요 록밴드 ‘씽씽’이 출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델, 맥클모어, 요요마, 존 레전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 한국인이 등장했다니. 더군다나 이들은 민요를 부르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옷차림을 한 채 나타났다.

이후 씽씽은 해체했으나 이희문은 ‘이희문프로젝트 날[陧]’(이하 ‘날’, 드럼과 장구, 이희문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작품), ‘한국 남자’(이희문과 ‘놈놈’ 등 소리꾼과 재즈밴드 ‘프렐류드’가 꾸미는 공연) 등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경기민요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희문은 온갖 벽을 깨부수는 뮤지션이다. 화려한 스타일로 국악계를 놀라게 했고, 자신만의 국악 스타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는가 하면,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을 통해 성별을 넘나들기도 한다. 분명히 전통 음악을 하는데 ‘힙’이 터진다. 선을 넘는 게 유행이라더니, 이희문은 꽤 오래 전부터 선을 넘고 있었다. 이희문은 왜 벽을 깨고, 선을 넘는 걸까? 최근 ‘기자실 라이브’ 공연을 위해 한겨레 편집국을 찾은 이희문은 이렇게 답했다.

″한번 태어나는데 한 번쯤은 (뭐든) 해봐도 되지 않겠어요?”

기자실 라이브는 신문 제작 마감이 임박한 한겨레 신문사 편집국에서 열리는 소규모 라이브 공연으로, 가수 하림, 핫펠트, 라세 린드 등이 공연을 이미 공연을 진행한 바 있다. 이희문은 지난달 30일, 이곳에서 ‘이희문프로젝트 날[陧]’ 공연을 선보였다. 이날 공연은 에어비앤비(Airbnb)와의 콜라보로 진행됐다. 

매체 사무실에서의 두 번째 공연이에요. 또다시 매체 사무실을 찾은 소감은? 

=재밌어요. 처음에는 모르고 가서 했는데 하고 나서 보니까 훨씬 좋고 즐거운 추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기자실 라이브)은 또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라고요. 

NPR에서 열린 공연과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경우에는 라디오 방송국이었기 때문에 ‘말랑말랑’ 했다면 오늘 여기 기자실 라이브는 기자분들 마감 시간이고 딱딱한 분위기이잖아요. 마감하시느라 정신없으실 텐데 그 와중에 라이브를 즐겨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재밌는 거죠. 

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씽씽은 아무래도 좋아했던 작업이었기 때문에 해체되고 나서 상실감이 있었어요. 그다음에 내가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만든 게 ‘날‘이에요.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면을 탐구해보고 그걸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싶었어요. ‘날’은 멜로디 악기 없이 서양 악기인 드럼과 모듈러신스(Modular Synth), 한국의 리듬악기인 장구까지 세 악기만 가지고 저의 목소리가 어떤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보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이에요. 

또 경기 소리와 서도 소리 등을 아카이브(archive, 기록하다)하는 형식의 공연(‘깊은舍廊사랑’ 시리즈)을 하고 있어요. 재즈밴드 프렐류드, ‘놈놈‘이랑 같이 하고 있는 ‘한국 남자‘라는 프로젝트가 있고 올해 초 KBS에서 방송됐던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하면서 만든 레게 팀(‘오방神과’)과도 음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유명 소리꾼으로 활동 중이지만 정작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에 들어선 이후라고 들었어요. 그것도 경기민요 명창인 어머니(고주랑 명창)가 아니라 이춘희 명창의 권유로 소리를 배웠다던데. 어쩌다 민요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노력을 해봤지만 잘 안돼서 도피 식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어요. 거기서는 음악과 그나마 관련이 있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뮤직비디오 감독님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는데 어머니가 전통음악에도 영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시더라고요. 어느 날 어머니가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셔서 따라갔다가 지금의 스승님이신 이춘희 선생님과 만났어요. 어릴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요. 공연을 보다가 제가 민요를 흥얼거리니까 (이춘희) 선생님은 그게 좀 신기하셨나 봐요. 그래서 장난 반으로 ”소리하고 싶은 마음 없냐”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게 27살 때쯤이었는데, 살면서 그 누구도 저한테 소리를 해보겠냐고 물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 주변에 그렇게 소리꾼, 명창 선생님들이 많으셨는데도요. 

어머니는 아들인 제게 본인이 하셨던 걸 대물림하고 싶지 않으셨을 거예요. 지금은 소리꾼도 아티스트 대접해 주지만 옛날에는 소리를 한다고 하면 다 기생 취급을 했으니까요. 위상이 달랐어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제게 던지신 질문이 오히려 저한테는 더 생경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취미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어느새 주객이 전도된 거죠. 

HUFFPOST KOREA/SUJONG LEE
이희문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2003년이요. 선생님이 갑자기 저한테 전통음악을 하려면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 제가 마침 뭔가 하면 미치는 스타일이에요. 열심히 해서 대회를 나갔는데 상을 받은 거예요. 그 상으로 당시 한 전형을 통해서 서울예술대학교 국악과를 들어가게 됐어요. 만학도로 다닌 거죠. 

20대 후반에 새로운 걸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두려웠죠.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대학도 가고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니까 굉장히 빠르게 전개가 이루어졌어요. 

더군다나 명창인 어머니 때문에 주변에서 ‘얘 좀 보게’ 하고 지켜봤을 듯해요. 

=맞아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3년 정도 했을 때 지치더라고요. 노래를 하는 건 참 좋은데 상황이 너무 힘든 거예요. (주변에서) 내가 하는 것들, 하다못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조차도 다 잘못됐다고 하더라고요. 날라리 같이 보였던 거죠. 그때 마침 현대 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이 작품 만드는 데 전통 소리꾼이 필요하다면서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됐어요. 그것도 주인공이 된 덕에 피신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민요를 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HUFFPOST KOREA/SUJONG LEE
이희문

경기민요는 어떤 음악인가요? 

=(다들) 몰라요 몰라. 그냥 다 판소리인 줄 알지. (일반인들한테) 우리나라 국악은 딱 두 가지예요. 판소리 아니면 사물놀이. 김덕수 선생님하고 안숙선 선생님밖에 없어. 하하. 

우리나라 민요는 지역적으로 특색이 나뉘어요. 제가 하는 경기민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노래이기는 하지만 서울을 둘러싼 거의 모든 지역의 민요를 흡수했어요. 발성이나 음계가 현격히 차이 나는 전라도 민요를 제외하고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제주도까지 여러 지방 민요의 특색을 다 흡수한 거죠. 그걸 우리는 경기민요라고 칭해요. 또 북한 지역의 소리는 서도 민요라고 하고요.

왜 하필 어머니가 명창으로 계신 경기민요를 선택했나요?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고 좋아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에는 계기가 없어서 시작할 수 없었던 거지, 계기가 생기니까 쉽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희문이 하는 음악은 본래의 경기민요인가요?

=보컬 자체는 제가 어떤 작업을 하든 원래대로 경기민요를 하고 있어요. 다만 리듬 같은 걸 서양 음악, 현대 음악의 여러 장르와 접목하는 거죠. 

일각에서는 이희문의 스타일을 ‘드랙‘(drag)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공연할 때 ‘드랙’을 하는 건가요? 

=이전에 질문도 많이 받고 드랙이라는 주제로 잡지 기획 인터뷰를 하기도 했어요. 언론은 정체성 같은 걸 하나로 규정짓고 싶어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규정 짓기 힘든 부분들이 많거든요. 제가 뉴욕에 씽씽 공연을 하러 갔을 때 제가 생각했던 색깔 같은 게 맞는 의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모 여성 언더웨어 브랜드에서 옷을 구했는데 가슴이 있는 거예요. 저는 한 번도 가슴이 있는 의상을 사본 적이 없거든요. 악세서리로 포인트를 줄 뿐이지 사실상 거의 다 남자 의상이에요. 그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데 계속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 절대 (가슴 있는 의상을) 입지 않았거든요. 

HUFFPOST KOREA/SUJONG LEE
이희문

옛날에는 남자들이 소리를 했다더라고요. 그런데 중간에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우리나라에 일본 기생문화가 들어오고 권번(*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한겨레음악대사전)에서 여성들을 지금의 아이돌 기획사처럼 트레이닝시킨 거죠. 그렇게 여자 소리꾼들이 훨씬 더 상품적인 사치가 생기다 보니 남자 소리꾼들이 사라지게 된 거예요.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를 통해 민요를 들었고 여성인 선생님에게 배워왔거든요. 그러다 보니 주변의 몇몇 선생님들이 ”넌 왜 소리를 여자같이 하니”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이런 스타일이 된 건 그런 반응을 비트는 작업이기도 해요. ‘내가 차라리 여자가 되어주겠다’ 그런 거죠. 

박수무당의 생김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들었어요. 

=제가 전에 선보인 오더메이드레퍼토리 ‘快(쾌)’라는 프로젝트는 굿, 무속음악을 현대판으로 만드는 작업이기도 했어요. 무속인들의 몸에 들락날락하는 영혼들은 남녀 구분이 안 되잖아요. 박수무당의 그런 이미지를 가져온 거죠. 

스타일링은 직접 하나요?

=그런 편이죠. 의논도 하기는 하지만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아니까요. 

오늘도 독특한 옷차림인데 콘셉트가 뭔가요? 

=오늘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스타일이요. 사실 여기 뭔가 더 있어요. 공연 때는 한복 치마를 뒤쪽에 붙일 거예요.

화려한 옷을 입을 때도 있고, 한복을 입고 공연할 때도 있어요. 화려한 스타일링을 한 이희문과 한복을 입은 이희문은 어떻게 다른가요?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요. 근데 저는 한복을 입고도 웨이브를 하긴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복에 변형을 주기도 하고 그래요. 옆 부분을 터야 다리가 좀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그래도 제 안에 있지 않은 것이 나오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여러 가지 자아가 있잖아요. 그 자아와 어떤 관계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것처럼 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에 따라서 다른 행동들이 나오는 거죠. 

한국의 민요로 해외 시장을, 화려한 스타일링을 한 소리꾼으로서 한국 민요계의 벽을 깨부쉈다고 생각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을 하고 있나요?

=무언가를 깨기 위해 한 건 아니에요. (벽을) 깼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솔직하게, 한번 태어났는데 (뭐든) 한 번쯤은 해봐도 되지 않겠냐는 거죠.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멤버 중에는 드럼을 다루는 사람도, 모듈러신스를 다루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서양문화와 민요를 섞는 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이러고 나오면 ‘헉’ 하지만 점점 소리를 들으시더라고요. 애초에 제 모습에 비호감을 가지고 계시면 그냥 가버리세요. 끝까지 듣는 분들은 결국 소리를 듣는 거니까요. 사실 저도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요. 해보면서 불편하거나 아닌 것 같으면 바꿔나가요. 앞으로도 하고 싶은 걸 계속할 수 있게 여력이 되고 환경이 만들어져갔으면 좋겠어요. 

음원차트 인기 순위만 반복 재생하는 요즘 10, 20대에게 민요는 여전히 생소하게만 느껴질 텐데요. 이희문의 음악을 그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요? 

=힙하고 싶으면 들어야 한다? 하하.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도 점점 문화 자체가 마니악해지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듣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좋으면 들으시고, 안 좋으면 안 들으면 되는 거죠. 굳이 저는 (경기민요) 들으라고 안 그래요. 싫음 말어. ‘국악이 싫다. 전통음악이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전 더 좋은 것 같아요. 솔직하게. 

 

이희문프로젝트 날[陧]공연 정보

일시: 2019년 10월 9일 저녁 8시

장소: 벨로주 홍대

출연진: 이희문(소리), 박범태(장구), 임용주(사운드퍼포밍), 한웅원(드럼)

 

글=김태우 에디터: taewoo.kim@huffpost.kr

사진=이수종 에디터: sujong.lee@huffpost.kr